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이면 추리소설, 참정소설 같은 펄프픽션을 하나 정도는 읽어야 한다. 마침 레이먼드 챈들러의 단편집이 나왔길래 읽어보았다.
알려졌다시피 레이먼드 챈들러는 1930년대부터 50년대 사이에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의 모범을 보인 작가이다. 그래서 그의 장편들 다수는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나는 사실 <안녕 내 사랑>을 읽은 것이 전부이다. 그리고 그리 큰 인상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단편집은 이야기를 직조하는 능력, 담담하면서도 속도감 있는 문체, 냉정한 듯 하면서도 인간적인 주인공, 그를 통한 작가의 성격 등이 지닌 매력을 잘 느끼게 해주었다. 그의 소설의 페르소나인 필립 말로가 9편의 소설 모두에 등장하지 않는 것이 아쉽지만 또 그만큼 주인공의 성격이 비슷하면서도 달라 소설을 읽는 재미는 더 있다. 특히 흑인 주인공이 등장하는 <눈 가의 돈다발>같은 경우는 매우 신선했다. 또한 <금붕어>와 <붉은 바람>은 영화로 제작되어도 특별한 각색이 필요 없을 정도로 괜찮았다.
모든 것은 지나가면 낭만적이 된다고 했던가? 소설 속 공간은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배신이 일어나지만 그 안에 담긴 복고적인 분위기는 이상하게도 정겹게 느껴진다. 실제 그 상황에 놓이면 불안에 떨겠지만 말이다. 라디오에서는 매일 재즈가 흐르던 그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