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낮에 장흥에 다녀왔다. 도착하자 마자 갑자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미술관 앞마당을 소복이 덮는데 봄에 대한 설렘으로 나왔던 목적을 잊고 겨울의 마지막 풍경일 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을 느끼게 했다.
미술관의 넓은 창을 통해 보이는 풍경은 미술관 안의 그림들보다 아름다웠다. 한가한 일요일, 한적한 미술관 때문이었는지 내리는 눈이 매우 평화롭게 보였다. 어지러운 마음이 흰색으로 정리 되는 듯한 느낌.
장흥에 올 때는 프레드 허쉬의 솔로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왔었다. 흐린 날에 잘 어울리는 차분하고 시적인 연주였다. 하지만 눈 내리는 풍경 앞에서 나는 60년대 보사노바를 생각했다. 단순하고 차분한, 은은하고 따스한 분위기의 짧은 브라질 음악.
이를 테면 1965년 폴 윈터와 카를로스 리라가 함께 했던 앨범 <The Sound Of Ipanema>같은 음악 말이다. 아마도 당시 큰 인기를 얻고 있었던 스탄 겟츠와 조앙 질베르토의 <Getz/Gilberto> 때문에 만들어진 앨범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Getz/Gilberto>가 온화한 실내를 그리는 듯하다면 이 앨범은 그 실내에서 바라보는 겨울 풍경을 그리는 듯하다. 조용히 눈이 나리는 풍경. 오늘의 미술관 앞마당 같은 풍경.
이러한 차이는 습기를 머금은 듯 울렁이는 피아노, 무심한 듯 반복되는 리듬, 온화한 색소폰, 그리고 따스한 보컬이 어우러진 사운드의 채도와 명도 때문이다. 글쎄. 브라질 사람들은 이 앨범을 들으며 어떤 상상을 하는지 모르겠다. 극과 극은 통하지 않던가? 보사노바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스하게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어쨌건 분명 이 앨범에서 나는 겨울을 느낀다. 눈으로 뒤덮인 따스한 풍경을. 음악과 함께 그 고요한 풍경 속으로 나는 한 발씩 앞으로 나아간다. 265mm의 발자국이 생길 때마다 뽀드득 소리가 들린다. 고독하지만 외롭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