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 앤드루 포터 (김이선 역, 21세기 북스 2011)

ap한동안 소홀히 했던 책 읽기에 조금 더 신경 써보려 한다. 떨어진 집중력을 핑계로 읽지 않는 것보다 억지로 읽으며 잡다한 부분을 정리하고 지우는 것이 더 좋겠다는 판단이 들어서였다.

이 책은 제목을 보면 무슨 과학 책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나 또한 현대 물리학 책이 떠올랐다. 하지만 과학책은 아니다. 단편 소설집이다. 과학이 주제로 등장하지도 않는다.

소설은 10개의 단편을 담고 있다. 그 이야기들은 그 자체로는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 독자가 만나보지 않은 사건도 있을 수 있지만 그와 상관 없이 매우 평이하다. 소설적인 맛이 없다. 정확하게는 사건이 있는데 이것을 작가가 극적으로 다루지 않았다는 것이다. 작가는 매우 담담하게 간결한 문체로 사건을 서술해 나간다. 그래서 1인칭 시점이라고 해도, 그 1인칭 화자가 매우 감정적으로 흥분되는 상황이 와도 그는 매우 차분하게 그 사건의 중심을 지나친다.

이러한 담담함은 사건의 대부분이 이미 지나간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의 흥분은 모두 탈색되어버렸다. 그렇기에 차분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지난 이야기들은 주로 상실, 이별, 죽음 등 아픔과 관련된 것이다.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을 법한 사건들을 화자는 다시 생각한다. 그렇게 다시 생각해 하며 왜 그때 나는, 그는 그랬을까? 의문을 갖기도 하고 후회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그 사건이 현재까지 하나의 그림자로 영향을 주고 있음을 독자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든다.

사실 살면서 제일 답답하고 안타까운 부분은 제대로 끈내지 못하고 지나친 일들이 아닐까 싶다. 그냥 누구의 잘못 때문임이 확실히 판가름 났다면 과거에 묻을 수 있는데 그냥 모호하게 끝난 것이다.  예를 들면 내 어디가 싫다고 말하지 않고 희미한 미소와 함께 떠난 옛사랑 같은 것 말이다. 이 경우 우리는 시간이 지나도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하고 또 하고 확실하지 않은 유추 속에 이런저런 결말을 내고 다시 이를 부정하기를 반복하지 않던가?

이 소설 속 화자와 사건들이 그렇다. <구멍>에서 화자는 친구가 어두운 구멍에 떨어져 죽은 것에 대한 무거움을 표현하면서도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강가의 개>에서는 형의 비행에 대한 사실 여부를 명확히 드러내지 않는다. 표제작에서 주인공은 교수와 연인 사이에서 사랑의 다른 두 면 사이를 오간다.

이렇기에 10편의 단편을 읽는 것은 다른 소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요구했다. 쉽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도대체 왜?라는 질문 앞에서 다시 생각하기를 반복해야 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책 제목에 대해 생각했다. 왜 하필 멜로 영화같은 이야기에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이라는 건조한 제목을 빝였을까? 빛은 파동인 동시에 입자이다. 이것은 고전역학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개념이었다. 그래서 과학자들간에 논쟁이 있었다. 놀라운 것은 이것이 물질에 까지 적용된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현대 물리학의 발전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아무튼 빛이 입자인 동시에 파동인 것처럼 작가는 삶이 어느 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없음을, 어느 한 시선으로만 바라볼 수 없음을 생각해 그런 제목을 사용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지난 일을 떠올리며 단지 추억하는 것을 너머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부수곤 한다. 표제작 뿐만 아니라 다른 9편의 소설들도 그렇다.

독자까지 여러 갈래로 생각하게 만들기에 읽기엔 답답하고 지루함이 있기는 하지만 그만큼 소설의 여운은 깊다. 도대체 뭘까 하는 느낌도 있다. 아마 그래서 또 읽고 싶어질 것 같다.

 

 

5 COMMENTS

  1. 인생의 극적인 사건을 ‘극적으로 다루지 않고 매우 담담하고 간결한 문체’로 표현했다는 점이 매우 끌리네요..

    그런데..
    인간의 삶이 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고, 하나의 관점으로 설명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되는 동시에 하나의 일관성을 요구하는 나 자신..그러니까 살면서 내 인생의 파편들의 의미를 파악하려고 애쓰고 정체성을 확인하려고 하는..그런 자신을 발견할 때 혼란과 함께 무기력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40대인 지금도 여전히, 주기는 길어졌지만 걷잡을 수 없이.. 그럴 때가 있지요.

    왠지 이 책이 위로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 제가 다른 음악 글에서 썼던 내용 중에 가지 않은 길이 최선의 길어었음을 알고 후회할 수는 있겠지만 지금 가는 이 길이 그렇다고 최악은 아님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재즈라고 한 것이 있습니다. 몇 해전 오늘 썼더라구요. ㅎ 그런데 이 말이 말씀 하신 느낌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ㅎ

    • 음… 댓글 내용을 계속 곱씹어 보았습니다.

      최악을 아님을 인정하게 되는 그 순간은 어찌보면 인생의 우연성이 가정되었을 경우에 가능한 것 같습니다. 서로 맞물린다는 생각이 드네요.

      ‘몇 해전 오늘 쓴 글’이 생각나신 것 역시 인생에서 작은 하나의 우연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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