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Breaks – Norah Jones (Blue Note 2016)

초심으로 돌아온 노라 존스의 새로운 명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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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 존스를 이야기 할 때 늘 언급되는 것이지만 그녀의 첫 앨범 <Come Away With Me>는 정말 대단했다. 과연 이런 음악이 대중적으로 통할까 싶었던 음악이 전 세계적으로 400만장 이상 팔리는 대성공을 거둔 것이다. 그 결과 2003년 그래미 시상식은 그녀에게 ‘올해의 음반’, ‘올해의 레코드’, ‘최우수 신인상’, ‘올해의 노래’를 비롯해 총 7개 부분의 상을 수여했다. 재즈 아티스트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성공이다. 앞으로도 이런 기록은 깨지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그녀의 성공은 노라 존스 현상으로 이어졌다. 그녀 개인의 음악이 재즈계의 판도를 바꾸어 버린 것. 대형 음반사들은 속속 그녀와 유사한 스타일의 보컬들을 발굴하여 앨범을 선보였다. 하지만 노라 존스만큼의 성공을 거둘 수 없었다. 스타일은 유사할 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노라 존스만의 음악적 매력을 떠라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노라 존스 자신도 이 앨범에 담긴 신비하리만치 특별한 음악적 아름다움을 다시 반복하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이 앨범의 매력은 힘을 빼고 편안하게 이야기하는 듯한 노래와 쓸쓸함과 따스함을 머금은 쓸쓸함과 따스함이 공존하는 사운드 때문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이 외로움을 한쪽에 안고 살아가는 도시인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 같다. 지금까지도 국내 음원 사이트 재즈 차트에 “Don’t Know Why”가 1위에 올라 있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그런데 장르적인 부분에 있어서 그녀의 음악은 모호한 부분이 많았다. 재즈로 소개되기는 했지만 실은 팝, 포크, 컨트리의 비중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실제 그녀가 수상한 그래미상들은 재즈와 상관이 없는 것들이다. 때문에 국내외에서 이에 대한 논쟁이 있기도 했다. 게다가 <Feels Like Home>(2004), <Not Too Late>(2007), <The Fall>(2009), <Little Broken Hearts>(2012) 등 이어진 앨범들에서 그녀는 갈수록 재즈와 멀어진 음악을 선보였다. 여기에 더 리틀 윌리스, 퍼스 앤 부츠, 빌리 조 암스트롱 등과 함께 한 앨범들은 어땠던가? 컨트리, 블루그래스 계열의 음악을 들려주지 않았던가? 이런 이유로 나 또한 그녀를 재즈를 노래할 줄 아는 팝 보컬 정도로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그녀의 여섯 번째 앨범 발매 소식을 들었을 때 재즈 애호가로서 그리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재즈적 정체성을 드러낸 연주

그러나, 막상 앨범을 들어보니 예상과 달랐다. 이번 앨범에서 노라 존스는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의 근원으로 돌아간 음악을 들려준다. 나아가 재즈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전달할 수 있음을 입증한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피아노를 중심에 둔 사운드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녀가 피아노로 작곡을 하게 된 것은 2014년 워싱턴 케네디 센터에서 있었던 블루 노트 75주년 기념 공연이 계기가 되었다. 이 공연에서 솔로로 “The Nearness Of You-첫 앨범에 수록되었던-를 연주한 그녀는 닥터 로니 스미스, 웨인 쇼터, 맥코이 타이너, 로버트 글래스퍼 등의 연주를 보면서 오랜 역사를 지닌 블루 노트의 재즈 가족의 일원이라는 느낌을 받았고 그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 그리고 이러한 느낌을 기억하며 휴식기를 가지는 중 아이가 생겼고 갑자기 작곡에 대한 의지가 생겨 부엌에 있는 피아노로 작곡을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곡은 전통적인 재즈의 기운을 담은 것이었다. 그 곡이 마음에 들은 그녀는 이 곡을 녹음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것은 앨범을 구성할 정도의 작곡으로 이어졌다.

이전까지 그녀의 음악은 어쿠스틱이건 일렉트릭이건 기타가 중심이 되었었다. 그것도 포크나 컨트리 스타일의 기타였다. 하지만 이번 앨범은 피아노로 작곡을 했고 이를 반영해 피아노를 중심에 둔 편성으로 녹음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해서 기본 편성도 결정되었다. 비센트 아처(베이스), 브라이언 블레이드(드럼)와 트리오를 이룬 것. 이 트리오의 연주는 노라 존스만의 여유를 유지하면서도 보통의 재즈 트리오에서 맛볼 수 있는 긴장과 이완의 감칠맛을 제대로 맛보게 해준다. 앨범에서 유일한 트리오 편성의 곡 “It’s A Wonderful Time For Love”가 그렇다.

또한 피아노 연주자 호레이스 실버의 곡에 가사를 추가한 “Peace”의 경우 트리오의 연주는 호레이스 실버는 물론 빌 에반스 트리오의 인상주의적 사운드를 연상시킨다. 그런데 이 곡에서는 웨인 쇼터의 색소폰이 트리오와 함께 했다. 이 재즈의 거장은 푸른 색을 연상시키는 이지적인 스타일, 어떠한 상황에서도 마음의 평정심을 잃지 않는 스타일로 정평이 나있다. 노라 존스가 데뷔 앨범 전에 발매했던 EP에서도 연주했던 곡인“Peace”에서도 그의 색소폰 연주는 앨범의 주인공이 편곡하며 고려했을, 제목에 어울리는 차분함, 편안한 긴장을 반영한 고요함을 드러낸다.

웨인 쇼터의 참여는 앨범 전체에서 네 곡에 지나지 않지만 앨범의 재즈적인 색채를 강화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특히 듀크 엘링턴의 곡을 연주한, 앨범의 마지막 곡 “Fleurette Africaine (African Flower)”에서의 신비롭기까지 한 연주는 노라 존스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만든다. 가사 없이 멜로디를 허밍으로만 소화했는데 그것이 마치 멜로디 가르도, 마들렌느 페루 같은 스모키 보이스의 그윽함을 느끼게 한다. 여기에 그녀의 피아노 연주 또한 단순함 속에 시적인 면을 드러낸다. 노라 존스의 말마따나 웨인 쇼터 쿼텟에 다닐로 페레즈를 대신해 그녀가 피아노를 연주한 듯한 느낌을 준다.

<Come Away With Me>의 매력을 새로이 변용하다.

위에 언급한 곡들은 긴장이 곳곳에 드러난다. 그래서 이전보다 무거워진 느낌을 준다. 그래서 평소 그녀의 음악을 따라온 감상자들은 다소 낯설어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머지 곡들은 좀 다르다. 위에 언급한 곡들이 그녀의 음악적 근원인 재즈 연주자이자 보컬로 돌아간 노라 존스를 느끼게 한다면 나머지 곡들은 그녀에게 성공을 가져다 준 <Come Away With Me> 시절로 돌아간 노라 존스를 드러낸다. 따라서 노라 존스의 애호가라면 반가워할 첫 앨범의 사운드를 들려준다.

앨범 발매에 앞서 먼저 공개된 “Carry On”이 가장 좋은 예이다. “Come Away With Me”의 소박한 편안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한다. 길버트 오 설리번의 “Alone Again”을 연상시키는 멜로디를 지닌 “Tragedy”도 마찬가지다. “비극”이란 제목과 달리 편안하고 부드러운 노라 존스의 매력을 새삼 느끼게 해준다. 이것은 닐 영의 곡을 새로이 노래한 “Don’t Be Denied”에서도 반복된다. 이들 곡에서 첫 앨범의 추억을 느끼게 되는 데에는 첫 앨범에 참여했던 토니 쉐어의 기타 연주가 한 몫 한다. 한편 앨범 타이틀 곡은 초기 시절과 함께 2012년도 앨범 <Little Broken Heart>를 많이 연상시킨다. 조금 순화된 버전이랄까?

앨범에서 나는 음악적으로는 “Burn”, “Peace”, “Fleurette Africaine (African Flower)”등 재즈적 긴장을 담은 곡을, 대중적으로는 “Tragedy”, “Carry On”처럼 첫 앨범의 편안함을 새로이 재현한 곡들을 인상적이라 꼽고 싶다. 그런데 이 두 스타일의 중간에서 색다른 느낌을 주는 곡을 꼽는다면 그녀의 그루브한 왼손 피아노 연주에 또 다른 재즈의 거장 닥터 로니 스미스의 오르간이 흐르는 “Flipside”를 제일 먼저 꼽고 싶다. 그녀가 좋아한다는 레스 맥켄의 펑키한 분위기의 소울 재즈 곡“Compared To What”를 참조한 듯한 사운드가 이전까지 맛볼 수 없었던 그루브한 그녀를 발견하게 해준다. “Once I Had Laugh”도 전반적인 측면에서는 그녀의 초기 사운드와 통한다 할 수 있으나 블루지한 스타일에 끈적거림을 제거한 브라스 섹션의 등장이 느낌을 새롭게 한다. 한편 스트링 앙상블이 가세한“Sleeping Wild”는 사운드에 있어서는 평이하다 할 수 있지만 곡 자체에 어린 우수 어린 분위기가 새롭다. 어쩌면 또 다른 그녀를 발견하게 해주는 인기 곡이 되지 않을까 싶다.

노라 존스의 새로운 역작

요컨대 이번 앨범은 두 가지 측면에서 처음으로 돌아간 노라 존스의 모습을 담고 있다. 하나는 재즈 연주자겸 보컬로서의 그녀의 근원으로 돌아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첫 앨범 <Come Away With Me>의 편안한 위로를 느끼게 하는 사운드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두 가지 측면에서의 돌아감이 역행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근원과 출발지로 돌아갔지만 그녀의 음악은 14년전보다 한층 더 발전된 모습을 보인다. 처음으로 돌아가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큰 걸음을 내디뎠다고나 할까?

그 결과 이번 앨범은 첫 앨범을 들으며 재즈 감상자들이 느꼈던 음악적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고 앨범이 거듭될수록 새롭지만 설득력이 다소 부족했던 음악에 대한 갈증, 향수를 해소하는 움악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섯 번째 앨범이 되어서야 진정 재즈 애호가들이 원하면서도 대중적인 측면이 유지된 완성도 높은 재즈를 선보이게 된 것이다.

나는 상업적으로 이 앨범이 하나의 현상에 가까웠던 <Come Away With Me>를 능가하는 인기를 얻으리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대신 이 앨범이 지금까지 공개된 그녀의 음악 가운데 가장 장르적 정체성이 명확한 앨범, 재즈라는 소수 향유의 장르로 보다 많은 감상자들을 설득한 앨범으로 기억되리라는 점은 확실하다. 그녀의 음악 인생에서 새로운 여명(Day Breaks)이 이제 막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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