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적 영감은 다양한 곳에서 나타난다. 일상 곳곳에 관심을 두고 있으면 어느 순간 불쑥 창조의 욕구가 불쑥 솟아오른다. 하물며 다른 예술에서 영감을 얻는 일도 많다. 음악에서 문학적 영감을 얻는가 하면 문학에서 음악적 영감을 얻곤 하는 것이다.
몇 해 전부터 ECM 레이블에서는 페르시아의 신비주의 시인-이슬람 법학자이기도 했던- 잘랄루딘 루미의 시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음악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색소폰 연주자 찰스 로이드, 트럼펫 연주자 존 하셀 등이 루미의 시에서 영감을 받아 곡을 만들었으며 독일 출신의 쿼텟 시미놀로지는 시인의 시를 가사로 노래했다. 또 피아노 연주자 도드 구스타프센은 올 해 앨범 <What Was Said>에서 여성 보컬 시민 탠더의 목소리로 루미의 시를 영어로 번역해 가사로 사용하여 만든 곡을 선보였다.
이제 여기에 색소폰 연주자 트릭베 세임을 추가해야겠다. 2010년 피아노 연주자 안드레아스 우트넴과의 듀오 앨범 <Purcor>이후 오랜만에 선보이는 새 앨범에서 이 노르웨이 출신의 연주자는 루미의 시를 가사로 사용한 새로운 음악을 들려준다.
그는 루미의 시를 페르시아의 시인이 아니라 보편적인-서양 혹은 유럽의 관점에서- 정서에 호소하는 현대적인 것으로 바라본 듯 하다. 아랍적인 색채보다는 클래식, 유럽의 포크 음악 그리고 재즈적인 색채가 주를 이루니 말이다. 영어로 시를 번역했기 때문일까? 이런 면에서는 토드 구스타프센의 <What Was Said>와 유사한 면이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경건함, 순수함, 동경의 이미지는 토드 구스타프센과 다른 느낌을 받게 한다.
오히려 곡에 따라 그의 음악은 힐리어드 앙상블과 얀 가바렉의 만남이 주었던 형언하기 어려웠던 가슴 뭉클함에 더 가깝다. 특히 첫 곡 “In Your Heart”는 절로 감상자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 정도로 깊은 울림을 전한다. 이러한 감정은 노래를 담당한 노르웨이 출신의 보컬 토라 아우게스타드의 힘이 크다. 맑고 청아한 음색으로 매우 담담하게 노래하는데도 그 담담함이 시적인 여러 감정들을 불러 일으킨다.
가사가 있고 보컬을 앞세웠다고 해서 연주를 뒤로 물러서게 한 것은 아니다. 트릭베 세임은 자신의 색소폰 외에 프로데 할틀리의 아코데온, 사반테 헨리손의 첼로와 함께 만든 사운드는 그 자체로 아름답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연주자로서 그의 존재감이다. 그는 결코 자신의 색소폰을 앞에 내세우지 않는다. 보컬 때문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다른 두 악기와의 관계에서도 그렇다. 아코데온과 첼로가 전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면 그의 색소폰은 최소한의 움직임만 보인다. 그런데 그것이 참 감탄할 정도로 적절하다. 특히 앞에서 언급한 “In Your Heart”에서의 움직임은 얀 가바렉 이상의 감동을 준다. 그래서 루미의 시를 너머 결국 그의 음악 자체에 관심을 갖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