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 지난 시간에는 즉흥 연주 이야기를 하다가 재즈사의 흐름을 아주 가볍게 이야기를 해봤는데요. 그 뒤로 들어보신 재즈 앨범이 있나요?
문: 즉흥 연주에 익숙해 지기 위해 되는대로 이것저것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색소폰 연주자 오넷 콜맨이 세상을 떠났다고들 하더라고요. 프리 재즈의 창시자가 사망했다고 하면서 여기 저기서 애도의 글이 올라오길래 누군가 싶어서 앨범을 하나 들었습니다.
답: 그래요? 정말로요? (웃음) 그래서 어땠어요? 아니 어떤 앨범을 들으셨죠? 되게 궁금한데요? (웃음)
문: 왜 그렇게 즐거워하시는 줄 알고 있습니다. 예. <Free Jazz> 앨범을 들었는데 매우 어렵더라고요. 도대체 이게 음악이야? 싶을 정도로 말이죠. 프리 재즈라고 했는데 이렇게 어지럽게 연주해야 자유로운 재즈가 되는 것이라면 다른 비밥이나 스윙 재즈는 자유롭지 못한 것인가 싶더군요.
답: 그럴 수 있어요. 비밥의 언어를 깨고 새로운 길을 나가려 한 것이 프리 재즈니까요. 특히 <Free Jazz>는 다른 오넷 콜만의 앨범보다 더 듣기가 어렵습니다. 멜로디, 화성 그런 것을 생각하며 끝까지 듣기가 쉽지 않죠. 저도 처음 들었을 때 한 5분 정도 듣다가 이건 아니다 싶은 마음에 멈췄습니다. 그래도 아 재즈는 아니야 하고 재즈에 대한 관심을 멈추시지는 않겠죠?
문: 재즈를 처음 듣는 사람은 그럴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이제 그렇지 않습니다. 생각해보면 제가 처음 비법 재즈를 들었을 때도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다 어지럽고 서로 어울리지 않아 소음처럼 들리는 느낌이요.
답: 예. 비밥이나 프리 재즈나 재즈 자체에 친숙하지 않은 분들에게는 모두 어려운 느낌을 줄 수 있죠.
문: <Free Jazz>가 너무 충격적이어서 그럼 초기 재즈는 어떤가 싶어서 뉴 올리언즈 재즈를 듣고 싶어졌습니다. 확실히 듣기가 더 편하던데요. 무엇보다 흥겨운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여기서 출발한 재즈가 프리 재즈에 이르러 그리 복잡해진 것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니까 매우 신기하던데요.
답: 당연히 프리 재즈에 비해서는 듣기 편하죠. 그런데 연주 방식에 있어서는 뉴 올리언즈 재즈 또한 <Free Jazz>에서처럼 집단 즉흥 연주 방식을 취하곤 했습니다. 지난 시간에 잠깐 말씀 드렸죠? 체계적인 편곡보다는 연주자들이 그 자리에서 직관적으로 편곡하고 연주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요.
문: 아 그런 말씀을 하셨죠. 그런데 뉴 올리언즈 재즈를 듣다가 궁금한 점이 하나 생겼습니다. 왜 하필 재즈는 뉴 올리언즈에서 탄생한 것이죠? 뉴욕, LA 이런 도시가 아니고요.
답: 재미 있는 질문입니다. 모든 일에는 그에 대한 원인, 이유가 있기 마련이죠. 뉴 올리언즈에서 재즈가 탄생된 데에는 역사적, 문화적 배경이 있었습니다. 미국 루이지애나 주에 위치한 뉴 올리언즈는 1718년 당시 이곳을 식민지로 지배하고 있었던 프랑스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뉴 올리언즈라는 도시 이름도 프랑스 파리 남쪽에 위치한 영어로 올리언즈로 발음되는 오를레앙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프랑스가 이 곳에 도시를 만들게 된 데에는 뉴 올리언즈가 멕시코만과 미시시피강을 끼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에 항구도시를 만든다면 무역이 쉬워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던 것이죠. 항구도시에는 여러 사람들이 교차하고 그와 함께 다양한 문화들이 만나고 새롭게 발전하곤 하잖아요?
문: 예. 그렇죠. 아! 그래서 뉴 올리언즈를 통해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이 들어오게 된 것인가요? 듣자 하니 재즈는 아프리카 흑인 음악과 연관이 많다면서요.
답: 예. 그렇죠.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그보다는 아프리카의 흑인 음악 문화와 백인의 음악 문화가 결합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문: 그것이 어떻게 가능해졌죠? 뉴 올리언즈 항구를 통해 아프리카 흑인들이 들어 왔다고 해도 노예제도 때문에 문화가 섞이기는 어렵지 않았을까요?
답: 아마도 뉴 올리언즈라서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조금 더 뉴 올리언즈 역사에 대해 알아볼까요? 프랑스는 뉴 올리언즈를 만들었지만 오래 소유하지 않았습니다. 1763년에 스페인에게 선물로 주었거든요. 그리고 스페인은 1801년 프랑스에 뉴 올리언스를 되돌려주고 프랑스는 2년 후 미국에 돈을 받고 팝니다. 무슨 역사시간 같죠? 그렇다고 년도에 그렇게 신경을 쓸 필요는 없습니다. (웃음) 중요한 것은 이렇게 소유권이 바뀌는 사이 뉴 올리언즈에 프랑스, 스페인의 문화가 들어와 섞였다는 것입니다.
문: 음악적으로요? 그렇다면 재즈가 프랑스와 스페인 음악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인가요?
답: 그것은 아닙니다. 성급한 생각이고요. 그보다는 다른 문화 민족의 만남이 이루어졌다는 것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게다가 프랑스와 스페인이 통치하는 중에 독일과 아일랜드 이민자들도 뉴 올리언즈에 들어오고 스페인에 의해 자유의 신분이 된 흑인들도 증가하게 됩니다. 노예가 링컨 대통령이 노예를 해방시킨 것이 1863년이니까 한 백여 년 앞선 것이죠.
이처럼 여러 민족들이 공존하면 과거보다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형성이 되곤 하는데요. 이 때 다른 민족간의 결혼이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결혼 중에는 백인과 자유를 획득한 흑인의 결혼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 부부 사이에 자식이 생기겠죠? 이들을 크레올이라고 부르는데 이 크레올이 재즈의 탄생에 큰 역할을 합니다.
문: 흑인과 백인 사이에서 태어났다면 혼혈이잖아요? 그렇다면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이 있던 미국에서 크레올의 위치는 어떠했나요?
답: 시대에 따라 다르긴 했는데요. 일단 초기에는 백인과 가까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흑인 노예를 둔 크레올도 있었으니까요. 이 크레올은 백인에 버금가는 교육, 문화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음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수의 크레올들이 클래식 음악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것도 프랑스 파리에 가서 말이죠. 그래서 뉴 올리언즈로 돌아와서는 비유 카레(Vieux Carré)라 불리는 프랑스 거주 구역에서 음악 활동을 하면서 상류층에 가까운 삶을 살았습니다.
문: 이들이 재즈를 만들고 연주했다는 것인가요? 아니었을 것 같은데요?
답: 예. 정통 클래식 교육을 받은 만큼 재즈를 연주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니 지금 제가 말하는 시기는 재즈가 아직 탄생하기 전입니다. 1863년 링컨 대통령의 노예 해방선언으로 흑인들이 공식적으로 자유를 획득했지만 그렇다고 백인이나 크레올처럼 정식 교육을 받고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어 높은 사회적 위치에 오를 기회를 얻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뉴 올리언스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요. 이들은 커넬가 서쪽에 주로 거주하면서 가정부, 시종 등 백인들의 시중을 드는 일을 하며 가난한 삶을 살았죠. 물론 이들 중에서도 음악을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정식 음악 교육을 받지 못한 탓에 구전과 귀로 음악을 익혔습니다. 그리고 그 음악은 블루스와 가스펠의 색채가 강했습니다.
문: 아. 그래서 크레올 연주자들이 음악 이론에 소양이 없는 흑인 연주자들을 만나면서 재즈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군요. 그런데 크레올은 백인에 가까운 상류층의 삶을 살았다면서요? 그래서 계급적인 우월감 같은 것이 있었을 텐데 그게 가능했을까요?
답: 1963년 링컨대통령에 의한 노예 해방이 이를 가능하게 했죠. 그런데 그것이 참 기이합니다. 노예 상태의 흑인들이 자유의 신분이 되어 백인이나 크레올과 거리낌 없는 음악적 교류를 하게 되었다면 모르겠는데 노예 해방으로 인해 크레올의 사회적 지위가 낮아지면서 이런 만남이 발생했거든요.
문: 어째서죠?
답: 그러니까. 노예제도 상에서는 신분차별이 사회적 차별의 핵심이었습니다. 세부적인 차이가 있었겠지만 크게는 흑인 노예와 그렇지 않은 사람 정도로 나뉘었다고 할까요? 그래서 크레올도 자유 신분이었으니 지배 세력을 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백인과 가까운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노예 해방이 된 후에는 인종차별이 사회적 차별의 핵심으로 부상합니다. 그러면서 크레올 또한 유색인종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894년 크레올도 흑인과 같이 대우한다는 법이 만들어지면서 크레올은 하층의 신분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거주 지역 또한 커넬가 서쪽으로 옮기게 되죠.
문: 크레올에게는 마음의 상처가 컸겠네요.
답: 그렇죠. 오랜 시간 유럽의 혈통으로 생각하고 살아왔고 문화적인 자부심도 있었는데 갑자기 차별의 대상이 되었으니 자존심이 무척 상했을 겁니다. 또 흑인들이 크레올을 무조건 환영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일자리를 두고 경쟁을 해야 했으니 말이죠. 음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크레올은 정식 클래식 교육을 받은 자신들이 생계를 위해 싸구려라고 생각했던 음악을 연주해야 한다는 사실이 싫었을 것이고 흑인 연주자들은 크레올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싫어했을 것입니다.
문: 이질적인 집단을 억지로 같이 살게 하니 어울리는데 시간이 좀 걸렸겠네요.
답: 그래도 결국은 어울렸으니 재즈의 탄생이 이루어진 것이겠죠?
문: 그렇다면 재즈의 탄생에서 크레올과 일반 흑인 연주자들의 관계라고 할까? 역할 같은 것은 어떠했나요?
답: 사실 재즈가 여기부터 시작이다 하는 명확한 출발점이 없기 때문에 그 역할을 명확히 나누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크레올이 풍부한 음악 이론을 바탕으로 직관적인 방식으로 이어진 흑인 음악을 이론화 체계화하는데 일조했고 흑인들은 흑인들 대로 서구적인 음악 지식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음악을 정교화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문: 그러면 재즈를 흑인이 만들었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인가요?
답: 미국에서 흑인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문화적으로는 흑인 음악과 유럽 백인의 음악이 만나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문: 그래서 뉴 올리언즈 재즈를 들어보면 흑인의 느낌이 더 강한데요? 클래식의 흔적은 별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백인의 음악 어법으로 흑인의 직관적인 음악을 체계화 했다는 것으로 흑인과 백인의 음악이 만났다고 할 수 있을까요?
답: 그렇게 생각하면 아니죠.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봐야 하는 점은 재즈의 기원을 아프리카 음악에 두는 것입니다. 분명 노예로 끌려온 흑인들이 아프리카 출신이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그 노예 상태가 계속되면서 그 자체로 흑인 음악은 변화를 거듭했습니다. 아까 말씀 드린 커넬가 서쪽에 거주했다는 흑인들의 음악 또한 이미 아프리카의 음악과는 다른 면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예로 가스펠의 경우 이미 기독교 음악을 바탕으로 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재즈를 흑인 음악 전통과 백인 음악 전통의 만남이라 할 때의 흑인 음악은 순전히 아프리카 음악이 아니라 아프리카에 기원을 두면서도 미국 내에서 시간을 두고 환경에 맞추어 변화한 음악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크레올을 통해 백인 음악과 어우러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백인의 음악 이론으로 흑인 음악을 체계화 한 것은 단순 정리의 의미를 너머 이후 새로운 방향으로 흑인 음악이 나아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재즈가 된 것이고요. 바로 여기에 크레올과 흑인의 만남, 유럽 백인 음악과 흑인 음악의 만남의 의의가 있습니다.
문: 그리고 그것이 뉴 올리언즈였기에 가능했다는 것이고요.
답: 예. 사실 흑인 음악이 백인 음악의 이론에 의해 체계화 되었다는 것에는 그 음악이 흑인을 넘어 백인들에게까지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거든요. 재즈가 탄생과 함께 흑인은 물론 백인들의 사랑을 받은 것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흑인만의 민속음악에 머물러 지금의 세계적인 음악이 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문: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백인 음악의 어떤 부분과 흑인 음악의 어떤 부분이 만났는지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답: 이것은 다음 시간에 할까요? 시간이 걸리는 주제거든요.
문: 예 알겠습니다.
답: 감사합니다.
어떤 이론이나 형식이든 시대적 배경을 떠나 설명할 수 없다고 보는데,
이런 역사적 배경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어서 정말 흥미롭습니다!!
다음 회가 마구마구 기다려집니당^^
그런데, 프리재즈 앨범…
전 이상하게 각각의 악기 음색과 연주가 더 명료하게 와닿는 것 같아요.
처음의 전체적인 느낌은 부조화스러울수 있지만, 그 속에서 각 악기 연주를 가만히 들으면
서로 어울리는 그 절묘함에 신기한 느낌마저 듭니다.
지금은 알게 모르게 프리 재즈의 자유가 포스트 밥 사운드에 젖어 있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즉, 어느 정도 모르는 사이 교육이 되었다는 것이죠. 악기 별로 나누어 들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또한 감상을 할 줄 안다는 것이구요.ㅎ
한때 교향곡을 계속 리플해서 듣다보니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이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귀가 뚫린다고 해야하나요?…
암튼, 그건 저마다 계기가 있는 것 같아요…
자꾸 반복해서 들으면 복잡한 음악도 실타래처럼 풀리게 되죠. 사실 끈기만 있으면 어려운 음악은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