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 지난 시간에 뉴 올리언즈 재즈의 탄생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재즈가 100% 흑인에 의한 음악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유럽의 백인 음악문화와 아프리카에 기원을 둔 미국 흑인 음악문화의 결합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문: 예 그러면서 제가 구체적으로 백인 음악의 어떤 부분과 흑인 음악의 어떤 부분이 만났는지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고 했죠.
답: 그래서 이번 시간에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죠. 이미 지난 시간에 말씀 드린 대로 다채로운 리듬이 바탕이 된 원시적인 느낌의 흑인 음악, 정리가 되지 않은 채 귀에서 귀로 전달되던 날것의 흑인 음악을 유럽의 클래식으로 대표되는 백인 음악의 화성학 이론이 적용되면서 흑인은 물론 백인까지 즐길 수 있는 음악으로 나아가면서 뉴 올리언즈 재즈가 만들어졌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럼 이것을 전제로 이야기를 진전시켜 볼까요? 그럼 무엇부터 이야기를 해볼까요?
문: 흑인 음악적인 부분부터 이야기를 해주시죠. 재즈가 아무리 백인 음악 문화와 흑인 음악 문화가 만나서 만들어졌다고 해도 지금까지 흑인 음악의 이미지가 강한 것은 흑인 음악이 재즈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 아닐까요?
답: 알겠습니다. 재즈가 흑인 음악이라고 할 때 여기서 말하는 흑인은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끌려온 흑인을 말합니다. 아프리카 음악은 집단적인 연주가 특징입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연주하며 춤을 추며 음악을 즐겼죠. 그렇기 때문에 멜로디보다는 리듬연주가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게다가 그 리듬은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라 매우 복잡했습니다. 폴리리듬이라고 해서 여러 리듬을 동시에 연주하곤 했죠.
문: 여러 리듬을 동시에 연주하면 어지럽고 부조화의 느낌이 나지 않을까요?
답: 그렇긴 하죠. 여러 리듬이 교차되니까 복잡하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저는 이 폴리리듬 연주가 재즈의 기본적인 특징을 잘 설명한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전에 아프리카 음악이 집단 연주의 성격이 강했다고 했죠? 여기서 집단 연주란 하나가 되는 연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함께 하는 연주자들이 각각 다른 리듬을 연주한다고 해도 그것이 서로에게서 멀어지려는 목적으로 연주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다른 리듬들이 아주 절묘하게 어울렸다는 거죠.
문: 그런데요? 그것이 재즈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죠?
답: 생각해보세요? 각자 자신의 연주를 펼치면서도 궁극에서는 서로 어울리는 연주 방식이 곧 재즈가 아닌가요? 주어진 곡을 각자 자신의 개성을 담아 자유롭게 연주하면서 완성된 음악을 만들어 내는 재즈의 기본과 매우 유사합니다. 게다가 집단 리듬 연주를 하는 중에 리더 역할을 하는 사람은 그 안에서 더욱 복잡하고 화려한 즉흥 연주를 펼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날에만 존재하는 특별한 음악이 만들어지곤 했던 것이죠.
문: 그럴 수 있겠네요.
답: 또한 다양한 리듬이 위태로이 어울리는 과정은 긴장과 이완을 만들어 내죠. 그러면서 사람들을 흥분된 상태로 이끌어 춤을 추게 만드는데요. 초기 재즈를 규정지었던 스윙이 바로 여기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문: 그런데 폴리리듬이 꼭 아프리카에만 있었나요? 미국이나 유럽, 아시아 등에도 있지 않았을까요?
답: 예. 꼭 아프리카에만 있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유럽에도 있었습니다. 다만 재즈를 중심으로 놓고 보았을 때 아프리카의 폴리리듬이 제일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죠.
문: 그럼 아프리카 음악이 재즈에 영향을 준 것은 리듬이 전부인가요?
답: 다른 부분에서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특히 멜로디의 측면 아니 정해진 멜로디에 갇혀 있지 않는 자유로운 태도를 재즈가 갖는 데에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 그게 어떻게 된 거죠?
답: 아프리카 음악은 노동요적인 성격도 강했습니다. 그러니까 힘든 일을 함께 할 때 서로 힘을 북돋아주고 호흡을 맞추어 힘을 써야 하는 일에서 그 호흡을 맞추는 데 사용되었다는 것이죠. 이 노동요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지곤 합니다. 예를 들면 리더 역할을 하는 사람이 노래를 하면 나머지 사람들이 뒤를 이어 합창을 하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영어로 콜 앤 리스폰스(Call & Response)라는 것인데요. 우리나라에도 메기고 받기라는 이름으로 전통 음악 중에 이런 부분이 발견됩니다. ‘쾌지나칭칭나네’가 그런 경우죠. 한 사람이 뭐라뭐라 노래를 부르면 나머지 사람들이 ‘쾌지나칭칭나네’하면서 합창하잖아요? 그보다 더 쉬운 예를 들으면 유치원에서 단체로 줄 맞춰 길을 걸을 때 선생님이 ‘병아리’하면 어린 꼬마 유치원생들이 ‘빠약삐약’하면서 거기에 맞춰 길을 걷잖아요? 그것도 일종의 콜 앤 리스폰스입니다. 리더가 부르면 나머지 사람들이 대답하는.
이 콜 앤 리스폰스 방식은 재즈에서도 쉽게 발견됩니다. 보컬이 노래를 하면 뒤를 이어 악기가 이에 화답을 한다거나 악기와 악기간에 짧은 연주를 주고 받는 것 말이죠. 예를 들어 하드 밥 스타일의 연주긴 하지만 아트 블래키와 재즈 메신저스의 명곡 ‘Moanin’’을 들어보면 이 곡을 만든 바비 티몬스가 피아노로 멜로디 한 소절을 연주하면 트럼펫과 색소폰이 여기에 화답하듯이 ‘빠~밤’하며 추임새를 넣죠. 그것이 몇 차례 반복되고 다시 역할을 바꿔 연주하면서 테마를 만들어갑니다. 코넷과 트럼펫을 연주했던 냇 아들레이는 아예 ‘Work Song’이란 곡을 만들어 인기를 얻기도 했습니다. 여기서도 냇 아들레이가 한 소절을 연주하면 기타, 베이스, 피아노 등이 이를 받아 화답하는 느낌의 연주를 하고 다시 냇 아들레이가 이를 받아 연주하는 식으로 테마가 진행됩니다. 이들 곡을 들어보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그런데 꼭 테마에만 콜 앤 리스폰스 방식이 적용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솔로 연주 중에 연주자들간에 주고 받는 인터플레이도 콜 앤 리스폰스 방식의 변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색소폰이 한참 솔로를 펼치고 있는데 그 아래에 피아노 연주자가 간헐적으로 끼어드는 것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문: 예. 그래도 콜 앤 리스폰스가 멜로디에 갇혀 있지 않는 자유로운 태도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답: 그러니까 말 그대로 정해진 멜로디만 연주하거나 노래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말합니다. 노동요에서 리더의 선창은 처음에는 정해진 멜로디를 따라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그것이 반복되면서 흥이 나기 시작하면 리더는 조금씩 변화를 주게 됩니다. 가사도 분위기에 맞추어 바꾸기도 하구요. 이해가 잘 안 가면 앞에서 말한 아트 블래키와 재즈 메신저스의 ‘Moanin’’을 다시 들어볼까요? 이 곡은 사실 바비 티몬스가 아예 테마의 모든 부분을 콜 앤 리스폰스 형식으로 작곡을 한 것입니다. 그래도 뜯어보면 제가 말씀 드린 부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말씀 드린 것처럼 이 곡의 테마는 바비 티몬스와 트럼펫, 색소폰이 주고 받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바비 티몬스의 피아노 연주를 들어보면 처음과 네 번째는 같지만 두 번째, 세 번째는 다릅니다. 첫 연주를 살짝 바꾼 것이죠. 이 곡에서는 모두 작곡된 것이지만 그게 아니라 즉흥이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피아노의 연주에 색소폰과 트럼펫이 반복적으로 ‘빠~밤’하며 화답하고 여기에 흥을 얻어 리더는 첫 멜로디를 바탕으로 변주를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노래였다면 가사까지 바뀌었겠죠. 또 리더가 바뀌면 새로운 멜로디로 연주를 이어갈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정해진 멜로디에 머무르지 않는 자유로운 태도라고 한 것인데요. 이것이 재즈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요?
문: 즉흥 연주?
답: 그렇죠. 이 또한 즉흥 연주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나아가 주어진 멜로디를 시작부터 바꾸어 연주하는 것에도 그 영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주 단순한 변화주기였겠지만 재즈에 와서는 연주할 때마다 새로운 솔로로 연주를 채우는 것의 원동력이 된 것이죠.
문: 그럼 결국 아프리카 음악의 정돈되지 않은 자유로운 성향이 재즈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답: 그럴 수 있을 것입니다. 폴리리듬, 콜 앤 리스폰스에서 스윙, 즉흥 연주, 인터플레이의 기본이 나왔다고 볼 수 있고 그것 모두 순간적이고 자유로운 부분에 관련된 것이니까요.
문: 그럼 이제 유럽의 클래식으로 대표되는 백인 음악의 영향을 말씀해 주세요.
답: 예. 먼저 화성적인 면을 말해야겠네요. 어울리는 음 몇 개를 쌓아 코드를 만들고 그 코드들이 다른 코드로 이어지며 진행하는 것은 분명 백인 음악의 전통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물론 아프리카에서도 기본적인 화성구조가 있습니다. 이것이 무시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악보로 옮겨지면서 클래식에서 사용하던 기보법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백인 음악의 화성 이론이 자연스레 영향을 주었죠.
문: 그냥 아프리카 음악을 발전된 클래식 기보법을 사용해 체계화하는 정도의 수준이 아니었던 모양이죠?
답: 잘은 몰라도 시작은 그랬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 국악에서 피아노로 ‘아리랑’을 연주할 수 있고 가야금으로 비발디의 ‘사계’를 연주할 수 있지만 실제 주는 느낌은 다르잖아요? 아프리카 음악을 클래식의 기보법에 맞추어 옮기는 과정에서도 미묘한 변화가 발생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아프리카 음악을 악보로 옮기고 백인 음악 이론을 통해 정리하는 과정은 아프리카가 아닌 노예로 건너와 미국에 뿌리를 내린 흑인들의 음악이 만들어지는 계기를 마련합니다. 그 예가 블루스입니다. 단순한 몇 개의 코드를 바탕으로 역시 순간적 감흥을 노래와 연주로 풀어갔던 블루스가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그리고 재즈도 마찬가지이고요.
한편 백인의 음악 이론은 작곡에도 영향을 줍니다. 아니 흑인 음악이 백인의 작곡형식을 가져다 쓰게 되었다는 것이 맞겠네요. 아무튼 지난 시간에 코러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때 블루스 형식과 팝 형식의 코러스가 있다고 말씀 드렸던 것 기억하시나요?
문: 예 기억납니다. 블루스 형식은 블루스를 느끼게 하는 코드 진행 규칙을 따르는 것이고 팝 형식은 뮤지컬이나 영화 음악 등의 대중 음악에서 사용되던 AABA, ABAC 같은 구조로 이루어진 것을 말한다고 하셨죠.
답: 잘 기억하고 계시네요. 좋은데요? (웃음) 그 팝 형식 또한 백인 음악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이 형식을 따라 연주자들이 곡을 쓰고 연주하면서 재즈의 폭이 넓어지고 대중 음악으로서의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죠. 물론 그러면서 아프리카의 색채감을 줄어들게 되었죠.
문: 아. 그렇군요. 결국 백인 음악은 아프리카 흑인 음악을 체계화하고 미국이라는 공간에 걸맞은 세련미를 지니게 하는데 역할을 한 것이군요.
답: 예. 그러니까 흑인 음악이라고 해도 이제는 아프리카 흑인이 아니라 미국 흑인 음악이 되는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한편 재즈가 세련된 미국 대중 음악이 된 데에는 타악기에만 의존하지 않고 색소폰, 트럼펫 등 관악기를 사용한 것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색소폰, 트럼펫이 중심이 된 악기 구성 또한 백인 음악의 영향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문: 그런가요? 원래 색소폰, 트럼펫은 흑인 음악에 더 어울리는 악기고 바이올린, 첼로 같은 악기는 백인 음악에 어울리는 악기가 아닌가요?
답: 그것은 결과에서 비롯된 이미지, 선입견이죠. 색소폰, 트럼펫도 원래 유럽에서 만들어진 악기잖아요. 오케스트라에도 포함되어 있고. 다만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이들 악기들이 재즈에서 더 많이 사용되고 더 잘 드러나기 때문에 그런 착각을 하기 쉽죠.
문: 그럼 어떤 백인 음악이 관악기를 많이 사용했나요?
답: 20세기 초반 재즈가 탄생하기 전의 뉴 올리언즈에는 브라스 밴드가 많았습니다. 이들은 장례식, 결혼식 등에서 행진곡과 일반 대중 음악을 연주했습니다. 특히 남북전쟁 이후에는 존 필립 수자로 대표되는 군악대의 연주가 매우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러니까 당대 대중 음악의 가장 유행하는 편성이 브라스 밴드였던 것이죠. 그래서 재즈 또한 이 관악기를 대폭 사용한 편성을 하게 된 것이죠. 브라스 밴드는 코넷 등의 음역대가 높은 악기가 멜로디를 담당하고 트롬본 튜바 같은 악기가 베이스를 담당하는 식으로 연주를 했는데요. 뉴 올리언즈 재즈 또한 이러한 방식을 차용했습니다. 그래서 코넷이 멜로디를 연주하고 클라리넷이 그 아래에서 멜로디에 대응하는 연주를 펼치고 트롬본 튜바 등이 베이스 부분을 연주하며 벤조 같은 악기가 리듬을 연주하는 뉴 올리언즈 재즈의 기본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문: 드럼은요?
답: 참 역설적인 것이 이동하면서 연주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드럼은 초기에는 그렇게 두드러지지 않았습니다. 타악기가 대체하거나 큰 북 정도가 사용되는 식이었죠. 그러다가 주어진 공간에서 연주를 하게 되고 조금 더 강력한 사운드가 필요하게 되면서 복잡해진 드럼 세트가 사용됩니다.
문: 어쩌면 그것이 재즈의 시작에 백인 음악이 끼친 가장 큰 영향이 아니었을까요?
답: 글쎄요. 사실 실용적인 이유 때문이었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아프리카의 느낌이 덜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문: 그렇다면 이 흑인 음악 문화와 백인 음악 문화가 만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답 그것은 이미 지난 시간에 설명해 드린 대로 역사적인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죠. 그런데 꼭 생각해야 할 것이 있는데요. 재즈가 한 연주자나 집단의 학구적인 연주에 의해 이렇게 아프리카와 유럽의 음악을 결합해 보자 하는 식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당연히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생긴 음악도 아닙니다. 클래식에 비해서는 짧은 시간이었겠지만 어쨌건 오랜 시간에 걸쳐 자연스레 형성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흑인 음악의 이런저런 요소와 백인 음악의 이런저런 요소가 결합되었다는 식으로 간단히 이해하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시간을 넣어 크레올이 있었고 노예로 시작되었지만 새로운 흑인 음악 문화를 만들어갔던 미국 흑인도 있었다. 이들이 어울리게 되면서 재즈의 기초가 만들어졌고 그것이 다시 시간 속에서 견고해졌다는 것으로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
문: 예. 알겠습니다.
답: 그럼 다음 시간에 보죠. 감사합니다.
몇일 전 조카가 “고모, 재즈가 뭐야?” 묻길래, “어? 그게 말이지..어쩌구저쩌구..”
재즈 문답 덕분에 나름 말로 설명이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아하 재즈에 관심이 있는 조카가 있군요. ㄹ
이 기회에 본격적으로 재즈의 세계로 전도 좀 해보려고합니다.ㅋ
예. 여기에 글을 올릴 때까지 전도!! ㅎ
하하하~ 간만에 큰 웃음을..^^ 열심히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