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 지난 시간에는 재즈가 흑인 음악과 백인 음악의 만남을 통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확인해 봤습니다. 그러면서 뉴 올리언즈 재즈의 탄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죠. 그래서 음악을 좀 들어보셨나요?
문: 들어보려고 했는데요 뉴 올리언즈 재즈가 있었던 1910년대의 녹음을 찾기 어렵더라고요. 최초의 뉴 올리언즈 재즈의 녹음은 언제 이루어졌나요?
답: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5인조로 구성된 오리지널 딕시랜드 재스 밴드가 1917년 2월 26일에 녹음한 두 곡의 연주가 최초라고 합니다. 이 때 녹음된 곡은 ‘Livery Stable Blues’와 ‘Dixie Jass Band One Step’였습니다.
문: 그렇다면 1917년 이전의 재즈를 직접 듣고 확인할 방법은 없다는 이야기군요.
답: 예. 그렇습니다. 게다가 오리지널 딕시랜드 재즈 밴드의 연주 또한 뉴 올리언즈가 아닌 뉴욕에서 녹음되었습니다. 그래서 재즈의 초창기 모습이 정확하게 어떠했는지를 확인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문: 악보로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답: 이 또한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당시 연주자들이 악보를 읽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로 인해 즉흥적인 부분이 자연스레 많았기에 악보와는 다른 부분이 많았습니다.
문: 왜 그렇게 뉴 올리언즈 재즈의 초기 녹음이 없는 것일까요?
답: 당시의 녹음 기술이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참고로 1910년대 중반까지는 녹음 매체가 우리가 알고 있는 납작한 원반 형의 디스크가 아니라 동그란 통 형태의 실린더였습니다. 그런데 이 실린더는 용도에 있어서 연주자들이 음악을 녹음해 상업적으로 판매를 하는 용도로 사용되기보다 기록 보존의 의미가 더 강했던 것 같습니다. 실린더를 재생할 수 있는 기기가 널리 보급되지 못했기 때문이었죠.
문: 음반 시장이 없었다는 것이군요. 그렇다면 당시 연주자들의 주요 수입원은 무엇이었나요?
답: 지난 시간에 말씀 드린 것 같은데 라이브 연주가 주 수입원이었죠. 결혼식, 파티 등에서 연주하는 것으로 수익을 냈습니다. 그리고 이 무렵 연주자들의 대부분은 낮에는 생계를 위한 다른 직업 활동을 하고 저녁이나 주말 등에만 활동을 하곤 했습니다.
문: 음반 시장이 없었다고 해도 인기 곡은 있었을 것 같은데요. 인기 곡은 어떻게 만들어진 거죠?
답: 악보가 있었습니다. 축음기가 보편적으로 보급되고 디스크 산업이 활성화되기 전까지는 악보가 음반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출판사가 악보를 시장에 내놓으면 사람들은 좋아하는 곡의 악보를 구입하고 집에서 그 악보를 보고 연주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죠.
문: 그 때는 지금보다는 더 직접적인 음악 감상을 했었군요. 그리고 감상자의 연주 실력에 따라서 곡의 느낌이 달랐겠어요.
답: 그렇겠네요. 그만큼 음악이 귀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죠.
문: 그런데 뉴 올리언즈 재즈는 악보로는 제대로 옮겨지지 않았다면서요? 악보 판매로 재즈의 인기가 가능했을까요?
답: 예. 악보로 인기 곡이 결정되었다는 것은 뉴 올리언즈 재즈 보다는 당시의 음악 전체에 해당되는 것이었습니다. 또 악보가 대중 음악의 인기를 판단하는 지표였다는 것은 연주자보다는 작곡자가 더 큰 인기를 얻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작곡자가 직접 밴드를 운영하면서 자신의 곡을 연주하는 일이 많기는 했지만 어쨌건 악보가 음반에 버금가는 역할을 했던 만큼 작곡가가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시대의 스탠더드 곡을 이야기할 때면 초연한 연주자보다는 작곡가를 더 많이 이야기하곤 합니다. 어차피 연주는 악보를 구입한 개인이 하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렇기에 연주자들은 요즈음 말하는 행사 활동이 주된 수입원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것도 낮에는 다른 일을 하면서 말이죠. 물론 그런 중에도 실력이 뛰어난 연주자들은 그 나름대로 인기를 얻기는 했습니다.
문: 알겠습니다. 그런데 악보를 중심으로 음악 시장이 형성되었고 남겨진 녹음이 많지 않다면 실제 초기 뉴 올리언즈 재즈의 모습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를 수 있지 않을까요? 아무리 유추하고 복원하는 기술이 좋다고 해도 뼈대는 몰라도 피부와 살은 다를 수 있잖아요?
답: 그럴 수도 있습니다. 초기 뉴 올리언즈 재즈는 후배 연주자들에게 구전으로 전해진 것을 통해 그 시대의 연주를 유추할 수 밖에 없는데 전승되는 과정에서 약간의 변화가 생길 수 있으니 말이죠. 그래도 아주 큰 변화는 아니었을 것이란 생각입니다. 한편 설령 처음부터 뉴 올리언즈 재즈가 녹음되었고 그것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고 해도 당시 재즈의 모습을 온건히 파악하기 어려울 지도 모릅니다. 녹음 기술상 강한 연주를 기록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녹음 상황에 맞추어 음악이나 편성을 수정하는 일이 생기곤 했습니다.
문: 그렇다면 최초의 재즈 녹음이라는 오리지널 딕시랜드 재스 밴드의 녹음도 당시 재즈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증명한다고 말할 수 없겠군요.
답: 그럴 지도 모릅니다. 이 또한 확인하기 어려운 것이고요. 게다가 이 밴드는 뉴 올리언즈가 아니라 시카고에서 결성되었습니다. 1916년이었죠. 활동도 시카고와 뉴욕에서 했고요. 따라서 오리지널 딕시랜드 재즈 밴드는 당시 뉴 올리언즈 재즈가 얼마다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었는지 가늠할 수 있는 지표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문: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오리지널 딕시랜드 재스 밴드를 말씀 하실 때 바로 궁금했던 것인데요. 왜 뉴 올리언즈 재즈가 아니라 딕시랜드 재스였나요? 뉴 올리언즈 재즈와 딕시랜드 재즈가 다른 것 아닌가요?
답: 딕시랜드 재즈는 아주 큰 차원에서는 뉴 올리언즈 재즈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곤 합니다. 음악적으로 뉴 올리언즈 재즈와 그리 차이가 없으니 말이죠. 실제 루이 암스트롱을 딕시랜드 재즈 연주자로 소개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딕시랜드 재즈를 뉴 올리언즈 재즈와 다른 것으로 엄격하게 바라보는 경우, 흑인의 연주를 따라 하는 백인의 재즈 밴드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특히 비밥이 등장했던 1940년대에 비밥보다 듣기 편하고 쉬운 재즈를 하자며 뉴 올리언즈 재즈를 다시 연주하는 경향이 생겼는데 이를 두고 딕시랜드 리바이벌이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딕시랜드 리바이벌은 백인 연주자들이 주도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소 단순하고 그만큼 심심한 연주, 뜨거움이 부족한 연주라는 의미를 지니게 되기도 했습니다.
오리지널 딕시랜드 재스 밴드도 흑인과 백인 연주자들 다섯 명으로 이루어진 혼성 밴드였습니다. 다만 백인 연주자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딕시랜드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당시 뉴 올리언즈 리듬 킹스라는 또 다른 밴드가 있어서 차별화를 위해서였다는 것이죠. 참고로 뉴 올리언즈 리듬 킹스도 백인으로 이루어진 밴드였습니다.
아무튼 정리하자면 딕시랜드 재즈는 뉴 올리언즈 재즈의 백인 버전이라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음악적으로는 차이가 없었고요.
문: 그러면 왜 하필 딕시랜드죠?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답: 아 이것부터 말씀 드렸어야 했군요. 딕시랜드는 미국 남부를 의미합니다. 뉴 올리언즈를 포함한 남부 말이죠. 그러니까 음악적으로는 뉴 올리언즈 재즈에 속하지만 이름으로는 뉴 올리언즈를 포함하고 있네요.
문: 그렇군요. 그러면 다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왜 재즈 밴드가 아니라 재스(Jass) 밴드였나요? 오타는 아니죠?
답: 예. 항상 여러 예술의 역사를 보면 어떤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이 등장할 때 이름과 같이 등장하지는 않죠. 드뷔시, 라벨이 내 음악은 인상주의야 하지 않았고 피카소가 자신의 그림을 두고 청색시대야 큐비즘이야 이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냥 이전과는 새로운 무엇을 들고 나왔고 그것이 인기를 얻고 유사한 시도들이 쌓여 하나의 경향을 이룰 때 감상자, 평론가 등이 이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식으로 보통 진행되었죠. 또 그렇게 특정 이름으로 의미가 규정이 되면서 그 예술은 시대의 주류가 됩니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무엇의 등장을 맞이하면서 중심에서 벗어나게 되죠.
재즈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재즈라고 쉽게 말하지만 재즈는 처음부터 재즈로 불리지 않았습니다. 음악이 먼저 나오고 그 다음에 이를 규정하는 용어가 나왔죠. 그리고 그 용어 또한 한 번에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니, 사실 재즈가 어떻게 ‘재즈’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아직도 이에 대한 의견이 분분합니다.
문: 재즈의 어원에 대해 조금 더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답: 몇 가지 설이 있는데요. 재즈가 탄생한 미국 남부, 그러니까 딕시랜드에서 흑인들의 성행위를 나타내는 속어에서 나왔다는 이야기, 프랑스의 샤스(Chasse)라는 말에서 나왔다는 이야기, 여기서 샤스는 우리 말로 사냥이나 추격으로 해석됩니다. 그리고 흑인들의 열정적인 춤이나 움직임을 의미하는 아프리카 속어 ‘Jasm’, ‘Jism’ 등에서 나왔다는 이야기 등이 있습니다. 아! 피아노 연주자 젤리 롤 모튼은 자신이 재즈를 만들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그냥 과장인 것 같네요.
문: 이 모든 이야기들 중 어떤 것이 진실인지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죠? 낯선 청춘씨의 생각은 어느 쪽인가요?
답: 글쎄요. 제가 이 부분에 대해서 깊이 연구를 한 사람이 아니기에 어느 한 쪽의 편을 들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말씀 드린 의견들은 ‘재즈’를 생각하고 그 전 단계를 거슬러 확인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나온 의견들이기 때문에 기원보다는 초창기 재즈의 성격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재즈 하면 흑인의 음악, 관능적인 음악, 정열적인 음악 등의 이미지가 먼저 떠 오르잖아요? 이러한 이미지를 기본으로 하고 그와 유사한 말들을 찾아 재즈의 기원이라 한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문: 그럴 수도 있겠네요.
답: 그렇다고 말씀 드린 재즈의 어원에 대한 생각들이 전혀 근거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어느 하나 확실한 답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죠. 재즈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음악이 아니라 여러 요인들이 만나고 섞이면서 만들어진 음악이니까요.
문: 그렇다면 재스도 재즈의 어원의 하나인 것인가요?
답: 예. 그런 셈인데요. 다른 용어들보다는 훨씬 더 재즈에 가까운 편입니다. 클럽에서 흥겨운 재즈를 들은 관객들이 ‘Jass It Up’이라고 외치곤 했다는데 이것이 재즈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글쎄. 재즈 전에 다른 유사한 용어가 있었고 그것이 재즈로 변했다가 다시 재즈가 되었을 수도 있기에 재스가 재즈의 어원이라 말할 수 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재스 앞에 Jasm, Jism, Chasse같은 말이 있었을 지도 모르죠. 다만 1910년대 중반 재스라는 말이 사용되었을 당시 재즈가 큰 인기를 얻고 있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리고 재스가 재즈로 변한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오리지널 딕시랜드 재스 밴드도 후에는 오리지널 딕시랜드 재즈 밴드로 불렸거든요. 그러니까 이 밴드가 큰 인기를 얻었던 1910년대 중반에 재즈가 재즈로 불리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문: 그렇군요, 그런데 재즈가 ‘재즈’로 정의되기 전에 재즈는 무엇으로 불렸나요? 재스라 불린 것인가요?
답: 음악이 먼저 나오고 그 다음에 재즈가 나왔다고는 하지만 그 시간차가 아주 컸던 것은 아닙니다. 워낙 뉴 올리언즈 재즈가 매력적이어서 탄생 직후 바로 대중 음악에 큰 유행을 가져왔기에 바로 그에 대한 정의가 뒤따랐죠. 그렇게 되지 전까지 재즈는 그 전까지 인기를 얻고 있었던 크레올이 만든 음악 랙 타임이나 블루스의 하나로 이해되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많이 많으니까 새로운 정의가 필요했고 그것이 재즈가 된 것이죠.
문: 예. 말씀을 듣고 보니 오리지널 딕시랜드 재스 밴드가 최초로 재즈를 녹음한 밴드 이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딕시랜드 재즈와 재즈의 어원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해주니까요.
답: 그렇게 되나요? 그러면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이야기를 마치죠.
어떤 현상에 대한 ‘최초’의 기원, 하나의 기원을 찾는 것 자체가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오히려 재즈가 사회적 배경을 포함해 ‘어떤 과정’을 통해 재즈라는 의미를 획득했는지 살펴보는게 더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지금 이 포스팅 내용이 그 과정을 볼수 있도록 해준 것 같아 재밌네요.^^
되돌릴 수 없으니 그 때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면 그냥 사라지는 것이 과거가 아닐까 싶네요. “재즈”라는 말은 그래도 지금보다는 음악에 착 붙는 무엇인가가 오래전엔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다시 읽으니 오타가 참 많네요.ㅎ
오타는 문장 맥락이 흩트러질만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근데, 재즈라는 말이 그 당시 연주자나 감상자의 삶에 착 붙기도 했던 것 같아요.
미셀 푸코의 말과 사물 앞부분에 보면 나오던가요? 옛날에는 사물에 단어가 착 붙어 있었는데 갈수록 그렇지 않게 되었다고. 재즈도 그런 경향이 있죠. 의미가 단순했으니까. 지금은 아주 복잡해 지고 여러 개념을 아우르면서 재즈가 모호해졌습니다.
제가 아직 말과 사물은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다만, 뭔가 기호학적인 내용일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말씀을 듣고 보니, 확실히 다른 장르보다는 재즈가 더 복잡한 것 같습니다. 그 복잡성과 모호성때문에 그런지 한번씩 ‘재즈란 무엇인가?’를 되묻게 될때가 있어요. 참, 그래서 대중과 점점 멀어지는 거일수도 있을 것 같네요.
저도 아주 오래 전에 뜻도 모르면서 읽었어요. 그래서 다 휘발되었습니다. 그냥 약간 기억날 뿐이죠.ㅎ
아무튼 재즈는 이제 하나의 스타일로 정의할 수 없는 음악이 되어서 그 의미가 그만큼 모호해진 것이 확실합니다.
그냥 Something Else일 뿐이죠. 스스로 정의 되지 못하고 타자와 비교되어 타자가 될 때 정의되는 음악?
“스스로 정의 되지 못하고 타자와 비교되어 타자가 될 때 정의되는 음악”..
아오..소오름..^^
어쩌면 이렇게 정의되는 것도 태생적으로 재즈가 스스로 특정 형식으로 정의되기를 거부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드네요. 자기부정을 통해 정의된다고나 할까요.
자기 부정이 재즈의 속성 가운데 하나일 수도 있겠습니다. 늘 새로움을 향해 가야 하니 말이죠. 스스로에게서도 낯선 음악일 때 재즈는 완벽한 지도 모르겠습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