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Años – Mercedes Sosa (Polygram 1993)

메르세데스 소사의 대표곡을 정리한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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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음악에는 국경이 없다고 한다. 우리가 다른 나라에서 만들어진 팝 음악이나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것만 해도 그렇다. 그렇다고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모든 음악들이 지역적인 개성, 가수나 연주자가 위치한 지역의 문화와 전통을 무시한 채 획일화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음악들은 아예 국경의식이 없다. 무국적의 음악이랄까? 그러니 세계 곳곳에서 인기를 얻을 수 있다고 본다.

그보다는 특정 지역의 음악 전통이나 문화적 색채가 강한데도 그 음악이 다른 지역에서 다른 음악 전통과 문화 속을 사는 사람들에게 호응을 받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 가운데 보컬 음악은 더 그렇다. 세계 공용어라 하는 영어 노래는 그럴 수 있다고 인정해도 프랑스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러시아어 등 친숙하지 않은 언어로 노래된 곡들이 우리의 가슴을 파고들 땐 정말 음악엔 국경이 없음을 실감하게 된다. 게다가 장황한 사운드를 배경에 두지 않고 기타 등 간단한 악기를 두고 노래한 곡인 경우는 더 하다. 어떻게 이해도 되지 않는 노래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의 표정이 노래의 분위기에 따라 변할 수 있을까? 사실 답은 간단하다. 목소리 자체가 음악적이기 때문이다.

 

지친 영혼을 정화하는 목소리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앨범의 주인공 메르세데스 소사의 노래가 그렇다. 그녀의 창법은 기교적이지 않다. 주어진 선율을 담백하게 노래할 뿐이다. 그것도 스페인어로. 그런데 이상하게 그녀의 노래를 들으면 가슴 속 응어리진 무엇이 풀리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런저런 일로 어지러운 일상을 정돈하고 기본에서 다시 출발할 마음을 품게 만든다. 지친 영혼을 다시 처음의 맑은 상태로 돌려 놓는다고 할까? 잠깐이나마 이곳이 아닌 다른 곳-근심과 걱정이 사라진 곳으로 다녀온 듯한 느낌도 받는다. 스페인어의 이국적인 느낌 때문도, 연주가 평온해서가 아니다. 오로지 그녀의 목소리 하나 때문이다. 곡에 따라 그녀는 한 없이 슬픈 여인이 되기도 하고 그 슬픔을 딛고 일어서는 굳건한 의지를 지닌 우렁찬 목소리의 여성이 되기도 한다. 당신의 슬픔에 나도 공감한다며 따스한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하고 우리 모두 손을 잡으면 모두 행복해 질 수 있다고 희망을 향해 부드럽게 동참을 권유하기도 한다.

실제 그녀는 자신의 노래로 모두가 불평등한 상태에서 벗어나 평화로이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다. 이를 위해 정치적 폭압에 항거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한 노래를 부르고 또 불렀다. 그래서 부패한 정치권은 그녀의 노래를 싫어했고 민중들은 그녀를 좋아했다. 독재자들은 그녀의 노래를 금지했으며 억압받는 사람들은 숨어서라도 그녀의 노래를 들으며 내일의 희망을 위해 싸울 힘을 키웠다.

민중을 위해 노래했던 누에바 칸시온 운동의 기수 

물론 처음부터 그녀가 사회참여적인 노래를 했던 것은 아니었다. 1935년 7월 9일 아르헨티나 투쿠만 주, 산 미구엘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노래하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1950년에는 15세의 나이로 지인들의 권유에 못 이겨 참가한 지역 라디오 주최 노래 경연대회에서 우승해 두 달간 라디오 방송에서 노래할 기회를 얻기도 했다. 이 때만 해도 그녀는 노래 자체가 좋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기타 연주자겸 작곡가 마누엘 오스카 마투스와 결혼하면서 그녀의 음악 인생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남편이 주축이 된 누에바 칸시온-아르헨티나에서는 누에보 칸시오네로라 한다- 운동에 동참하게 된 것. 누에바 칸시온(새로운 노래) 운동은 자국의 전통적 포크 음악을 새로이 하자는 것으로 시작은 유럽 등의 제국주의 문화에 대해 자국의 문화적, 음악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에 관심을 두었다. 그런데 이를 위해 민족, 민중 중심의 노래를 하다 보니 가난한 민중들을 억압하는 제도, 집단, 계급, 문화를 추방하는 운동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그것이 당시 아르헨티나를 지배하고 있던 군사 독재 정권의 심기를 건드리게 되었다.

메르세데스 소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인권탄압이 계속되는 아르헨티나 군사정권 하에서 민중의 애달픈 삶을 반영하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노래를 부르고 또 부르며 정권에 저항했다. 그래서 정원의 감시를 꾸준히 받았다. 그런 중 1976년에 들어선 호르헤 비델라 군부 정권의 폭정이 이어지던 1979년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라 플라타 무대에서 고통 받는 민중의 삶을 슬퍼하고 지배자들의 착취를 비판하는 노래를 해 현장에 있던 관객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하지만 당시 그녀의 사회 참여적 노래는 아르헨티나를 너머 국제적인 인기를 얻고 있었다. 이에 힘 입어 국제 사회의 도움으로 풀려나 프랑스를 거쳐 스페인에서 망명 생활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메리카의 어머니, 고난 받는 자들의 어머니, 목소리 없는 자들의 목소리라 불리던 그녀로서는 망명지에서 조국의 고통 받는 국민들을 방관할 수 없었다. 민중을 위해 노래하는 것, 그것은 그녀의 소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1982년 위험을 무릅쓰고 다시 아르헨티나로 돌아와 콜론 극장에서 여러 날에 걸쳐 공연을 펼쳤다. 무대에서 그녀는 민중을 위한 노래, 군부 독재 정권을 비판하는 노래를 계속했다. 그녀의 공연과 노래에 대한 아르헨티나 민중의 반응은 대단했다. 당시 영국과의 포클랜드 전쟁에서 패해 힘을 잃어가던 군사 정권으로서는 건드리기 어려울 정도의 반응이었다.

군사 정권이 물러나고 민주화가 이루어진 후에도 그녀는 민중을 위한 노래를 이어갔다.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공연 활동도 이어갔다. 그런 중 2009년 10월 4일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사망했다. 우리 나이로 75세의 삶이었다.

시대를 초월한 대표 곡들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앨범은 1993년에 발매된 것이다. “30년”이란 앨범 타이틀이 의미하듯 1962년에 발매된 첫 앨범 <La Voz De La Zafra 추수의 소리> 이후 30년의 음악 인생을 정리한 베스트 앨범이다. 실은 <Canciones Con Fundamento 기본적인 노래들>이 녹음 년도(1959년) 상으로는 첫 앨범이라 할 수 있지만 발매는 1965년에 되었기에 계산을 그리 한 것 같다.

이 앨범 이후 그녀가 16년을 더 살았고 그 기간 동안 12장의 정규 앨범을 더 발매했기에 지금으로서는 이 베스트 앨범이 완벽하지 않다고 느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앨범은 지금까지도 그녀의 음악을 정리한 최고의 베스트 앨범의 하나로 가치를 인정 받고 있다. 이것은 누에바 칸시온의 대표적 인물로 민중 지향의 사회 참여적인 노래를 불렀던 그녀의 불꽃 같은 시기를 아우르고 있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1993년 이후에도 그녀는 새로운 곡들과 함께 그녀의 음악적 성공을 가져다 준 대표 곡들을 종종 앨범에 포함시키곤 했다. 그러므로 이 앨범으로 그녀의 음악을 정리하는 것은 결코 시대착오적인 것이 아니다.

이 앨범이 발매되기 전까지 그녀는 30년간 32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이 앨범은 그 가운데 20곡과 보너스 곡 한 곡을 두 장의 LP에 수록하고 있다. 즉, 30년을 정리한다고 앨범마다 한 곡씩 선곡하는 대신 그녀를 대표하는, 큰 사랑을 받은 곡들을 엄선해 실었음을 의미한다. 실제 20곡의 면모를 살펴보면 60년대 녹음한 3곡, 70년대에 녹음한 6곡, 80년대에 녹음한 10곡, 그리고 90년대에 녹음한 1곡으로 시대적 균형 보다는 그녀의 대표 곡을 중심으로 정리했음이 명확히 드러난다.

60년대를 대표해 실린 3곡 가운데에서는 “Luna Tucumana 투쿠마나의 달”, “Al Jardin De La Republica 공화국의 정원”, “Alfonsina Y El Mar 알폰시나와 바다”이렇게 3곡으로 아르헨티나의 민속적 색채를 담고 있다. 그 가운데 “Alfonsina Y El Mar 알폰시나와 바다”가 가장 널리 알려지지 않았나 싶다. 1938년 바다에 뛰어들어 생을 마감한 여성 시인 알폰시나 스토리니의 비극적 삶을 주제로 씌어진 곡으로 스페인어 권을 너머 세계 곳곳에서 인기를 얻었다. 비극적 주제에 걸맞게 메르세데스 소사는 그녀 자신이 시인이 된 듯 슬픔을 가득 담아 노래한다. 어쩔 수 없이 자살을 선택하게 된 시인의 마음을 표현한다.

70년대에 녹음한 곡 가운데에서는 무엇보다 “Gracias A La Vida 삶에 감사를”를 기억해야 한다. 이 곡은 메르세데스 소사의 대표 곡 중의 대표곡이라 할 수 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꿈꾸게 하는 내용과 달리 슬픔으로 가득한 멜로디와 노래가 삶의 모순마저 느끼게 한다. “Canción Con Todos 모두 함께 부르는 노래”도 중요한 곡이다. “나와 함께 노래하자. 라틴아메리카 형제여, 그대의 희망을 목소리에 담아 함성으로 해방시켜라”는 가사에서 알 수 있듯이 정치적인 함의로 인해 그녀는 정치적인 탄압을 받게 되었다. 이 외에 행진곡 풍으로 선동적인 느낌이 강한“Hermano, Dame Tu Mano 형제 자매여 손을 내밀어라”, 남성 보컬 오라시오 과라니와 듀오로 노래한 “Si Se Calla El Cantor 가수가 침묵하면…”등도 민중을 위로하고 그들의 해방을 꿈꾸었던 메르세데스 소사의 바람을 담고 있다.

앨범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80년대에 녹음된 곡은 크게 1982년 망명 생활을 정리하고 아르헨티나로 돌아와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콜론 극장 공연 실황 4곡과 이후 민주 정권 아래서 녹음된 6곡으로 나뉜다. 그 가운데 그녀의 음악 인생에서 가장 정점의 순간에 해당하는 콜론 극장 공연 실황은 이번 앨범에서도 큰 감동을 준다. 특히 “Sólo Le Pido A Dios 오직 신에게 바라네”는 굳은 의지로 가득한 메르세데스의 노래도 노래지만 그녀와 함께 박수를 치며 노래하는 관객의 반응이 가슴 뭉클하게 한다. 그날 관객들은 그녀의 노래에서 위안을 받고 나아가 폭정의 시대를 견딜 희망을 얻었을 것이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지친 발을 이끌고 앞으로 나아가는 마리아를 서정적으로 노래한 “María Va”, 수 차례 나를 억압해도 매미처럼 계속 노래하겠다는 그녀의 의지를 담은 “Como La Cigarra”등도 마찬가지다. 관객들은 담담하지만 강건함이 느껴지는 그녀의 노래에서 그녀가 어려움에 처한 자신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안도감, 고난 받는 자들의 어머니의 존재감을 느꼈을 것이다.

1982년 이후에 노래한 “Maria Maria”, “Todo Cambia 모든 것은 변한다”, “Unicornio 유니콘”, “Canción Para Carito 카리토를 위한 노래”, 아르헨티나의 찰리 가르시아, 브라질의 밀튼 나시멘토와 함께 노래한 “Inconsciente Colectivo 집단 무의식”, “La Maza 망치”, 그리고 92년에 노래한 “Y Dale Alegría A Mi Corazón 내 마음에 기쁨을” 등의 곡은 가사나 곡의 분위기 모두 밝다. 민주화 정권이 들어선 이후 새로운 시대에 대한 희망이 엿보인다.

한편 이번 LP에는 1997년 <The Best of Mercedes Sosa> 발매에 맞추어 프랑스의 싱어송라이터 프랑시스 카브렐과 듀오로 노래한 “Yo Vengo A Ofrecer Mi Corazón 내 마음을 당신께 드리리”도 수록되었다. 그래서 작지만 기존 CD와는 다른 새로움을 전한다.

앨범에 수록된 노래에 대해 두서 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는 했지만 꼭 정치적인 입장에서 그녀의 노래를 들을 필요는 없다. 그녀가 살았던 시대와 상황을 이해하는 것, 그래서 숙명적으로 사회 참여적인 노래를 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에서 꼭 필요한 일은 아니다. 역사를 확인하듯 감상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그녀의 진심 어린 목소리와 노래 자체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시대와 상관 없이 그녀의 노래가 우리 한국인에게도 깊은 위안과 희망을 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것은 정체적 함의와 상관 없이 음악적으로 그녀의 노래가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녀는 가사만큼이나 멜로디와 그 표현 등 음악적인 측면에도 공을 들였다. 형식, 가사의 의미에 멜로디와 사운드를 종속시키지 않았다. 음악은 아름다울 때 가장 효과적임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당시에도 세계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고 지금도 유효할 수 있는 것이다.

자 그럼 이제 턴테이블에 앨범을 올리고 한 곡씩 차분한 마음으로 들어보자. 그녀의 노래를 통해 어지러운 마음을 정화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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