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M에서 앨범을 녹음하는 연주자들은 자신의 음악에 변화를 줄 준비를 해야 한다. 특히 평소보다 부드럽고 여유 있는 연주를 해야 한다. ECM의 제작자 맨프레드 아이허의 취향이 그렇기 때문이다. 이 제작자는 실내악 같은 재즈, 그러면서도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돋보이고 신선한 사운드가 아름다운 음악을 원한다.
이렇게 말하면 하기 싫은 음악을 연주자가 해야 하는 상황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할 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꼭 ECM에서 앨범을 녹음하는 것이 성공을 의미한다고 믿어서 자신을 포기해서라도 앨범을 녹음하겠다고 마음 먹지 않는 한 부담을 느끼면 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서” 모르는 나가 있을 수 있다면 맨프레드 아이허와 대화를 나누며 그의 지시에 따라 앨범을 녹음해 보는 것도 괜찮은 일일 것 같다. 정말 자신의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 경우 앨범 녹음은 새로운 모험, 즐거운 자아 탐험이 된다.
색소폰 연주자 마크 터너의 앨범 <Lathe of Heaven>(2014)를 통해 ECM과 인연을 맺은 트럼펫 연주자 아비샤이 코헨의 ECM에서의 이번 첫 앨범도 그런 경우가 아닐까 싶다. 내가 아는 아비샤이 코헨은 역동적인 움직임이 많은, 감정선을 드러내기 보다 긴장 자체를 즐기는 듯한 포스트 밥 성향의 연주를 즐기는 인물이다. 그런데 만약 당신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번 앨범의 첫 곡 “Life & Death”를 들으면 트럼펫 연주자가 이리도 말랑한 면이 있었던가? 하며 놀라게 될 것이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그림자를 느끼게 하는 뮤트 트럼펫으로 그는 소멸을 향해 가는 삶을 매우 달콤하게, 치명적이다 싶을 정도로 아름답게 그린다. 아비샤이 코헨의 가장 낭만적인 곡인 동시에 최근 몇 년 사이 ECM에서 발매된 앨범들 가운데서도 가장 인상적인 발라드라 할 만하다.
이어지는 “Dream Like A Child”, “Into The Silence” 등을 비롯한 곡에서는 몇 해전 세상을 떠난 케니 휠러처럼 따스한 톤으로 역시 침묵을 정면으로 바라본 듯한 반성적 연주를 펼친다. 그리고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지 않고 전체 앙상블을 생각한 듯 절제된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운데 빌 맥헨리의 색소폰 연주와 이루는 대비적 어울림은 연주의 전개에는 차이가 있지만 다시 마일스 데이비스의 킌텟 시절을 그리게 한다.
한편 아비샤이 코헨만큼이나 이번 앨범에서는 요나단 아비샤이의 피아노 연주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아비야이 코헨과는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낸 이 피아노 연주자가 에릭 레비스(베이스), 내쉿 웨이츠(드럼)와 트리오를 이루어 펼친 연주는 그 자체로 완결성이 있다. 그래서 때로는 트리오 연주 위에 트럼펫이나 색소폰이 끼어든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Dream Like A Child”에서의 연주가 특히 그렇다. 트럼펫 연주자가 에필로그로 마지막에 다시 “Life & Death”를 피아노 솔로로 연주하게 한 것도 전체 앙상블에서 피아노 연주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앨범이 어두우면서도 반짝이는 아름다움을 지니게 된 것은 앨범이 아비샤이 코헨이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바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니까 “Life & Death”는 임종을 얼마 남기지 않았던,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었던 아버지의 모습을, 타이틀 곡은 아버지의 부고가 준 부재감, 공허를 그린 것이다.
감정적이지 않으려 해도 감정적일 수 밖에 없는 상황, 기억이 앨범을 이렇게 아름답게 했다. 따라서 ECM에서 앨범을 제작한 것은 어찌보면 매우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정말 너무 너무 멋있는 리뷰 입니다 ^^ 내가 아비샤히 코헨으로 감정 이입이 돼서 진지하게 내려가는 글들이 가상의 감정이입이라 할지라도 동감할 수 밖에 없고, 또 그것이 가장 사실에 가까워 지려는 노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음악은 못 들어 봤지만 벌써 음악이 들려오는 듯 하네요 ^^
그래도 직접 음악을 들어보셔야겠죠? 그냥 음악이, 앨범이 주는 것을 있는대로 썼는데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