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부터 여기저기 회자되는 소설임을 알면서도 미루고 미루다가 이번에 읽었다. 처음 10여 페이지를 읽는 순간 아! 그래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단번에 매혹되었다. 문체 때문이었다. 이어지는 간결한 문장들이 각각 정서적 촉촉함을 지니고 있는 것이 혹 시를 쓰는 마음으로 작가가 소설을 쓰지 않았을까 싶었다.
소설은 은교와 무재라는 남녀 주인공을 중심에 두고 그들이 일하는 사라지기 직전의 전자상가라는 공간과 그 주변 사람들을 차분하게 묘사한다. 이를 통해 착한 사람들, 적어도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며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들이 밀려나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은교와 무재의 사랑 또한 매우 심심하게 묘사되었는데 그로 인해 순수하다고 할까? 조금은 소심한 듯 하면서도 상대를 배려하는 사랑을 느끼게 해준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특별히 큰 사건을 일으키지 않는 이야기에 환상성이 개입되었다는 것이다. 은교와 무재는 물론 주변사람들은 모두 그림자가 일어나려 하거나 일어났던 경험을 지니고 있다. 현실적인 이야기에 이 무슨 황당함이냐 싶을 수 있는데 이것이 소설적 재미를 부여한다. 마지막까지 왜 그림자가 일어나는지 밝히지 않은 것, 아니 작가 스스로 그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고 원래 그런 것처럼 자연스레 이야기를 진행시킨 것이 거대 사건에 버금가는 긴장을 일으키며 소설에 끝까지 집중하게 한다.
하지만 작가가 단지 재미적 장치로 그림자를 활용한 것은 아닌 듯하다. 그림자라 완전히 일어서는 사람은 결국 사라지게 되는 것을 보면 이것은 허상이 진상을 잠식하는 것, 진실된 존재가 소멸되는 것에 대한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된 것이 아닌가 싶다. 적어도 명과 암이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현실을 말하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소설 제목의 “백(百)”은 단순히 숫자 100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百姓)”의 “백” 그러니까 평범한 사람들을 의미한다. 평범한 사람들의 그림자, 전도되어 그림자처럼 되어가는 평범한 착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의미한다.
이번 소설로 황정은을 처음 만났다. 기회가 되면 더 읽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