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에세이를 즐기지 않는다. 어찌보면 나 또한 넓은 의미에서 에세이를 많이 쓰지만 말이다. 어린 시절 읽었던 무조건 곱고 예쁜 세계만을 그리려 했던 에세이의 뻔한 이미지 때문에 잘 읽지 않는다. 특히 개인적인 일상을 담은 에세이는 책이 아니더라도 많이 읽을 수 있다.
그런데 갑자기 시인 장석남의 이 에세이집이 눈에 들어왔다. 물 빛 표지와 빛 바랜 종이위에 특별한 이미지 없이 명조체로 씌어진 글이 주는 아련한 느낌, 오래된 무엇을 우연히 발견한 느낌 때문에 덥썩 손에 들었다. (알고보니 책 디자인을 수류산방이 했다고 한다. 내겐 ECM관련 책을 내려다가 내지 못한 인연이 있는 곳으로 언젠가는 한번 같이 책을 내고픈 곳이다.) 아! 그리고 대학 시절 읽었던 시집 <새떼들에게로의 망명>이 떠올랐던 것도 영향을 끼쳤다.
실제 이 책은 같은 제목으로 2000년에 출간되었던 적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난 몰랐다. 그렇다고 과거의 책을 디자인만 바꾸어 내지는 않았다. 그 이후 쓴 몇 편의 글을 추가했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 사망, 세월호 사건 무렵에 쓴 글이 있는 1부가 그렇지 않나 싶다.
“그렇다는 얘기”라는 부제처럼 시인은 자신의 삶과 그 속에서의 느낌을 편안하게 이야기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시의 전단계가 아닌가 싶은 글들도 보인다. 어린 시절 고향의 이야기, 일을 하며 먹고 사는 직장인의 삶 이야기 등이 사적으로 이어진다. 꼭 그 안에서 무엇인가 의미를 찾을 일도 없다는 듯이 개인적인 이야기들이다. 물론 그 가운데 어머니에 관련된 추억, 고독에 관련된 이야기 등은 옮겨적고 싶을 정도로 인상적인 부분도 있다. 그 가운데 두 개만 옮긴다면.
…그 그물망 속의 일상을 나는 감히 고독이나 외로움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것은 그저 이 자본주의 미로를 교조적으로 헤매는 일일 뿐이다……….우리들의 삶은 모두 적막을 만나고 그것과 친해지고 그것에 익숙해지고 그리고 그것이 살 수 있는 공간을 우리들 안에 마련하는 기간을 말하는 지도 모른다. – “적막”
바다는 긴 손가락들로 눈에 보이는 이 세계만이 우리 삶의 전부가 아니라고 내게 음악처럼 말해줄 것이다. 그 바다는 반드시 내가 늘 그리워하는 서포리 해변일 필요는 없다. 바다와 물이 만나는 해변의 신비가 왜 거기에만 있겠는가. 고요한 밤바다에 오래도록 앉아 있노라면 바다로부터 들려오는 파도 소리 속에 어떤 생의 비밀스러움을 가르쳐주는 말소리가 섞여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그것을 영혼의 소리라고 부를 수 있으리라.
불현듯 나는오동나무의 푸르스름한 그늘이 잔물결 소리가 되어 내게 밀려오는 환幻에서 빠져나온다. 오늘 같은 날은 드뷔시를 듣기에 좋은 날이다. – “물의 정거장”
절대적으로 인상적이기 보다 평소 나의 생각과 공명되는 부분이 있어서, 시적인 아름다움이 있어서 기억하는 부분이다. 이 외에 쳇 베이커 등 재즈를 듣는 일상, 오디오를 장만하던 이야기 등도 내 추억과 맞물려 아스라하게 다가왔다.
한편 시인이다보니 표현이 참 신중해서 좋았다. 시인이라 아무렇지 않게 그리 글을 쓰는 지는 모르지만 그냥 내용에만 관심을 둔 글 쓰기가 아닌 듯 해서 좋았다. 책을 읽는 느낌을 제대로 들게 해주었다. 나아가 본받고 싶었다.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적막’이란 단어 자체를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것 같습니다.
이런 표현이 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
인용한 부분의 표현들이 뭔가 ecm스러운 느낌이 드네요.^^
적막, 침묵이란 말만 나오면 저도 ECM을 절로 생각하게 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