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쓴 사진 – 존 버거 (김우룡역, 열화당 2005)

JB영국 출신의 미술비평가, 사진이론가, 소설가, 다큐멘터리 작가, 사회비평가로 알려진 존 버거의 에세이집이다. 한국어 책 제목을 보고 나는 사진을 글로 묘사하는 그래서 빛의 음영이 아름다운 글이 담겨 있을 줄 알았다. 해당 사진이 제시되고 그에 대한 작가의 설명이 나오는.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사진처럼 생생히 남아 있는 작가의 추억을 담은 에세이집이었다.

그래서 실망했냐고? 아니다. 처음엔 당혹스러웠지만 책을 읽을수록 매혹되었다. 일상의 소소한 일을 말하는 것 같은데 그의 문제는 과시 없이 빛이 났으며 그 추억들 또한 한 사람이 겪었다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인상적이었고 감동적이었다. 아직 그보다는 짦은 삶을 살았지만 그래도 과연 내 생에 29개의 찬란히 기억되는 사람, 장소, 사건에 대한 추억이 있을까? 여전히 내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내가?

글을 통해 드러나는 작가의 삶은 매우 느리다. 노년의 삶이라, 시골의 삶이 대부분이라 그럴 지 모르지만 그보다는 그가 여유를 지녔기 때문인 것 같다. 많은 작품을 보려고 하지도 않고, 많은 사람을 만나려 하지도 않고 그저 만나는 사람과 오래 관계를 이어가고 대화하며 작품 또한 주어진 대로 깊은 감상을 하는 태도 때문이라 생각한다. 양적인 부분보다는 질적인 부분을 중요시한다고 할까? 그렇다고 그가 양보다 질이라는 식으로 삶의 자세를 정했다고 보지 않는다. 그냥 자연스레, 편안하게 살다보니 그런 태도가 형성된 것이다.

아! 그가 사람과 그들의 세상에 대해 관심과 애정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사람에게서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정말 감동을 주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순간에 대해 내가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기억하고픈 문장들이 여러 곳에 있지만 그보다 나는 작가의 글쓰기 자체가 좋다. 배우고 싶을 정도로. 그 좋은 문체를 얻기 위해서는 삶을, 사람을 지금보다 더 사랑해야 한다는 것에서 어려움을 느끼지만.   작가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련다.

3 COMMENTS

  1. ^^ 찰나의 순간에 떠오르는 글귀인 것 같지만, 그 한 구절을 통해 글쓴이의 드러나지 않는 글쓰기의 고민이 느껴지기도 하지요.

    전 대학원을 마치자 마자, 활자 자체에 대한 심한 거부감 때문에 한 1년을 고생했습니다. 책 자체를 읽지 못했거든요. 지금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데… 그래서 낯선청춘님 상황이 백퍼센트는 아니지만 이해가 됩니다.

    책 주문하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도 제가 어떻게 느낄지 궁금하네요^^

  2. “사람에게서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정말 감동을 주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순간에 대해 내가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구절이 확~ 와닿습니다.

    매 순간 현재에 충실하게 살고 있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은데, 일에 치여 거의 끌려다니는 삶을 산 저로서는 이 책을 읽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드네요.^^

    • 가끔은 제가 쓰고도 저런 문장을 내가 썼나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만큼 순간적이란 것이겠죠?

      존 버거의 책은 다 읽어볼 계획입니다.
      현재도 제 자리에 몇권이 있네요.

      올 해 책 읽기에 조금 속력을 내보고 있는데
      정신이 산만해서인지 소설에만 간신히 집중이 됩니다.
      몇 권 읽은 것 기록으로 남겨야 하는데 그것도 참 어렵네요.

      현재에 충실하게 사시면서 이 책도 읽고 느낌 남겨주시면 고맙겠습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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