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 재즈, 포크를 버무려 만든 위로의 칵테일
특정 장르의 음악만 들으며 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평소 좋아하지 않았던 스타일의 음악임에도 그 곡만큼은 저절로 내 마음에 들어오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사실 그런 식으로 음악 감상의 폭은 넓어진다.
이것은 직업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들 또한 무슨 구도자처럼 한 장르의 음악만 듣지는 않는다. 삶의 굴곡처럼 이들 또한 다양한 음악을 순차적으로, 동시적으로 듣는다. 그런 중에 자신이 하고픈 음악을 찾게 되는 것이다. 요즈음 등장하는 음악 들이 실로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하고 개인화된 것은 이러한 음악인들의 개인적인 취향에 기인한다. 이들은 특정 장르의 음악을 추구하면서도 새로운 방향을 위해 기꺼이 좋아하는 다른 장르의 음악을 아우르곤 한다.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앨범의 주인공 캔디스 스프링스도 그런 경우다. 미국 테니시 주의 내쉬빌 출신의 이 싱어송라이터는 소울과 재즈를 들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 가운데 샤데이, 로버타 플랙, 엘라 핏제랄드, 아델, 노라 존스, 로린 힐, 빌리 할리데이, 에리타 바두, 코린 배일리 래, 니나 시몬, 사라본, 루더 반데로스, 다이아나 크롤 등은 그녀에게 많은 음악적 영향을 주었다.
한편 그녀는 노래 이전에 펜더 로즈 피아노 연주를 즐겼다. 이 빈티지 악기로 소울과 재즈가 지닌 복고적인 정서를 표현하곤 했다. 노래를 하게 된 것은 내쉬빌에서 보컬로 활동하던 아버지 스캣 스프링스의 권유 때문이었다.
그녀가 전문 싱어송라이터의 삶을 시작하게 된 데에는 리한나를 발굴하고 샤키라,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켈리 클락슨 등 여러 유명 (여성) 팝 스타들과 함께 했던 제작자 이반 로저스와 칼 스터켄 듀오와의 만남이 결정적이었다. 이 작곡가 듀오는 17세의 그녀가 만든 데모 음원을 듣고 앨범 제작을 제안 했다. 하지만 그녀의 부모님과 그녀는 이를 거절했다. 전문 싱어송라이터의 삶을 시작하기에는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운명은 피할 수 없는 법. 몇 해 뒤 그녀는 이반 로저스와 칼 스터켄을 찾았고 두 사람은 그녀를 블루 노트 레이블의 수장인 돈 워스에게 소개해 오디션을 받게 했다. 오디션 곡으로 그녀는 돈 워스가 제작을 담당했던 보니 레잇의 히트 곡인 “I Can’t Make You Love Me”를 선택했다. 이 과감한 선택은 성공적이었다. 돈 워스는 그녀의 노래를 듣고 그 자리에서 계약을 결정했다.
그러나 블루 노트는 곧바로 정식 앨범을 제작하지는 않았다. 그에 앞서 그녀의 가능성을 가늠하겠다는 의도였는지 레이블은 4곡이 담긴 미니 앨범 제작을 선택했다. 그녀의 이름을 걸고 발매된 미니 앨범은 기대 이상의 긍정적인 호응을 얻었다. 데이빗 레터맨 쇼, 지미 키멜 라이브 등 TV 프로그램이 그녀를 불렀으며 여러 음악 페스티벌들도 그녀를 원했다. 한편 미니 앨범이 발매될 무렵 프린스는 그녀가 샘 스미스의 “Stay with Me”를 노래한 영상을 보고 “퍼플 레인” 30주년 공연에 그녀를 초대하는 등 성원을 아끼지 않았다.
미니 앨범의 적지 않은 호응에 힘입어 블루 노트는 캔디스 스프링스의 첫 앨범 제작을 계획했다. 그런데 첫 앨범 제작을 앞두고 그녀는 음악적인 고민에 빠졌다. 미니 앨범을 발표하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자신의 진솔한 모습을 담은 노래를 부르지 못했다는 불안을 느꼈다. 그래서 이반 로저스와 칼 스터켄과의 상의 끝에 래리 클라인을 제작자로 맞이했다. 래리 클라인은 알려졌다시피 마들렌느 페루, 멜로디 가르도, 허비 행콕 등의 성공적인 앨범을 제작했던 명 제작자이다. 특히 그는 해당 연주자나 보컬의 잠재되어 있던 음악적 가능성을 이끌어 내는 것에 능력이 있다. 다행히 그 또한 단번에 캔디스 스프링스의 노래에 반했다. 그래서 앨범 제작을 담당하기로 결심했는데 스튜디오에서는 그냥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느끼는 대로 해보라고 했다고 한다. 아마도 이 젊은 싱어송라이터가 소울과 재즈 모두에서 역량을 지녔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아우르기 위한 선택이었던 듯싶다.
그렇다면 캔디스 스프링스는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어떻게 활용했을까? 현명하게도 그녀는 모든 것을 혼자 하겠다는 과욕을 부리는 대신 협업을 선택했다. 먼저 그녀는 혼자서 앨범을 위한 곡을 쓰는 대신 기존 이반 로저스와 칼 스터켄 듀오는 물론 노라 존스와의 작업으로도 잘 알려진 제스 해리스, 그리고 그렉 웰스, 린디 로빈스 등의 작곡가와 함께 곡을 썼다. 기대했던 대로 이들 작곡가들은 캔디스 스프링스의 스모키 보이스가 지닌 장점을 잘 살릴 수 있는 곡을 완성해 주었다.
한편 래리 클라인은 그대로 캔디스 스프링스에게 어울린다는 생각에 싱어송라이터 쉘비 린의 “Thought It Would Be Easier”와 “Leavin;” 그리고 펑크 밴드 워(War)의 1972년도 히트 곡 “The World Is Ghetto”를 노래하게 했다. 이에 그녀 또한 평소 듣고 좋아해 즐겨 불렀던 곡들 중 70년대에 활동했던 영국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주디 티주크(Judy Tzuke)의 “Place To Hide”와 피아노 연주자 말 왈드론이 쓴 스탠더드 재즈곡 “Soul Eyes”를 노래하기로 마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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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렌스 블랜차드(트럼펫), 딘 파크스, 제스 해리스(기타), 비니 콜라이우타(드럼), 피터 쿠즈마(오르간), 댄 루츠(베이스), 피트 코펠라(타악기) 등의 일급 연주자들과 함께 2015년 가을 2주에 걸쳐 녹음한 이번 앨범에서 캔디스 스프링스는 재즈, 포크, 소울이 어우러진 음악을 들려준다. 그런데 이 앨범에서 그녀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폭 넓은 음악적 취향이나 소화력이 아니라 정서적인 부분이 아닐까 싶다. 평소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들으며 그녀가 받았던 위안의 느낌을 전달하고 싶어했던 것 같다. 그것이 앨범 제작에 앞서 그녀가 고민했던 진솔한 자신의 모습을 담은 노래, 음악이 아닐까 싶다.
실제 앨범은 밝고 긍정적인 포크 성향의 첫 곡 “Talk To Me”부터 장르의 문제를 생각하기 전에 편안함으로 감상자의 긴장을 해방시킨다. 사랑의 감정을 주제로 한 곡이지만 그 분위기 만큼은 무슨 어려움이건 그녀에게 이야기하라고 하는 것 같다. 이것은 피아노와 음악이 늘 자신의 안식처였다며 그 마음을 담아 노래했다는 “Place To Hie”, “Thought It Would Be Easier”, “Neither Old Nor Young”, “Fall Guy”, “Leavin’” 등 소울, 재즈보다는 포크적인 색채가 강한 곡들을 통해 이어진다. 미디엄 템포 이하의 리듬을 배경으로 과도한 장식을 배제한 체 편안하게 부르는 그녀의 노래가 알 수 없는 위로의 느낌을 준다.
빌리 할리데이를 생각하며 추가 녹음 없이 단번에 노래했다는 타이틀 곡 “Soul Eyes”나 자작곡 “Rain Falling” 등 자신의 피아노 연주를 중심으로 노래한 재즈적인 곡들에서도 부드러운 어루만짐의 느낌은 그대로이다. 재즈적인 맛으로 인해 일체의 고통을 완화하는 진통제 같은 낭만성이 느껴진다. 소울적인 맛이 강한 “The World Is Ghetto”도 마찬가지. 세상은 (어지러운) 빈민가 같다는 노래마저도 그녀는 극단적인 감정을 부드러이 순화시킨다.
한편 일상을 부드럽게 감싸는 위로의 정서는 사운드의 질감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노라 존스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실제 그녀는 2002년 전 세계를 강타했던 노라 존스의 앨범 <Come Away With Me>(2002)을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특히 앨범의 마지막 곡 “The Nearness Of You”는 그녀에게 평소에 들었던 음악과는 다른 특별한 무엇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그래서 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꿈을 꾸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나는 앨범의 정서적 지향점으로 그녀가 좋아했고 즐겨 불렀던 다른 어느 보컬 혹은 싱어송라이터보다 노라 존스를 마음에 두었다고 생각한다. 또 블루 노트와 돈 워스도 그녀와 계약했을 때부터 이런 정서적 매력을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렇다고 그녀를 무슨 제 2의 노라 존스로 생각하자는 것은 아니다. 인기의 측면에서는 그럴 수 있을 지도 모르지만 그녀의 음악은 분명 노라 존스와는 다르다. 노라 존스의 영향이 일정부분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앨범에 담긴 음악은 그녀만의 것이다. 자신만의 것을 추구한다는 생각에 무조건 기존의 것을 거부하기보다 오히려 그것을 수 없이 즐기고 노래하면서 자연스레 자신만의 것으로 내면화한 끝에 만들어낸 개성을 담은 음악. 그리고 그 음악은 특별한 것 같지 않으면서도 모르는 사이에 절로 다시 한번 듣게 만드는, 지치고 힘들 때나 조금은 쉬고 싶을 때 편한 친구처럼 절로 찾게 되는 매력적인 음악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