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 – 다니엘 켈만 (임정희 역, 민음사 2011)

dk프랑스 사실주의 소설가 오노레 드 발작은 소설에 세상을 담고 싶었다. 아니 여러 사람들이 각각의 사연으로 살아가는 세상을 창조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그는 <인간희극>이라는 타이틀 아래 여러 소설들이 각각의 독자성을 지니는 한편 등장인물들이 교차해 연결성을 지니게 했다. 그래서 독자가 소설 속 사건들이 같은 공간, 같은 세계에서 발생했다고 믿게 했다.

이러한 창작법은 이후 여러 소설가들에 의해 차용되곤 했다. 독일 출신의 소설가 다니엘 켈만의 <명예>도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처음에 나는 이 책이 9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소설집인 줄 알았다. 실제 각각의 소설들은 그 자체로 완결성을 지니고 있으며 의미라 할만한 여운을 남긴다. 유명 배우가 쓰던 전화 번호를 사용하게 되어 매일 모르는 사람의 전화를 받다가 이내 그 전주인 행세를 하는 남자를 이야기하는 남자의 이야기 “목소리”, 유명 배우의 삶에서 허무함을 느껴 그 삶을 찰출해 자신과 비슷한 대역배우의 삶을 살게 되는 “탈출구”, 인터넷 댓글 놀이에 빠져 현실성을 잃어가는 남자를 그린 “토론에 글 올리기”, 다른 사람 대신 영어가 통하지 않는 동양의 한 시골도시로 여행을 왔다가 여권과 돈을 모두 잃어버리고 실종자가 되는 여성을 그린 “동양” 등 모든 단편들은 작가의 간결하고 경쾌한 문체 속에서 복잡한 현대적 삶의 폐해, 정체성의 문제 등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여기까지만 해도 나는 썩 괜찮은 소설집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명예>는 소설집이 아니라 소설이었다. 하나의 주인공이 있지 않은, 여러 주인공들이 있고 그들의 삶이 모여 현대 사회의 개인으로 집약되는 장편 소설. 이것은 주제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 각 단편들의 등장인물들이 서로 얽히고 설켜 등장하는 것을 통해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목소리”의 주인공이 받은 전화번호의 주인은 “탈출구”의 주인공 랄프 탄너의 것이었다. 그래서 “탈출구”에서 랄프 탄너는 자신 앞으로 전화가 오지 않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위험 속으로”에서 유명 소설가가 되어 세계 곳곳에 강연을 하러 다니지만 이런저런 불안과 냉소적 자세로 나오는 레오 리히터는 “동양”의 여주인공이 대신 동양 여행을 떠날 때 원래 가야 했을 작가로 등장한다. 그리고 “토론에 글 올리기”에서는 주인공이 통신사 회의차 출장을 떠난 곳의 호텔에서 우연히 만나는 작가로 나오는데 이 장면 또한 “위험 속으로”에서 레오 리히터의 관점으로 서술된 것의 반복이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거짓말을 하며 죽어갔는지”에서는 주인공의 부하직원으로 “토론에 글 올리기”의 주인공 몰비츠가 등장한다. 그리고 두 작품은 통신사 회의 사건을 공유한다.

이러한 등장인물들의 얽힘은 단지 각 단편 별로 주인공과 보조인물의 교차 정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서로 사건을 공유함으로써 각각의 단편의 서사가 지닌 현실성, 깊이를 강화한다. 그래서 독자는 절로 모든 것이 희미하게나마 연결된 세상을 그리게 된다. 나 같은 경우 페이스북을 생각했다. 서로 친구로 연결되어 있지만 실은 만난 적이 없는 느슨한 관계의 망!

한편 등장인물들을 교차시켜 하나의 세계로 만들면서도 그 세계에서 다시 현실성을 무너뜨리는 글쓰기를 보여준다. 실제 세계에서 일어날 수 없는 전개를 보이는 것이다. “로잘리에가 죽으로 가다”에서 시한부 삶을 스스로 마감하기 위해 길을 나선 로잘리에가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 소설가에제 직접 자신을 살려 달라고 요청하고 이에 소설가가 고민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나아가 두 번째 “위험 속으로”에서는 레오 리히터의 소설 속으로 앞선 여러 등장 인물들이 모인다.

이러한 현실과 환상의 교차는 작가의 단순한 장난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글쓰기의 싦험도 아닌 것 같다. 이를 통해 정체성이 무너지고 복잡한 삶 속에서 의미를 잃어가는 주인공들의 삶이 더 실감나게 느껴지니 말이다.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까지가 가상인지 모르는 상황에 놓이고 작가가 직접 등장함으로써 등장 인물들은 흐물거리다가 이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사라진다. 만나지 못한 기억 속 인물이 된다. (그러면서 소설 전체를 집약하는 현대인 하나가 생성된다.)

소설을 읽으며 나는 작가의 치밀하면서도 필요한 순간 경계를 넘어서는 글쓰기가 재즈 연주자 같다고 생각했다. 확실히 그의 글쓰기는 자유로이 출발점을 벗어나 극한을 향해 상승하는 즉흥 연주 같다. 그래서인지 물고 물리는 단편들의 이어짐이 마치 하나의 앨범의 수록 곡들처럼 보였다. 특히 같은 제목으로 같은 주인공을 내세워 등장하는 “위험 속으로”는 같은 곡의 변주가 되고 나아가 수록 곡 전체가 유기적으로 연결됨을 알리는 역할을 하는 앨범. 그래서 읽는 내내 즐거웠고 짜릿했다. 이런 글쓰기를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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