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les Davis – Time After Time

1. 어제 실로 몇 년만에 대학 친구들을 만났다. 오랜 만에 봐도 어제 본 것처럼 바로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아! 정말 우리는 청춘의 추억을 공유한 친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본 친구들은 나를 포함해 모두 아저씨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잘 받아들이고 있는 듯 했다. 후회 없는 삶이 어디 있겠냐만 그래도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지금 누릴 수 있는 것은 누리며 잘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 비해 아직 마음 속 갖가지 욕망으로 가득한 나는 친구들의 평온함이 부러웠다. 친구들도 나를 보며 그런 느낌을 받았을까? 아무튼!

어쩌면 아저씨가 된 친구들이 자연스럽고 편안해 보이는 것은 그 중년의 모습에 여전히 90년대 요즈음의 날씨처럼 뜨겁게 놀았던 시절의 모습이 남아 있기 때문인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이를 잊고 90년대 신촌의 어느 술집에서 만난 것 같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아닐지. 비록 과거형 문장으로 이야기를 나누기는 했지만.

현재는 과거가 있어야 가능하다. 과거로 인해 현재는 증명된다. 모순적인지는 몰라도 매일을 어제와 같이 살면 현재는 영원할 지도 모른다. 그런 차원에서 오랜 친구를 만난다는 것은 어제를 확인하고 오늘을 내일로 지속시키는 것이다.

2. 재즈는 보통 새로움을 향한 음악이라 말한다. 연주자들은 늘 과거와 다른 음악을 향한 욕구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들 또한 사람인만큼 자신을 부정할 정도로 새로운 음악을 매번 내놓을 수는 없는 법. 한 연주자의 스타일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무리 새로운 음악이라 할 지라도 그 안에는 일정부분 과거의 기억이 담겨 있다. 또 그럴 때 감상자는 그 음악에 매력을 느낀다. 새로움의 관점에서 보면 실패한 탈주의 음악이 최고인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 탄생 90주년이었던 마일스 데이비스가 바로 그런 연주자였다. 그는 과거에 머무는 것을 싫어했다. 현재에 머무르고 싶어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늘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트럼펫 연주는 한결 같았다. 시간 구분이 의미 없는 탈시간적인 연주였다. 감상자들이 매번 표변에 가까운 방향전환을 했음에도 계속 그의 음악에 열광했던 것은 그만큼 트럼펫 연주자가 시대 정서에 맞는 음악을 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 전에 지금의 낯섦을 이해하게 해주는 과거를 지속시켰기 때문이었다.

그의 1985년도 앨범 <You’re Under Arrest>에 수록된 “Time After Time”은 그의 말년을 대표하는 곡이다. 당시에는 스탠더드 곡이 아닌 신디 로퍼의 히트곡을 팝적인 스타일로 연주했다고 해서 평자들의 비난도 있었다. 실제 이 앨범에서의 연주는 너무 단순하다.

하지만 라이브 연주는 그렇지 않았다. 평자들의 비난을 비웃듯 그의 연주는 “Time After Time”을 불멸의 버전으로 만들었다. <Live Around The World>에 담긴 연주만 들어도 알 수 있다. 그는 시간의 흐름, 시대의 변화를 냉철히 인식한 음악을 펼쳤다. 그러면서도 변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다. 그래서 그의 “Time After Time”은 탈시간적인, 어떠한 세월의 파도에도 변하지 않는, 어쩌면 보수적이다 싶을 정도로 굳건한 마일스 데이비스의 모습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도 유효하다. 이미 세상을 떠난 그의 90번째 생일을 챙길 정도로.

 

 

2 COMMENTS

  1. 결국 마일즈 데이비스가 시대 변화의 흐름을 매우 민감하고 예민하게 잘 포착하는 능력, 더 중요하게는 그 능력을 연주로서 실현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현재의 평가가 가능했다고 봅니다.
    아마 제작자였어도 큰 족적을 남겼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말장난일 수 있지만, 미래적 ‘현재’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매우 잘 소화했다고 할까요…

    • 시대를 잘 파악하고 예젼했죠. 다른 연주자들의 능력을 활용할 줄도 알았고. 그러면서 자기 장점은 그대로 유지하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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