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는 아직 생소하지만 스나키 퍼피는 현재 미국은 물론 유럽에서까지 폭 넓은 인기를 얻고 있는 밴드이다. 최근 두 차례 그래미상을 수상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2015년에는 미국의 재즈 전문지 다운비트의 리더스 폴에서 최우수 재즈 그룹에 선정되기도 했다.
전형을 벗어난 새로운 편성의 빅 밴드
스나키 퍼피가 인기를 얻게 된 것에는 무엇보다 틀에 갇히지 않은 자유로운 음악적 사고에 기인한다. 이 밴드의 음악은 그 자체로는 매우 익숙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즉, 대중적인 면이 강하다. 하지만 그것이 진부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만큼 전형을 벗어난 면이 있다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재즈를 오래 들은 숙련된 감상자라면 이 밴드의 음악은 매우 당혹스럽게 들릴 것이다.
이것은 무엇보다 밴드의 모습에서부터 느낄 수 있다. 스나키 퍼피는 2004년 베이스 연주자 마이클 리그를 중심으로 노스 텍사스 대학 출신의 연주자들이 모여 결성되었다. 그런데 그 멤버 구성이 명확하지 않다. 고정 멤버가 있기는 하지만 앨범마다 참여 연주자가 다르다. 그렇다고 세션 연주자를 기용한 것도 아니다. 리듬 섹션과 브라스 섹션은 물론 스트링 섹션까지 약 40여명의 연주자들이 앨범마다, 음악적 지향점에 맞추어 구성을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스나키 퍼피는 실재하는 그룹이면서도 매번 변화하는 무정형의 그룹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이것이 이 밴드의 인기에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멤버의 다채로운 조합을 통해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음악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앨범마다 차이는 있지만 스나키 퍼피는 약 20명 가량의 연주자가 참여한 빅 밴드 형식의 음악을 추구한다. 그런데 빅 밴드라고는 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적인 빅 밴드와는 다른 음악을 들려준다.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펑키한 리듬, 강렬한 록을 연상시키는 솔로, 도시적 감각의 일렉트로니카 사운드가 어우러진 현대적인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다. 게다가 경우에 따라서는 라틴 음악은 물론 아프리카 등의 월드뮤직적인 색채감을 차용하기도 한다.
편성에 있어서도 전형적 빅 밴드와 차이를 보인다. 보통의 빅 밴드가 브라스 섹션을 제외하고는 피아노-기타-베이스-드럼 등이 각각 하나씩으로만 구성된다면 스나키 퍼피는 브라스 섹션 외에 여러 명의 건반 연주자, 여러 명의 기타 연주자, 여러 명의 타악기 연주자들로 구성된다. 그래서 사운드의 층(層)이 그만큼 두껍고 화려하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주자 개개인의 화려한 솔로와 모든 멤버들의 합주가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다.
이처럼 음악적 필요성에 따라 연주자들이 신뢰를 바탕으로 자유로이 모이고 빠지며 그런 중에도 탄탄한 호흡을 유지하니 어느 누가 밴드의 연주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게다가 그 음악이 현재적 감성을 담고 있는데.
스튜디오 라이브 형식으로 녹음한 기존 앨범들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앨범은 스나키 퍼피의 통산 11번째 앨범이다. 2004년에 결성되었지만 첫 앨범 <The Only Constant>가 2006년에 발매되었으니 계산상으로는 일년에 한 장 꼴로 앨범을 발매한 셈이 된다. 하지만 최근 5년으로 국한하면 7번째 앨범이 된다. 즉, 인기가 높아지면서 앨범 활동이 더욱 활발해졌다는 것이다. 올 해만 해도 이번 앨범이 <Family Dinner – Volume 2>에 이은 두 번째 앨범에 해당한다.
한편 이번 앨범은 최근 몇 년 사이 밴드가 발표한 앨범들과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제작되었다는 점에서 흥미를 끈다. 2010년도 앨범 <Tell Your Friends>부터 스나키 퍼피는 스튜디오에 관객을 초청해 라이브 형식으로 앨범을 녹음해왔다. 그만큼 연주에 자신이 있었다는 것이리라. 아무튼 수십 명에 불과한 관객을 앞에 둔 라이브 녹음이었지만 밴드의 음악은 늘 뜨거운 열기와 화려함, 흥겨움으로 가득했다. (이들 녹음은 모두 영상으로도 제작되었는데 수십 명의 연주자들로 비좁은 스튜디오에 객석 구분 없이 밴드 바로 곁에 앉아 연주를 듣는 관객들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들곤 한다.)
또한 스나키 퍼피의 최근 앨범들은 게스트와의 협연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그 예로 첫 번째로 그래미상-최우수 R&B 연주-을 가져다 준 앨범 <Family Dinner – Volume 1>(2013)은 라라 하더웨이 등 여러 보컬 및 연주자들이 게스트로 참여했으며, 두 번째 그래미상-최우수 컨템포러리 연주 앨범-을 수상하게 해준 앨범 <Sylva>(2015)는 메트로폴 오케스트라가 함께 했다. 올 해 발매된 <Family Dinner – Volume 2>는 데이빗 크로스비, 베카 스티븐스, 살리프 케이타, 테렌스 블랜차드, 찰리 헌터 등 세계 곳곳에서 온 수십 명의 게스트 보컬과 연주자가 함께 했다.
관객과 게스트 없이 만들어 낸 8년만의 스튜디오 앨범
하지만 이번 앨범은 그렇지 않다. 일체의 게스트 없이 관객 없이 멕시코 국경에서 걸어서 5분거리에 있는 텍사스 토르닐로의 외딴 소닉 랜치 스튜디오에서 녹음되었다. 영상 촬영도 없었다. 2008년도 앨범 <Bring Us the Bright> 이후 근 8년만의 정식 스튜디오 녹음이었다.
그렇게 제작된 이번 새 앨범은 이전의 라이브 형식의 앨범에 비해 생동감이 다소 낮아졌다는 느낌을 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만큼 사운드의 정교함과 깊이가 돋보인다. 특히 최근 앨범들이 보컬과의 협연이 주를 이루고 있어 상대적으로 연주가 절제된 면을 보였던 것과 달리 이번 앨범에서는 솔로 연주가 매우 적극적으로 드러나고 그것이 나머지 연주와 치밀한 호흡을 이루고 있어 감상을 즐겁게 한다.
“GØ”같은 곡이 대표적이다. 반복되는 펑키한 리듬을 배경으로 기타, 건반이 차례로 화려한 솔로를 펼치고 또 그들간의 대화를 나누는 중에 그 사이로 브라스 섹션이 자연스레 치고 빠지는 구성의 연주가 극적인 동시에 그 자체로 짜릿함을 느끼게 한다. “The Big Ugly”나 “Jefe”같은 곡도 마찬가지다. 이 곡은 펜더 로즈, 오르간, 무그 신디사이저 등의 건반 악기, 여러 대의 기타가 자기들끼리 겹쳤다가 풀리며 화려한 색채감을 발생하고 그 아래로 스트링 오케스트라와 간결한 리듬을 반복하는 타악기가 전반적인 분위기를 이끄는데 그 모든 어울림이 앨범에서 연주 밴드로서의 스나키 퍼피를 가장 잘 담아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정치(精緻)하다. 20여명의 연주자가 함께 한 연주라 믿기지 어려울 정도다.
보통의 빅 밴드의 규모를 넘어서는, 초 대형 빅 밴드 편성임에도 섹션의 어지러운 충돌이 없는 것은 각 연주자들의 완벽한 호흡도 호흡이지만 편곡과 믹싱의 힘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믹싱의 힘이 대단하다. “Grown Folks”가 대표적이다. 마이클 리드의 펑키한 베이스 솔로에 이어 힙합 스타일의 리듬을 배경으로 브라스 섹션이 등장하며 서서히 여러 솔로 연주가 분위기를 고조하는 이 곡은 건반 섹션, 기타 섹션, 타악기 섹션, 브라스 섹션이 좌우의 공간감을 최대한 활용하여 각각 두 개의 작은 그룹으로 나뉘어 등장한다. 그래서 타악기 섹션은 더욱 화려하고 브라스 섹션은 더욱 강렬한 모습을 보인다. 또한 다양한 건반은 사운드를 보다 입체적으로 만들며 기타는 사운드를 보다 역동적으로 만든다. 그 결과 연주는 빅 밴드의 특성인 일치된 연주가 주는 단단함과 섹션 별 솔로 연주가 주는 짜릿한 상승감을 동시에 맛보게 해준다. 괜히 20여명의 연주자가 모인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해준다. 부분과 전체 모두를 잘 고려한 연주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악기가 좌우 구분 없이 쌓아 올리듯 겹쳐지게 믹싱되었다면 그 묘미는 반감되었을 것이다.
한편 이번 앨범에서도 스나키 퍼피는 다양한 음악적 요소를 자유로이 결합해 밴드만의 화려한 음악을 들려준다. 앨범 발매 전에 먼저 공개된 “Tarova”만 해도 오르간 연주에서는 소울 재즈의 맛이, 리듬 섹션의 진행은 마일스 데이비스의 “Tutu”시절의 그림자가 느껴진다. 이어지는 “Semente”에서는 라틴 재즈의 향기와 소울 음악의 화려한 색채가 보인다. 또한 “The Simple Life”에서는 재즈 록에 가까운 소리가 들린다. 한편 몽환적인 질감의 “Gemini”나 “Beep Box”, 이국적인 리듬이 용솟음치는 “Palermo”같은 곡들은 공상과학 영화의 사운드트랙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밴드가 활용한 다양한 음악 요소들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화학적인 결합으로 스나키 퍼피만의 음악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스나키 퍼피가 게스트 없이, 아무도 부르지 않고 멤버들만 스튜디오에 모여 이번 앨범을 녹음하기로 한 것은 성공의 과정에서 다소 잊을 수 있었던 밴드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공연을 중심으로 순간의 진실에 충실한 연주를 펼치고 그것이 또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어쩌면 밴드의 각 멤버들은 그와 상관 없는 자신들의 음악을 고집할 필요를 느꼈을 지도 모른다. 여러 보컬들을 게스트로 부르면서 절제했던 연주의 본능을 새로이 표현하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앨범 타이틀이 “Culture Vulture”가 아니라 그것을 소리 나는 대로 쓴 “Culcha Vulcha”인 것도 이 때문이리라. 여러 스타일의 음악을 차용하지만 그것에 단순 경도되지 않고 자신만의 것을 만들어 내려는 밴드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것이었다면 이번 앨범은 그 의도에 걸맞은 성공적인 음악을 들려준다. 아마도 이번 앨범을 통해 많은 감상자들은 스나키 퍼피가 게스트에 의존할 필요가 없는, 그 자체로 멋진 강아지(Snarky Puppy)들임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아..지금 연이어 계속 좋은 앨범을 들어서 그런지 몰라도, 더위에 지친 몸에 활력이 막 생깁니다.
정말 세상엔 좋은 음악들이 너무 많아요!
좋은 음악, 새로운 음악이 참 많죠? 매일 그것을 느끼는데요. 제 능력의 한계로 그것을 여기에 다 옮기지 못해서 늘 불만입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