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 록, 재즈 계의 별들이 하나 둘 지고 있다. 새해의 시작과 함께 폴 블레이, 데이빗 보위가 세상을 떠나더니 지난 2월 3일에는 모리스 화이트가 세상을 떠났다. 파킨슨씨 병을 앓다가 자연사했다고 한다.
모리스 화이트 하면 아마도 누구?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는 어스 윈드 앤 파이어의 보컬과 드럼 연주자이자 리더였다. 이 그룹은 1969년에 결성되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고인은 2005년도 앨범 <Illumination>까지 그룹을 이끌었다. 아마도 이후 건강 문제로 그룹을 떠났던 것 같다.
지금도 활동하고 있다지만 현재성을 지닌 그룹으로서 어스 윈드 앤 파이어의 전성기는 1970, 80년대였다. 널리 알려진 “Fantasy”, “Boogie Wonderland”, ”After the Love Has Gone”, “September”, “That’s the Way of the World”, “Reason” 등의 곡들을 히트시키며 R&B, 펑키, 소울, 디스코 등 70,80년대의 흑인 대중 음악의 흐름을 이끌었다.
그런데 어스 윈드 앤 파이어 하면 많은 사람들은 팔세토 창법으로 한 없이 올라가는 보컬을 제일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그룹의 보컬이었던 모리스 화이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그 하이톤의 보컬이 세상을 떠난 것인가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나만의 착각일까?) 하지만 그룹의 전방에서 열심히 가성을 써가며 노래했던 보컬은 고인이 아닌 필립 베일리였다.
그래서 나는 외적인 측면에서 어스 윈드 앤 파이어는 필리 베일리의 그룹이었다고 생각한다. 실제 1980년대 필립 베일리와 모리스 화이트는 각각 솔로 활동을 했는데 모두 그룹의 인기에 버금가는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필립 베일리가 그래도 모리스 화이트보다는 더 큰 인기를 얻었다.
모리스 화이트는 사실 노래보다는 작곡과 제작에서 더 큰 능력을 발휘했다. 그룹의 인기 곡들 대부분은 (공동 작곡도 있지만) 그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앨범들 또한 그의 지휘 아래 제작되었다. 그룹의 설립자이자 리더로서 사운드의 근간을 책임졌던 것이다.
작곡가, 제작자로서의 그의 능력은 데니스 윌리암스, 디 이모션스 등의 걸 그룹의 앨범 제작부터 이틀란틱 스타, 닐 다이아몬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배리 매닐로우 등의 앨범 제작에 관여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누구와 함께 하든 그가 제작한 곡들은 모두 그의 존재감이 느껴졌다. 심지어 포크, 컨트리 계열의 음악이 어울렸던 닐 다이아몬드조차 그의 지휘 아래에서는 펑키한 모습을 보였다.
한편 내가 이렇게 모리스 화이트의 사망을 애도하고 기리는 것은 그가 대중 음악계의 큰 별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재즈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어스 윈드 앤 파이어를 만들기 전 재즈 드럼 연주자로 활동했다. 특히 램지 루이스 트리오의 드럼 연주자로 수년을 활동했다. 이 인연으로 램지 루이스의 앨범 <Sun Goddess>(1974), <Salongo>(1976), <Sky Islands>(1993)을 제작하는 한편 피아노 연주자가 주축이 되었던 그룹 어번 나이츠의 첫 두 앨범을 제작하기도 했다. 램지 루이스 외에도 2008년 기타 연주자 브라이언 컬버트슨의 앨범 <Bringing Back The Funk>의 제작을 담당하기도 했다.
실제 이들 앨범을 들어보면 (어스 윈드 앤 파이어의 음악을 규정지었던) 펑키한 리듬이나 화사한 멜로디 그리고 효율적인 브라스 섹션-건반으로 유사한 효과를 내기도 했다-의 활용 등에서 그의 존재감이 강하게 느껴진다.
결국 그는 스무드 재즈가 소울 R&B, 펑키 스타일의 음악에 경도되는데 일조를 했다 할 수 있다. 재즈 사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인물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그의 떠남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
소개하는 곡은 브라이언 컬버트슨의 “Let’s Stay In Tonight”과 어번 나이츠의 “Wanna Be With You”와 디 이모션스의 “Smile”이다. 장르와 상관 없이 그의 그림자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음악이 착착 감깁니다!
20대 때에는, 앨범을 계속 리플레이해서 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오래 기억되고 추억도 깊은 것 같습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