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제프 벡 공연을 보았다. 언제부터인가 공연을 잘 보지 않는 사람이 되었지만-신체적인 문제다-일요일 저녁, 집 앞 올림픽 공원에서 열린다 하니 큰 마음을 먹어봤다. 미안하게도 제프 벡은 관람의 두 번째 요인이었다.
새 앨범 <Loud Hailer> 중심이라고 해서 앨범을 듣지 않은 내겐 좀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러나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초연하게 자신의 연주를 이어가는 그의 모습-칼날 같은 톤-은 유년 시절 알았던 제프 벡 그대로였다. 내가 그를 찾지 않아도 그는 그대로 거기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새 앨범 곡들도 좋았다. 블루스를 바탕으로 현재를 반영한 곡들이었는데 그가 불변의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기에 전혀 낯설지 않았다. 여성 멤버들의 연주력도 괜찮았고 여기에 스티비 원더, 비틀즈의 곡, 그리고 “Cause We’ve Ended as Lovers”까지 연주해 한국 팬들을 고려한 공연이었다고 생각한다.
공연을 보며 나는 록을 듣던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를 생각했다. 나이의 차이가 물론 있겠지만 음악과 관련된 부분을 따져보면 록을 듣던 시절에는 왜 정한 방향으로 삶이 진행되지 않는 것인가에 대한 불만을 직선적인 기타 연주를 통해 해소했던 것 같다. 그것이 매일 분화를 거듭하는 재즈를 듣게 되면서 차이, 우연에 삶을 맡기게 된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재즈가 내 삶을 탄력적으로 만들었다며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런 이유로 지금도 재즈를 듣는다. 하지만 가끔 이렇게 록을 만나면-제프 벡의 음악도 재즈 록이라 할 수도 있지만-오히려 하나의 방향으로 단순히 나아가려던 삶이 더 좋지 않았나 싶은 마음이 든다. 이루지 못해 전설이 되어버린 삶에 대한 향수랄까? 세상이 다양한 변수로 가득함을 모르던 시절의 삶에 대한 향수일 지도 모르겠다. 칠십이 넘은 나이에도 연주자들과 세계를 떠 도는 제프 벡처럼 일관된 삶에 대한 향수일 지도 모르겠고.
올림픽 홀에서 진행된 공연은 사람이 꽉 차지 않았다. 그 가운데 나는 무대 왼쪽의 먼 객석에서 공연을 보았다. 근처에 관객이 없어서 다리 꼬고 허리를 비틀어 이상하지만 편한 자세로 공연을 보았다. 다른 일을 하며 음악을 듣듯 공연을 보았다.
그런 중 괜히 촬영을 해보고 싶은 생각에 시작을 했는데 마침 “Cause We’ve Ended as Lovers”가 흘렀다. 1974년도 앨범 <Blow By Blow>에 수록된 이 곡은 여전히 국내에서는 그의 대표곡으로 자리잡고 있다. 앙코르 곡으로 연주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공연 한 가운데, 정확히는 공연이 시작되고 47분이 되었을 때 이 곡이 연주되어 잠시 당황했다. 아무튼 시험 삼아 해봤는데 생각보다 소리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