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데이브 더글라스를 마일스 데이비스 이후 가장 창의적인 트럼펫 연주자라 생각한다. 실제 그의 음악은 마일스 데이비스와는 다른 차원에서 전방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어떤 연주자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그 가운데 지난 해 드럼 연주자 마크 줄리아나, 베이스 연주자 조나단 매이런, 그리고 일렉트로닉 뮤지션 지게토와 쿼텟을 이루어 녹음한 앨범 <High Risk>에서는 이전까지 실험적인 차원에서 활용했던 전자적 질감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한 음악을 선보였었다. 음악적 아이디어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퓨전 재즈에서 얻었다고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트럼펫 연주자의 개성이 잘 스며든 앨범이었다.
역시 같은 멤버로 녹음한 이번 앨범도 그 연장선상에 놓인 음악을 들려준다. 프레드 캐플란의 책<Dark Territory: The Secret History of Cyber War>에서 가져왔다는 앨범 타이틀도 그 분위기에 있어 이전 앨범과의 연관성을 강하게 시사한다. 앨범의 사운드는 그 타이틀처럼 어둡고 우주적이다. 전투가 일어나는 가상적 공간을 위한 사운드트랙이라 할 만하다. “Let’s Get One Thing Straight”같은 곡이 대표적이다. 또한 섬찟하리만큼 첨단을 향한 데이브 더글라스의 솔로는 역시!하는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하지만 이전 앨범 <High Risk>에 비해 개성적인 맛은 덜한 것 같다. 특히 보다 전자적 질감의 사운드를 추구하면서 마일스 데이비스의 그림자 속으로 들어간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은 아쉽다. 새로운 사운드가 주는 위험을 즐기려 했고 연주의 측면에서는 그 위험을 슬기로이 헤쳐나갔지만 모르는 사이 마일스 데이비스의 왕국에 빠져버린 것이다.
물론 그것이 어때서?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실제 마일스 데이비스의 유산을 적극적으로 차용한 멋진 앨범이 많지 않았던가? 그러나 문제는 앨범의 주인공이 데이브 더글라스라는 데 있다. 지금까지 재즈의 왕이 남겨두었던 영역을 개척했던 연주자가 만들 앨범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과연 데이브 더글라스와 세 연주자가 이를 의도했는지 의문이다. 내가 너무 까다롭게 바라보는 것일까? 모르겠다. 하지만 데이브 더글라스의 음악에 찬사를 보내는 입장에서는 충분히 이런 시각이 가능하다고 본다.
그래도 쿼텟이 두 장의 앨범을 만들면서 보다 탄탄한 호흡을 보이는 것은 다음 앨범에 대한 기대를 하게 만든다. 프로젝트로 끝내지 않고 앨범을 이어간다면 마일스 데이비스와 겹쳤던 부분에서 나와 또 다른 영역으로 나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