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 지난 시간에는 코러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곡들을 들으며 코러스를 찾아보라고 했었죠? 그렇게 하셨나요?
문: 예. 그렇게 해봤습니다. 테마를 파악하기 쉬운 몇 곡을 골라서 그 테마를 머리 속에 그리니까 대충 코러스가 들어 오더라고요. 정말 코러스를 단위로 솔로 연주가 바뀌거나 확장되는 것이 들렸을 때 짜릿했습니다. 감추어진 비밀을 알아낸 듯한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그래서인지 코러스를 알고 복잡하게 들렸던 재즈가 정돈된 것으로 보이니 살짝 허무하기도 했습니다. 뭔가 대단히 극적인 이야기가 사실은 매우 평범한 것으로 바뀐 것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요.
답: 예 충분히 그럴 수 있죠. 원래 어딘가를 갈 때 처음에는 길이 매우 복잡하고 길게 느껴지다가도 두 번째 갈 때는 매우 단순하게 느껴지잖아요? 나중엔 그 새롭게 보이던 풍경도 지루한 배경 정도로 보이게 되고요.
문: 예. 맞아요. 그래도 아직까지는 곡의 구조를 파악하는 것 자체가 큰 재미있지만 나중에는 조금 싫증날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재즈가 싫어지는 것은 아니겠죠? (웃음)
답: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말이죠. 그런 싫증이 재즈를 보다 깊게 파고들게 할 수도 있습니다. 싫증이 나면 다른 새로운 것을 찾게 되잖아요? 그럴 때 재즈를 듣지 않게 되면 어쩔까 걱정하신 듯 한데 그런 걱정이 필요 없을 정도로 그 이상의 복잡도를 지닌 재즈가 있기 때문에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문: 더 복잡한 재즈가 있다 구요?
답: 예. 코러스 중심으로 솔로 연주를 펼치는 것은 다르지 않지만 그 구조를 더욱 복잡하게 가져가서 극적인 부분을 더 살린 재즈가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복잡할수록 완성도가 높은 재즈라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 복잡도를 낮추고 그렇게 생긴 여백과 침묵으로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는 재즈도 있습니다.
문: 그렇군요. 아직 갈 질이 머네요?
답: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재즈의 역사를 복잡도를 기준으로 해서 바라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스윙 시대의 비교적 단순하고 간결한 양식에 싫증이 난 연주자들이 비밥을 만들고 여기서 더 나아가려 한 연주자들이 아예 화성을 파괴하면서 프리 재즈를 만들었다는 식으로 말이죠. 그리고 무엇보다 박자를 복잡하게 가져가고 코드 진행을 보다 정교하게 가져가서 테마를 파악하고 이를 기반으로 코러스를 파악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재즈 곡이 매우 많습니다. 아마도 이런 곡들을 먼저 들어보는 것이 좋겠네요.
문: 그렇군요. 그러면 재즈의 역사는 갈수록 복잡한 방향으로 흐른 것인가요?
답: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너무 복잡하면 단순화하려는 시도가 뒤따르기도 했습니다. 비밥 이후에 등장한 쿨 재즈가 그런 경우라 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다시 단순화 했다고 해서 비밥 이전의 스윙 재즈로 돌아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스윙 재즈의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그 보다는 더 세련된 복잡성을 지녔죠. 그러고 보면 이 복잡도라는 것도 매우 상대적인 개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스윙 재즈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다른 대중 음악에 비해 긴장이 가득하고 즉흥 연주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였을 겁니다. 그것이 자꾸 듣고 연주하니까 익숙해지고 나아가 진부하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더 복잡한 비밥이 나오게 된 것이죠. 그런데 이 또한 시간이 흐르면서 아주 익숙한 것으로 바뀌게 되죠. 여기에 상대적인 차원에서 덜 복잡한 재즈가 나오기도 하구요. 그래서 재즈의 역사는 복잡함과 단순함, 뜨거움과 차가움이 교차하면서 그 긴장 속에 발전을 거듭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문: 재미있는데요? 재즈의 역사 또한 어떤 구조적인 면이 보이니 말이죠.
답: 그렇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구분이 늘 명확한 것은 아닙니다. 상대적인 면이 강했기 때문에 보기에 따라 복잡한 쪽과 단순한 쪽 사이를 모호하게 오간 재즈도 많습니다. 연주자 또한 물론입니다. 상황에 따라 양쪽을 오가는 연주를 펼치곤 했습니다. 특히 비밥과 쿨 재즈가 그랬죠. 색소폰 연주자 아트 페퍼, 트럼펫 연주자 마일스 데이비스 같은 유명 연주자들이 비밥과 쿨 재즈 사이를 오가거나 아니면 아예 그 중간에서 뭐라 정의하기 어려운 연주를 펼치곤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쿨 밥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문: 그러니까 한 시기가 끝나고 다음 시기가 오는 그런 역사가 아니라는 거죠? 재즈의 역사가.
답: 예. 그렇습니다. 단순한 기술의 발전이 아니니까요.
문: 그런데 재즈의 역사를 설명하는 글을 보면 재즈가 10년 단위로 변화를 거듭했다고 하던데 왜 그런 거죠?
답: 그것은 재즈사를 이해하기 쉽게 단순화한 결과입니다. 약 10년 단위로 새로운 재즈가 등장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새로운 스타일의 재즈가 등장하면 그 이전 스타일의 재즈가 사라지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재즈의 중심에서 살짝 빌려나기는 했지만 그래도 꾸준히 연주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비밥의 시대에도 스윙 재즈는 연주되었고 쿨 재즈의 시대에는 비밥과 스윙 재즈가 연주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즈사를 각 스타일별로 시작과 끝이 명확한 단절의 역사로 보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사실 어떤 음악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은 취향의 문제잖아요? 그래서 제가 첫 시간에 나에게 맞는, 내 마음에 드는 재즈를 찾으라 했던 것이고요. 아무튼 취향은 시대와 다른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스윙 재즈를 좋아하는데 비밥이 등장했다고 그것을 억지로 들을 수는 없다는 거죠. 연주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일스 데이비스처럼 그 자리에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새로운 재즈를 찾아 나간 연주자가 있다면 평생을 스윙이나 비밥을 연주하며 보낸 연주자도 있습니다. 그리고 폭 넓은 소화력으로 필요에 따라 스타일을 가로지르는 연주를 펼치는 연주자도 있습니다.
문: 그럼 재즈사는 단순하다기보다 복잡한 것이군요. 하나의 방향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방사형으로 발전했다는 거잖아요?
답: 그렇죠. 당장 현재 발매되는 새 앨범들의 면모를 살펴보세요. 스윙 재즈부터 비밥, 쿨 재즈, 프리 재즈 등을 따르는 앨범들이 여전히 발매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재즈사에서 새로이 등장하는 재즈는 있어도 사라지는 재즈는 없다고 할 수 있겠네요. 스윙 재즈부터 프리 재즈 등에 이르는 여러 재즈들 모두 계속 시대와 호흡하며 각각의 역사를 만들어간다고 할까요?
한편 재즈사가 방사형의 모습을 지니게 된 것은 매우 짧은 시간에 이런저런 변화를 거듭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재즈의 역사는 약 백 년이 조금 넘을 듯한데요. 우리의 삶으로 보면 매우 긴 시간이라 할 수 있지만 클래식이나 기타 민속 음악 등에 비하면 매우 짧은 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시간 동안 클래식의 경우 수백 년에 걸쳐 이루어질 스타일의 변화를 거듭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스타일이 공존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어쩌면 아주 먼 훗날에는 지금 우리가 구분하고 있는 여러 스타일의 재즈를 하나로 묶어서 생각하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문: 어휴. 그냥 즉흥 연주만 알아들을 수 있으면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닌가 봐요.
답: 그렇다고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사실 다양한 스타일의 재즈가 있지만 복잡하건 단순하건 기본적으로는 또 통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특히 즉흥 연주를 낯설지 않게 들을 수 있다면 대부분의 재즈를 소화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즉흥 연주 부분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작은 시작이지만 매우 중요한 시작이라 하겠습니다. 다만 이제 필요한 것은 계속 새로운 재즈를 듣고 싶어하는 마음인 것이죠.
문: 그것은 충분한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는 재즈를 듣는 것이 재미있거든요.
답: 다행이네요. 아까 한 스타일이 익숙하고 평범하게 느껴질 때 새로운 재즈가 등장했다고 말씀 드렸는데요. 조급해하지 않고 계속 재즈를 듣고 또 들으면 재즈 전체를 이해하게 될 겁니다.
문: 그런데요. 즉흥 연주를 듣다가 왜 재즈에서 즉흥 연주가 그리 중요할까? 왜 재즈 연주자들은 즉흥 연주를 하려고 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너무 근본적인 질문인가요?
답: 즉흥 연주를 이해하기 어려우니까 그런 질문이 생기는군요. (웃음) ‘재즈는 자유를 상징한다.’ 뭐 이런 말을 들어보신 적 있을 겁니다. 즉흥 연주가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재즈에만 즉흥 연주를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클래식에서도 즉흥 연주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실력이 뛰어난 연주자들은 콘서트 현장에서 즉흥 연주를 펼치곤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런 전통이 사라지고 악보 중심의 연주만 남게 된 것이죠. 세계 곳곳의 민속 음악에서도 즉흥 연주는 발견됩니다. 우리 국악에서도 즉흥 연주가 있죠. ‘산조’와 ‘시나위’가 그렇잖아요?
이렇게 즉흥 연주는 재즈만의 특징은 아닙니다. 다만 다른 음악에 비해서 즉흥 연주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즉흥 연주하면 재즈가 떠오르지 않나 생각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재즈의 즉흥 연주가 클래식이나 민속 음악 특히 미국에 노예로 건너온 아프리카 흑인의 민속 음악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재즈가 아프리카 흑인 음악과 클래식으로 대표되는 유럽 음악 사이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해도 말이죠.
그보다는 뉴 올리언즈에서 재즈를 탄생시킨 연주자들이 애초에 악보를 중심으로 연주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레 즉흥 연주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초기 연주자들은 악보를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구전의 형태로 연주를 배우고 음악을 배웠던 것이죠. 그러다 보니 멜로디를 중심으로 모든 연주자들이 즉흥적으로 알아서 연주를 하곤 했습니다. 집단 즉흥연주였던 것이죠.
그러므로 재즈는 시작 자체부터 즉흥 연주로 시작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 악보대로 연주하지 않다 보니 연주자의 자유도가 매우 높게 된 것이고요. 그것이 전통이 되면서 즉흥 연주가 재즈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게 되고 나아가 즉흥 연주가 없으면 재즈가 아니다, 재즈는 자유의 음악이다 뭐 이런 말들과 생각이 있게 된 것이죠.
문: 말하자면 재즈에 즉흥 연주가 중요하게 된 것은 운명적인 것이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답: 그렇게 되나요? 하지만 재즈가 다양하게 분화하면서 요즈음은 즉흥 연주가 없는 재즈도 있습니다.
문: 어떻게 즉흥 연주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음악이 정반대의 성향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죠?
답: 즉흥 연주 또한 작곡으로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작곡할 때는 어쨌건 머리 속에 불현듯 떠오르는 악상에서부터 시작하잖아요? 그래서 즉흥 연주도 테마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긴 하지만 작곡 활동으로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알고 있는 작곡은 수정이 가능하지만 즉흥 연주에서의 작곡은 연주하는 바로 그 순간 만들어진다는 것이 다를 뿐이죠. 경우에 따라서는 즉흥 연주가 너무 괜찮아서 이를 악보로 옮기기도 합니다. 색소폰 연주자 제임스 무디의 ‘Moody’s Mood For Love’를 예로 들 수 있겠네요. 이 곡은 원래 지미 맥휴가 작곡한 ‘I’m In The Mood For Love’를 바탕으로 한 곡입니다. 제임스 무디는 1949년 이 곡을 테마를 연주하지 않고 곧바로 즉흥 연주를 펼치는 방식으로 연주했습니다. 그런데 그 즉흥적으로 만들어 낸 멜로디가 좋아서 아예 새로운 곡으로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러면서 지미 맥휴와 제임스 무디 사이에 소송이 있기는 했습니다. 그래도 잘 마무리 되어 지금은 별개의 곡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문: 그런 일도 있군요. 그래도 즉흥 연주가 없는 재즈는 좀 이상하지 않을까요? 괜히 즉흥 연주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단 생각도 듭니다. 그냥 즉흥 연주가 없는 음악을 들었으면 어렵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을 것 아니에요?
답: 얼핏 생각하면 그렇게 보일 수 있는데요. 즉흥 연주가 없는 재즈라고 해서 그냥 일반 연주 음악처럼 부드럽고 가벼운 연주 곡을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른 요소로 재즈의 느낌을 내니 말이죠. 경우에 따라서는 즉흥 연주가 있는 곡보다 더 어렵게 느껴지는 곡도 있습니다.
문: 한번 들어보고 싶은데요?
답: 예. 이것저것 많이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이제부터는 많이 듣는 것이 필요할 것 같네요. 그럼 오늘은 여기서 마칠까요? 감사합니다.
굉장히 익숙한 곡을 즉흥연주할 때 흥미롭더라고요.
‘오 이건 뭐지?’하면서 호기심을 가지고 집중하게 됩니다..
물론, 그 연주가 제 기준으로 좋아야 한다는 조건하에서이긴 하지만요..^^
알고 있는 것이라야 바뀌는 것도 알 수 있으니 그렇겠죠? 그렇지 않은 자작곡으로 감동을 주려면 그만큼 그 자체로 완벽해야 가능할 것입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