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cept 01 – 강성모 (Centron Wave 2016)

추상적인 소리의 조합을 통한 상상의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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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음악에 작곡자 혹은 연주자가 부여한 의미가 감상자에게까지 그대로 전달되기는 매우 어렵다. 보통 우리가 어려운 음악이라고 하는 것은 이들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는 것들이다. 의미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 어려움은 특히 감상자의 이전 음악 경험과는 다른 방식으로 음악이 진행될 때 발생한다. 그래서 정해진 멜로디가 없는 것 같고 리듬은 복잡하며 화성은 불협으로 느껴진다. 감상자의 경험치를 벗어난 방향으로 나아가는 음악은 외국어와도 같다.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강성모의 두 번째 앨범 <Concept 01>은 친근함보다는 생경함이 더 많은 앨범이다. 특히나 멜로디 중심으로 음악을 듣는 감상자라면 더욱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재즈를 중심으로 이런저런 전위적인 연주들에 익숙한 나이지만 소리의 질감부터 고민해 하나씩 소리를 더해 만들어낸 음악을 단번에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마도 당신 또한 나와 같은 첫인상을 받을 확률이 크다.

소리의 탐구에서 시작한 음악

여기에는 그의 음악이 전자음악이라는 것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현재 전자 음악 하면 우리는 강박적인 전자 리듬이 공간을 압도하며 감상자들의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흥겨운 테크노, 일렉트로니카 음악을 떠올린다. 그러나 강성모의 음악은 이와는 거리가 멀다. 원래 기타 연주자였다가 미디 악기에 손을 대었다가 아예 전자 음악의 세계에 빠진 그의 음악은 리듬이 지배하는 단순반복적인 세계가 아니라 다양한 추상적 소리가 각자의 맥박으로 요동치며 겹치고 펼쳐지는 비정형의 세계를 지향한다.

보통의 작곡가가 멜로디-리듬-화성 중 어느 하나부터 출발해 곡을 쓴다면 강성모의 작곡은 소리의 선택에서 작곡을 출발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 소리의 선택은 아무 것도 없는 백지의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이후 다른 소리의 선택 또한 직관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 조차 음악이 어디로 나아갈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완성을 향해 나아간다. 기존 작곡가가 곡을 쓰고 이후 편곡과정을 통해 입체적인 하나의 곡으로 완성한다면 강성모는 작곡과 편곡을 동시에 해나가는 셈이다. 그것도 작곡이지만 재즈 연주자들의 즉흥적인 솔로처럼 순간적인 감흥에 따라서 말이다.

앨범의 시작을 알리는 “Pitch Crasher”는 이러한 그의 작곡 방식을 잘 드러내는 곡이다. 이 곡은 치익~~하는 백색소음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감상자를 향한 모르스 부호 같은 발신음이 등장하고 여기에 소용돌이 같은 전자 음이 제목이 말하듯 불청객처럼 이어진다. 아무 것도 아닌 소리의 뭉치에서 하나의 소리가 솟아올라 김춘수의 시처럼 꽃 같은 의미를 획득하는 것이다.

추상적인 분위기 속에 담긴 이야기들

그런데 아무리 어려운 외국어도 시간을 들여 학습을 거듭하면 익숙한 언어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어렵게 아니 낯설게 느껴지는 강성모의 음악은 감상을 거듭하면 숨겨진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처음자막 없이 외국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었을 때 느끼는 짜릿함 이상으로 감상의 폭, 인식의 영역이 확장되는 듯한 해방감을 선사한다. 이러한 해방감은 곡 안에 감추어진 이야기를 발견하고 공감하는 것을 통해 이루어진다. 강성모는 곡마다 이야기가 있고 그것들이 모여 더 큰 이야기를 지닌 앨범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곡에 담긴 이야기는 표현주의적인 색채가 강한 곡들에서 보다 쉽게 발견된다. 예를 들면 “Zero Hour”의 경우 오래된 괘종시계를 연상시키는 저음과 세 개의 시계 바늘이 움직이는 듯한 소리를 바탕으로 긴장 가득한, 그럼에도 서정성을 지닌 건반, 심리적 효과를 유발하는 여러 추상적 소리들이 홀로 이런저런 추념에 빠지게 되는 0시(時)를 그리게 만든다. 이어지는 “Electro Bloom”은 어떤가? 도입부만 들어도 꽃이 만개하고 벌들이 꿀을 찾아 분주히 움직이는 봄날의 정원을 그리게 하지 않는가?

앨범에서 가장 표현주의적 색채가 강하게 드러나는 곡은 아마도 “Damaged”일 것이다. 바이탈사인 모니터의 맥박 상태를 알리는 신호를 연상시키는 “삐” 소리 위로 흐르는 단속적인 여러 소리들이 생과 사를 앞에 둔 불안하고 긴박한 상황의 응급실을 상상하게 한다. 이것은 이어지는 마지막 곡 “The Beauty Of The Void”와 연결되며 보다 강렬한 서사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추상적인 패드(Pad)소리가 우주적이다 싶을 정도로 거대한 공간감을 연출하는 이 곡은 그만큼의 공허한 정서를 유발한다. 모든 것이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소멸되는 무(無)의 공간을 그리게 하는데 그것이 앞의 “Damaged”의 위급함의 결과라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표현적인 면이 강하다고 해서 강성모가 소리자체로 상황을 묘사하는데 집중했다는 것은 아니다. 음파들의 인공적 조합을 통해 만들어진 소리를 재료로 하는 전자 음악의 성격을 활용해 비정형의, 심리적인 풍경을 그리기도 한다.

“On The Edge”같은 곡이 대표적이다. “Zero Hour”와 함께 앨범에서 드문 서정적 분위기를 지닌 이 곡은 잡음, 긴장을 머금은 피아노 선율 등이 선택의 순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심리적 갈등을 느끼게 한다. “Alpha Centauri”도 제목처럼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별들의 모임인 프록시마 켄타우리에서 가장 어두운 별인 알파 별을 묘사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의 느낌은 우주만큼이나 광활하고 그 안에서 다양한 소리들이 음악이 될 준비를 하고 있는 강성모의 상상의 공간을 그리게 한다. “Pioneer”는 질주하듯 이어지는 여러 소리들이 분주한 우리의 낮 시간을 그리게 한다.

감상자에게 맡겨진 열린 이야기

자신도 끝을 예상하지 못한 채 직관을 따라 음악을 만든다고 했음에도-어떤 면에 있어서는 음악을 찾는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그 안에 이야기를 담으려 했다는 것은 모순이 아닌가 싶은 감상자가 있을 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강성모가 곡을 만든 후 스스로 제 1차 감상자가 되어 음악을 들으며 곡의 느낌을 정리해 제목을 정하고 다시 이에 걸맞은 추가 작업을 했기 때문이다. 이 작업은 강성모에게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일이었다. 보통의 일렉트로니카뮤지션들이 하나의 곡에 대한 여러 리믹스 버전을 만들어 내듯이 그 또한 분명 상상이 거듭되고 그에 따라 새로운 소리를 추가하고픈 욕구 사이에서 고민했을 것이다. “Path”가 미완성의 부제를 달고 수록된 것이 그 증거이다.

하지만 그는 앨범 전체를 아우르는 이야기의 차원에 있어서는 자신이 만들어 낸 유일한 이야기 하나를 감상자에게 강요하지는 않는다. 앨범에 수록된 9곡은 서사적이지만 영화의 사운드트랙처럼하나의 이야기에 종속되기 보다는 감상자에 따라 다양한 접근이 가능한 역동적이고 가변적인 것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나 같은 경우, 백색 소음에서 탄생한 소리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질주의 여행을 떠나고 다시 소멸하는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었다. 당신은 아마도 나와 다른 상상을 할 것이다.

강성모가 결국 감상자에게 원하는 것은 적극적인 감상을 통해 그 이야기를 개인적인 방식으로 구체화하는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앨범 타이틀이 그냥 “생각(Concept)”인 것도 이 때문이다. 백지의 상태에서 소리를 만나고 그 소리들을 조합하여 그만의 음악을 만들고 그것에 서사적 의미를 부여했듯이 그는 감상자 또한 개인적 상상의 과정을 통해 그만의 이야기를 구상(Concept)하기를 바란다. 나는 이 과정이야 말로 이 추상적인 앨범을 재미있게 감상하는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한다. 또 이를 통해 감상자들이 강성모의 음악적 진가를 확인하게 할 것이라 생각한다.

자. 그럼 이제 앨범 감상을 시작해 보자. 상상계로 여행을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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