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빅 밴드 하면 듀크 엘링턴이나 카운트 베이시로 대표되는 스윙 시대의 빅 밴드, 그러니까 10명 이상의 연주자들이 마음을 모아 경쾌하게 스윙하고 그 가운데 몇 솔로 연주자들이 흥겹게 자신만의 매력을 발산하는 밴드와 그 음악을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빅 밴드의 이미지는 재즈가 대중 음악 그 자체였고 특히 스윙 재즈가 클럽의 댄스 음악을 의미하던 시기에 형성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비밥 혁명 이후 재즈가 예술의 음악으로 격상되면서 빅 밴드 음악 또한 이전과는 다른 보다 진지하고 실험적인 시도를 보였다. 특히 길 에반스는 클래식을 연상시키는 우아하고 정교한 편곡과 재즈 본연의 자유로움을 결합한 음악으로 빅 밴드 음악의 새로운 기원을 이룩했다.
1960년 미국 미네소타의 윈덤에서 태어난 마리아 슈나이더는 길 에반스의 계보를 직접적으로 잇는 작곡가이자 오케스트라의 리더이다. 그녀는 미네소타 대학, 이스트만 스쿨 오브 뮤직, 마이애미 대학 등에서 음악 이론과 작곡 공부를 마친 후 길 에반스의 눈에 띄어 그의 악보 채보자(Copyist)겸 조수로서 일했다.
길 에반스와의 활동을 바탕으로 1992년부터 그녀는 자신의 오케스트라를 결성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이를 통해 우아하고 부드러운 그러면서도 음악적 이미지가 선명한 빅 밴드 음악으로 자신만의 입지를 다졌다. 그 가운데 2004년도 앨범으로 이듬해 그래미 상 최우수 대편성 앨범 부분을 수상한 <Concert In The Garden>에 이어 2007년에 발매된 <Sky Blue>는 그녀의 음악적 상상력과 편곡 기법, 오케스트라의 운용 모두에서 최상의 모습을 보여준 앨범이었다.
마리아 슈나이더는 20여명의 연주자들과 함께 하면서도 절대 규모를 강조하지 않는다. 보통의 빅 밴드가 넘실대는 리듬과 총주가 주는 큰 울림으로 수직적인 느낌을 준다면 그녀의 빅 밴드는 관악기들이 스트링 악기들만큼이나 섬세하게 어울리면서 수평적인 느낌을 준다. 첫 곡 “The “Pretty” Road”같은 곡이 대표적이다. 이 곡에서 그녀는 세기보다는 섬세함을 앞세운 편곡을 통해 푸른 하늘 아래 광활한 들판 사이로 난 끝 없는 길의 이미지를 제시한다. 그래서 어떤 면에 있어서는 팻 메시니의 여정의 정서를 떠올리게 한다. 특히 루시아나 수자의 보컬이 그렇다. 이러한 정서적 유사성은 이 곡이 그녀의 고향 윈덤의 풍경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것에 기인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한편“Aires de Lando”에서는 깊은 인상을 받았던 페루 여행의 기억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추억을 완성하기 위해 그녀는 페루의 란도(Lando) 음악을 차용했다. 페루의 전통 타악기 카혼을 사용해 이 란도 음악의 복잡한 박자를 복합적으로, 하지만 어지러운 느낌을 주지 않게 사용했다. 그리고 스캇 로빈슨의 담백한 클라리넷 솔로를 통해 슬픔을 안으로 삼킨 페루 음악의 이국적 서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실내악적인 우아함이 돋보이는 편곡과 스트링 오케스트라를 연상시키는 부드러운 밴드의 질감 연출은 색소폰 연주자 리치 페리를 위한 곡으로 색소폰과 빅 밴드의 어울림이 클래식 콘체르토의 느낌을 주는“Rich’s Piece”와 오랜 친구의 사망 소식을 듣고 작곡했다는 타이틀 곡“Sky Blue”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특히 영웅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어울릴 법한 타이틀 곡은 눈이 부실 정도로 푸르기에 오히려 슬픈 하늘을 동경하게 만든다.
그래도 앨범의 백미는 “Cerulean Skies”다. 이 곡은 2008년 그래미 상 최우수 연주 작곡 부분을 수상할 정도로 구조적으로 탄탄하게 짜여 있지만 그 흐름이 전형을 따르기보다는 흥얼거리듯 계속 상상을 따라 나아가는 듯한 자유로운 운동감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20분이 넘는 연주 시간을 지루하다 생각하지 못하게 한다.
마치 아이맥스 영화를 보는 듯한 광대한 분위기는 곡이 새를 주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곡 제목은 “푸른 하늘”이지만 실은 그 안에는 “Cerulean Warbler”, 우리 말로 청솔새라 불리는 새가 자리잡고 있다. 평소 마리아 슈나이더는 새들의 비행을 관찰하는 것을 즐긴다고 한다. 이 곡 또한 뉴욕의 센트럴 파크에서 관찰한 새들의 비행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곳곳에 연주자들이 만들어 낸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도니 맥캐슬린(색소폰), 게리 베르사체(아코데온), 찰스 필로우(알토 색소폰) 등의 솔로 연주는 창공을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새들의 날렵한 움직임을 그린다.
마리아 슈나이더의 음악은 전통적인 빅 밴드와는 다른, 길 에반스의 유산을 계승하면서도 그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한 새로운 빅 밴드 음악을 경험하게 해준다. 게다가 복잡하고 어려운 느낌을 주지 않고 비교적 쉽게 듣고 정서적 부분뿐만 아니라 그 아래의 음악적인 부분까지 음미하고 감탄하게 만든다. 그 최고의 결과물이 바로 이 앨범이었다. 이것은 이후 <Winter Morning Walks>(2013>, <The Thompson Fields>(2015) 등의 앨범이 발매된 현재에도 유효하다. 아니 그녀 외에 여러 빅 밴드들의 앨범 가운데에서도 이 앨범의 존재감은 독보적이다. 지난 10년의 명작이 아니라 재즈사 전체의 명반으로 기억될 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