매년 이 무렵이면 나는 전 해의 베스트 재즈 앨범을 정리하곤 한다. 발 빠른 사람들은 12월에 하는 일을 다소 늦게 하는 이유는 (이미 내 정리에 익숙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12월에 발매된 앨범을 무시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그리고 가능한 많은 앨범을 듣고 싶기 때문이기도 했다. 대략 살펴보니 지난 해 나는 약 400여장의 앨범을 나름 집중해서 들었더라. 이제 그 앨범들 가운데 몇 장의 앨범으로 2016년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먼저 한국 재즈 15장이다. 지난 해 한국 재즈는 그 이전 몇 해에 비해 앨범 발매량은 줄었다. 그래도 인상적인 앨범의 수는 줄지 않았다. 특히 재즈인 동시에 국악 쪽 크로스오버에 속하는 앨범이 여럿 있었다. (이미 재즈 자체가 크로스오버적이긴 하다.) 그래서 크로스오버를 따로 정리해볼까 하다가 그렇기에는 그 양이 많지 않아서 재즈적인 맛이 있는 앨범들을 포함해 정리했다.
정리하면서 제일 부담스러운 것은 선정되지 못한 앨범들이다. 내 취향에 맞지 않거나 연주자의 이전 앨범이 더 좋았기에 상대적으로 이번 앨범이 덜 인상적이었기에 선정되지 못했을 뿐이다. 전반적으로 우리 연주자들의 연주력과 상상력이 더 새로운 곳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특히 우리 전통 음악과 관련한 ‘한국적’이 아니라 한국에서 한국 연주자들이 자기가 하고픈 대로 연주하면서 만들어진 어떤 공통의 정서라는 의미에서 ‘한국적’인 것이 형성되고 있음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다만 그 긍정적인 방향 속에서 공통된 정서 혹은 방향이 잡히면서 다소 뻔하다 할 수 있는 부분도 보였다는 것은 좀 아쉽다. 특히 서정적 연주에서 그런 면이 많이 보였다.
어떤 시작 – 최성호 특이점 (Mirror Ball)
2016년은 기타 연주자들의 앨범이 많았고 그 앨범들 모두 각각의 개성을 드러내어 좋았다. 그 중 최성호 특이점의 <어떤 시작>은 자유로운 즉흥 연주와 작곡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감을 이루어 매우 신선한 음악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를 받을만하다. 자유를 추구하면서도 수평과 수직의 건축적 관계가 잘 유지된 음악이었다. 기타 연주자는 이 앨범과 함께 <바람 불면>을 발매했는데 이 또한 아주 좋았다.
April – 지혜 리 (Caios)
세월호에 대한 아픈 기억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지혜 리의 <April>은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빅 밴드 편성의 앨범이었다는 점에서 흥미를 끌었다. 게다가 길 에반스에서 마리아 슈나이더를 통해 완성된 현대적인 감각이 돋보이는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는 점이 좋았다. 물론 그 완성도 또한 매우 높았다.
Invisible Mind – 김영구(Mirror Ball)
김영구 트리오의 <Invisible Mind>도 좋았다. 안정감 있는 기타 트리오 연주 살짝 밖으로 빠져 긴장으로 사운드의 흔들림을 만들어 내는 부분, 톤의 활용을 통해 사운드의 풍경을 달리 가져가는 부분 등은 그의 음악적 상상력과 구현 능력을 확인하게 해주었다.
야누스,그 기억의 현재 – 임인건 (Page Turner)
임인건의 <야누스, 그 기억의 현재>는 시간의 연속성의 관점에서 과거를 현재에 지속하는 것으로 담아 낸 음악을 들려주었다는 점에서 감동적이었다. 향수의 대상으로 남으려 하는 야누스의 지난 시간을 묘사하기 보다 그것이 현재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 가를 보여준 것이다. 재즈는 과거가 아닌 미래를 향함을 새삼 생각하게 해주는 앨범이었다.
A Throbbing Heart – 김은미(Mirror Ball)
김은미의 <A Throbbing Heart>는 음악적으로는 안정적인 만큼 새로운 부분은 덜하다. 그러나 가볍고 산뜻한 그 질감이 좋았다. 대중적으로 통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은 연주였는데 그럼에도 정서를 연주에 종속시키지 않았다는 점, 그러니까 그룹 연주에 비중을 두어 치고 달리는 연주 자체의 즐거움을 통해 정서적인 가벼움을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평가를 받을 만하다.
Communion – 박지하 (Mirror Ball)
그룹 “숨”의 리더인 박지하의 <Communion>은 장르의 형식적 만남이 아니라 확고한 자기 세계를 지닌 한 뮤지션이 자신의 상상을 표현하는데 국악과 서양 음악을 잘 활용한 음악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 음악이 한국적이면서도 보다 폭 넓은 감상자 층을 수용할 수 있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도 좋았다.
Jazz Spirit – 김세영 트리오 (Mirror Ball)
김세영 트리오의 <Jazz Spirit>는 재즈 피아노 트리오의 매력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연주를 들려주었다. 탄탄한 세 연주자의 호흡, 거침없이 질주하는 연주 등이 독보적이었다. 아마도 앨범 타이틀처럼 재즈 본연의 맛과 아무 생각 없이 연주에만 집중하는 것만을 생각하면 이 앨범이 최고였을 것이다.
Cosmos 25 – 서정민(Groovers)
가야금 연주자 서정민의 <Cosmos 25>는 재즈보다는 창작 국악에 더 가깝다. 하지만 그 창작을 이끈 상상력이나 연주가 재즈 애호가들을 사로잡을 만한 것이었기에 이리 이번 리스트에 포함한다. 앨범에서 가야금 연주자는 25현 가야금이 지닌 무한한 표현력, 동양과 서양을 구분하기 어려운 보편적인 음악적 상상, 그럼에도 결국 한국적인 그림을 만들어 내는 공간적 여백을 살린 사운드를 들려주었는데 그것이 매우 감동적이었다. 전통과 현대의 결합 같은 도식적인 것이 아니라 서구화된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 가야금 연주자의 내면을 그린 뛰어난 앨범이었다.
Mask Dance – 블랙 스트링 (ACT)
ACT 레이블에서 발매된 블랙 스트링의 <Mask Dance>은 해외에서는 한국적인 정서가 매혹적이었고 국내에서는 자유로운 연주와 상상력이 더 매력으로 비춰지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네 악기와 우리네 스타일로 큰 긴장을 만들고 요즈음 유행하는 세련된 “도깨비”같은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해준 앨범이었다.
More Human – 트리오 클로저 (Page Turner)
트리오 클로저의 <More Human>은 비교적 오랜 시간 함께 호흡을 맞추는 것이 얼마나 단단한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보다 인간적인 삶을 살아보자는 주제로 2년 전의 첫 앨범보다 강렬하고 과감한 연주를 펼쳤는데 그것이 매우 설득력이 있었다. 또한 현재의 트렌드를 트리오의 방식으로 소화한 단단한 연주도 매우 좋았다.
Before Midnight – 탁경주 (탁경주)
기타 연주자 탁경주의 <Before Midnight>은 전통적인 양식을 따르는 연주도 신선하게 다가올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 비결은 단순했다. 새로운 것을 찾기 전에 전통적인 부분을 보다 깊게 파고 들어가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었다. 여기에 낭만성을 최대한 살린 연주였기에 더욱 듣기 좋았다.
Forest Of The Fireflies – 이현석(Freely Sound)
색소폰 연주자 이현석의 솔로 앨범 <Forest Of The Fireflies>는 아예 제목이 지닌 이미지를 갖가지 기교를 활용한 자유로운 연주로 매우 직접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추상적인 언어가 그림과 같은 이미지를 명확히 그려낼 수 있음을 보여준 연주였다.
피고지고 – 이명건 트리오 (Mirror Ball)
이명건 트리오의 <피고지고>는 재즈 피아노 트리오의 최근 경향을 독자적으로 잘 해석한 음악을 들려주었다. 그것은 거대한 주제보다는 세 연주자의 자신감 있는 연주를 바탕으로 만들어 낸 것이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내릴만했다. 그렇기에 다채로운 곡들의 연결이 백화점식의 느낌을 주지 않았다는 것도 좋았다.
You Know Me – 강지은 (Chili Music)
강지은의 <You Know Me>는 스타일에 있어서는 딱히 새로울 것은 없었다. 첫 앨범을 내는 연주자들에게서 종종 발견되는 다양한 스타일에서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고픈 욕심도 보였다. 그런데 연주자 개인의 성향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정서적인 측면이 좋았다. 어쩌면 피아노 연주자는 자신의 연주에만 집중했을 텐데 그도 모르는 사이 곡에 칠해진 색감이 매우 산뜻했다. 아마도 큰 주제보다 자기 자신의 경험, 느낌에 집중했기 때문일 것이다.
편의점에 피는 꽃 – 이하윤 (Evans)
밴드 못에서 활동하고 있는 건반 연주자 이하윤의 피아노 솔로 앨범 <편의점에 피는 꽃>은 스타일에 있어서는 자유 즉흥 연주에 해당한다. 그런데 그 긴장 가득한 연주임에도 매우 편한 느낌을 주었는데 곡들이 모두 정해진 이미지를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연주를 조금은 더 길게 가져갔다면 그 이미지가 감상자에게서 더 큰 의미, 풍경으로 다가왔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