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도 제작되었던 <책 읽어주는 남자>로 알려진 독일 작가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소설집이다. 한번에 쓴 것 같지는 않은데 마치 음악 앨범처럼 여름을 무대로 거짓말과 관련된 7편의 소설을 싣고 있다.
거짓말을 보통 우리는 나쁜 것이라 말한다. 거짓됨이 없는 삶을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한다. 하지만 어디 그것이 쉬운 일일까? 매순간 우리는 선택의 순간에서 진실보다는 내 편의를 먼저 생각한다. 정확하게는 명백한 객관적 진실이 아닌 내적 욕망의 진실을 따른다. 그래서 사회적 지탄을 받거나 스스로 후회하곤 한다.
그런데 작가는 7편의 소설을 통해서 여러 거짓말의 경우를 보여준다. 먼저 현재를 유지하기 위한 거짓말을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다른 여자와 출장 여행을 떠난 남자가 섹스가 없었다는 것을 애인에게 이해시키기 힘들다는 생각에 아예 혼자 여행을 다녀왔다고 거짓말을 했다가 들통나는 “바덴바덴에서 보낸 밤 “같은 경우가 그렇다. 물론 다른 여자와 출장 여행을 간 것 자체가 잘못되었긴 하지만 그 사실을 말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그럴 남자라면 아예 다른 여자와 여행을 가지 않았을 것이다. 암으로 고생하는 은퇴한 대학 교수가 가족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온 가족의 여름 휴가 끝자락에 자살을 할 생각을 했다가 들통나 자식과 아내 모두 그의 곁을 떠나는 “마지막 여름”의 경우도 그 본의 자체는 비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으니.
청체성과 관련된 거짓말도 보여준다. 휴가지에서 만난 여성과 사랑에 빠진 남자가 결혼을 약속한 뒤 짐을 정리하기 위해 자신의 집에 왔다가 그 집에 관련된 평온한 일상을 놓치기 싫어하는 “성수기가 끝나고”의 경우, 과연 그가 그 집에 남을 지 여자의 집으로 가 새 삶을 시작하게 될 지는 모르지만 여름 휴가지에서의 사랑이 진실된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정체성까지 바꿀 정도는 아님을 말한다. 즉, 정체성의 거짓말을 앞에 두고 있다고 할까? 서로 서먹서먹한 부자가 바흐 음악 페스티벌 여행을 떠나 가까워지려는 이야기를 나누지만 의도대로 되지 않는 “뤼겐 섬의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 또한 오랜 시간 형성된 자아를 허무는 진실된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는 두 사람을 보여준다.
위에서 언급하기도 한 개인적인 욕망적 진실에만 충실한 이야기도 나온다. 한적한 전원 주택에서의 가족과 함께 하는 삶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무리수를 두는 남자의 이야기 “숲 속의 집”이나 사실과 다르게 첫사랑의 기억을 실연의 기억으로 바꾸어 기억하고 있는 여성의 이야기 “남극 여행”, 계속 사실을 자기 중심적으로 이해하는 “밤의 이방인” 등은 이기적인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이처럼 7편의 소설들은 모두 거짓말을 중심으로 사건이 흘러간다. 이들 사건을 통해 거짓말에 대해 독자가 새로이 생각해 볼 것을 제안한다. 무조건 거짓말을 나쁘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펼치지 않는다. 다만 한가지 명확하게 작가가 주장하는 것이 있다면 거짓말은 결국 들통 난다는 것이다. 그 의도야 어쨌건 거짓말은 의도된 방향으로 삶을 전환시키지는 못한다. 그저 뒤틀어 끊어져 의도와는 아주 다른 방향으로 이끌 뿐이다. 그래서 내 정체성은 혼란스러워 지고 관계는 허물어지며 나는 이기적인 사람 이상이 아닌 것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내 삶은 이를 정점으로 가을을 향해 간다.
요즈음 읽은 소설들은 문체가 하나같이 다 좋다. 간결해 읽기 편하면서 깊은 의미를 드러낸다.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읽는 내내 생각했다.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