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과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과거가 없는 인간에겐 현재는 물론 미래마저 의미 없다. 그런데 재즈는 늘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과거를 잊으려 한다. 새로움! 그것은 재즈 연주자가 추구해야 할 숙명이다. 그런데 재즈의 역사가 빠른 변화 속에 부정하기 어려운 과거를 축적한 순간부터 과거를 벗어나는 일이란 매우 힘들어졌다. 오히려 연주자들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과거를 충분히 흡수한 상태에서 새로움을 찾아내곤 한다. 전통적인 순간에 미처 보지 못했던 미래의 단초를 발견하는 것이다.
드럼 연주자-피아노 연주에도 실력이 뛰어난- 잭 드조넷의 이번 새로운 앨범은 과거를 통한 새로운 전진을 제대로 보여준다. 이 앨범의 시작은 1960년대 초반 드럼 연주자가 잠시 존 콜트레인, 지미 개리슨과 연주했던 추억에 기인한다. 녹음으로 남아 있지는 않지만 이 추억이 그에겐 잊을 수 없는 것이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 추억을 그는 당시 함께 했던 거장의 아들들, 즉 라비 콜트레인, 매튜 게리슨과 함께 하는 것으로 현재에 소환했다. 아버지와 같은 악기를 연주하며 각각 개성 있는 연주자로 성장한 이들과 함께 트리오를 이루어 새로운 연주를 시도한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앨범에 수록된 곡들은 그의 추억 속 인연을 향하고 있다. “Alabama”는 존 콜트레인을, “Blue In Green”은 마일스 데이비스를, “Two Jimmys”는 지미 개리슨과 지미 헨드릭스를, “Rashied”는 라시드 알리를, 그리고 “Serpentine Fire”는 역시 그와 친분이 있었던 어스 윈드 앤 파이어의 모리스 화이트를 향한다.
이렇게 거장의 2세들과 거장들에 대한 추억에서 출발한 연주로 이루어져 있기에 앨범은 그만큼 과거와 현재, 고인들과 잭 드조넷을 비교하며 듣는 재미를 선사한다. 그렇다고 회고적인 입장에서 연주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세 연주자가 함께 만든 앨범 타이틀 곡이 “진행 중”이란 의미를 지녔듯이 트리오는 과거에 머무르지 않는 연주를 들려준다. 아니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 새로운 음악을 들려준다. 잭 드조넷이 드럼 대신 피아노를 연주한 “Blue In Green”의 투명한 연주, 정(靜)과 동(動)이 어우러져 긴장을 만들어 내는 “Alabama”, 60년대 적이면서도 여전히 진보적인 “Rashid”같은 곡들이 대표적이다. 이들 곡들은 충분히 전통적이며 충분히 새롭다. 그래서 전통적인 것은 새로움을 내포할 때 지속될 수 있으며 새로운 것은 전통을 내포할 때 설득력을 지닐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