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자렛의 새로운 피아노 솔로 콘서트 앨범이다. 새 앨범이지만 녹음은 1996년 10월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에 이루어졌다. 이 당시 키스 자렛의 솔로 콘서트는 30분 이상의 즉흥 연주로 진행되었다. 그 연주는 아무런 준비 없이 무대에 올라 피아노 앞에서 순간 떠오르는 음들로 연주를 시작해 이를 발전시키고 그 가운데 새로운 방향을 찾아 나아가는 일종의 여정 같은 것이었다. 키스 자렛은 무한한 상상력만큼 체력 또한 대단해서 그 경이로운 연주를 어려움 없이 이어갔다. 이 앨범이 넉 장의 CD에 담고 있는 이탈리아 네 도시에서 있었던 솔로 콘서트도 8일에 걸쳐 이루어졌다. 1996년 10월 23일 모데나, 25일 페라라, 28일 토리노, 30일 제노바에서 공연이 이루어졌으니 거의 하루 공연하고 다음 날 다음 도시로 이동한 뒤 다음 날 공연하는 식의 일정이었던 셈이다. 정말 쉽지 않은 일정이었으리라.
그런데 이탈리아 4개 도시에서 공연을 펼칠 무렵 그의 건강은 그리 좋지 않았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바이러스에 의한 만성피로증후군으로 통증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다. 게다가 당시엔 어떤 병인지도 잘 모르는 상황이었다. 결국 이들 공연을 끝으로 그는 2년여간 연주를 멈추어야 했다. 그리고 2002년에 이르러서야 솔로 콘서트를 다시 시작할 수 있었는데 알려졌다시피 이전과는 달리 여러 개의 짧은 연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1996년 10월 몸 상태가 좋지 않았음에도 공연을 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그는 당시 그의 주위에 아내, 피아노, 청중, 녹음기, 심지어 몸의 통증에 이르는 천사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앨범 타이틀은 바로 여기에 기원한다.) 주변의 도움과 좋지 않은 건강 상태까지 받아들였기에 가능했다는 것일까?
사실 그는 공연 환경에 예민한 연주자로 유명하지만 악조건 속에서도 명연을 많이 펼쳤다. 대표적인 것이 상태가 완벽하지 않은 피아노로 연주했던 <Köln Concert>가 대표적이다. 이 앨범에 담긴 연주도 그렇다 할 수 있는데 피아노 연주자는 이번 앨범에 대해 자신의 음악 인생에 있어서 “정점”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당시 피아노 연주자 앞에 놓였던 어려움보다는 음악 그 자체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감상자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첫 인상은 어쩌면 이전의 다른 솔로 콘서트 앨범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 번째, 세 번째 감상에 이르러서는 키스 자렛의 발언이 괜한 것은 아니었음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확실히 네 연주는 어느 하나 우열을 가릴 것 없이 모두 이전은 물론 이후의 연주와는 다른 명연이라 할만 하다.
그것은 무엇보다 느리고 촘촘한 전개에서 느낄 수 있다. 각각 두 부분으로 나뉘어진 공연은-앙코르 연주도 있다-극적인 요철(凹凸)이 있기는 하지만 그 상승과 하강, 강약, 속도의 변화가 급격하지 않다. 그렇다고 흐름이 심심한가 하면 또 그렇지 않다. 장쾌한 액션 영화보다는 치밀한 추리극을 보는 듯 하다고 할까? 모든 것은 결국 하나로 이어진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분위기, 스타일의 전환이 서서히 종이에 물이 스며들 듯 진행된다. 강박적으로 같은 패턴을 반복하는 왼손, 그 안에서 부단히 새로운 음, 새로운 멜로디를 찾아내려는 오른손, 그 둘의 어울림 속에서 조금씩 변화하는 왼손, 이에 맞추어 다시 새로운 음, 새로운 멜로디를 찾아 움직이는 오른손이 멈춰 있는 듯하면서도 부단히 움직이는 음악을 만들어 낸다. 변화 속에서도 불변하는 시간의 연속성을 느끼게 하는 음악. 그래서 재즈와 클래식, 긴장과 이완, 환희와 슬픔은 이질적 대립이 아닌 상보적 공존의 관계를 이루어 나타난다.
이처럼 즉흥 연주임에도 여러 음악 요소, 분위기 등의 기묘하다 싶을 정도의 정치한 어울림에 감탄하다 보면 현재의 솔로 콘서트가 살짝 아쉬워지기도 한다. 물론 요즈음의 솔로 콘서트 또한 다른 차원의 아름다움을 지녔다. 하지만 부단히 새로운 것을 생성하는 역동적인 맛은 확실히 30분 이상의 긴 연주에서 더 매혹적임을 부인하기 어려울 듯 하다.
끝으로 앨범의 녹음을 이야기해야겠다. 이번 마지막 장시간 솔로 콘서트들은 애초에 앨범으로 제작될 계획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키스 자렛이 직접 특별한 엔지니어와 보조 장비 없이 가지고 있던 DAT 녹음기와 마이크로 공연을 녹음했고 그 음질이 상당히 만족스러웠기에 이렇게 앨범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다. 정말 천사가 그의 곁에서 함께 했었던 모양이다.
최근에 쓰신 리뷰를보고 의심없이 구입해 듣고 있습니다. 왜 음반화가 안되었는지 이해가 안갈 정도로 너무 좋네요. 연주 당시에 감정의 변화 폭이 지금보다 더 널뛰는? 느낌이 오랜만에 마주친 옛 애인의 뒷모습을 보는거 같네요.
고맙습니다. 키스 자렛은 그냥 의심 없이 들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ㅎ 요즈음보다 확실히 과거의 연주가 더 매력적이긴 하죠? 요즈음 연주는 그 나름대로 다른 매력이 있지만 말이죠. 이래서 재즈가 어려운가 봅니다. 재즈를 좋아하는 감상자마저 어느 지점에 머무르기를 원하는데 그걸 떨치고 앞으로 나아가니 말이죠.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