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는 봄이 정말 봄다운 것 같다. 이전 같았으면 반팔 셔츠를 입고 다녔을 정도로 더웠을 텐데 올 해는 덥다 싶으면 비가 내려 열기를 식혀 봄을 이어간다. 그것이 조금은 위태로워 보이긴 하지만 어쨌건 그 덕에 모처럼 봄을 오래 느낄 수 있어 좋다.
오늘만 해도 햇살은 온화했고 바람은 부드러웠다. 길을 어슬렁 걸어도 땀이 잘 나지 않았다. (물론 나와 다르게 날씨를 느껴 반팔 옷을 입은 사람들이 있기는 했다.) 말 그대로 쾌적했다. 이 날씨는 사람의 마음에도 영향을 준다. 조금은 더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만드는 것이다. 타인을 더 이해하게 만든다고 할까? 몸에 땀이 나지 않아 입고 있는 셔츠마저 피부를 부드럽게 스칠 정도로 뽀송뽀송하면 사람은 물론 모든 주변 사물들과 나 사이에 얇은 투명 막이 쳐져 있는 것 같다. 그 막은 고립되었다는 느낌보다 나를 나로 인식하게 만들고 어떤 안정감을 느끼게 해준다. 나아가 모든 대상을 무심히 바라보게 만든다. 나와 상관 없는 것이다 싶을 정도로 객관적으로 보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마음의 여유를 만들어 낸다. 구경하듯 대상을 바라보니 부담을 갖지도 않고 그 대상에 부담을 주지도 않게 되는 것이다. 미술관에서 그림을 바라볼 때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일체의 현실적인 부분은 배제된 추상의 공간에서 그림이 있고 그 그림을 나는 나대로 바라본다. 그 사이 교감이 있을 수 있지만 당연한 것은 아니다.
나만의 궤변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공기마저 사라진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쾌적한 요즈음의 날씨 덕에 최근의 근심을 어느 정도 “쿨”하게 바라보고 있다.
쾌적할 때는 잘 다린 셔츠 같은 음악을 들어야 한다. 요즈음 내게 그런 음악은 셀주 폰세카의 “Agora Dancei”이다. 브라질의 온화한 분위기를 담은 이 노래는 마음을 가벼이 하는 힘이 있다. 설령 근심이 있더라도 나도 모르게 어깨를 움직이게 한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브라질을 그리게 한다. 실제로는 어떤지 모르지만 내 마음대로 쾌적한 브라질을 꿈꾸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