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하루키와 음악 – 백영옥, 황덕호, 정일서, 류태형 (그책 2015)

va나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잘 모른다. 1990년대 초반 대학 시절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을 읽은 후 하루키 열풍이 불면서 더 이상 읽지 않았다. 당시로서는 뭐랄까? 감각적인 것을 따르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의도적으로 피했다. 그렇다고 그의 글들이 별로였다는 것은 아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데 하루키를 읽게 된 것은 한 한국 문학 평론서에서 당시 소설 몇 편이 하루키의 영향이 드러난다는 것을 보고나서였다. 그래서 궁금한 마음에 하루키를 읽게 되었는데 담담한 분위기와 간결한 문체 등에 상당히 끌렸다. 그래서 그와 유사한 글쓰기를 해보기도 했다. (어쩌면 간접적으로나마 영향을 내게도 주었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시 나는 프랑스 문학도로서 프랑스 소설을 더 많이 좋아했다. 특히 파트릭 모디아노에 빠져 있었다.

그의 재즈 에세이 몇 권도 읽었다. 나와 생각이 다른 면도 있었지만 그래도 음악을 자신을 중심에 두고 생각하고 글을 쓰는 것에 대해서는 꽤 부러웠고 본받을만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재즈 관련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일종의 의무감에 의해 읽었던 것이기에 다른 소설들에 대한 관심, 하루키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따라서 이 책 또한 내가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어디선가 선물로 받은 것으로 다시 규칙적인 독서를 해보기로 하면서 사무실 책장에 두었던 것을 꺼내 읽게 되었다.

책의 내용은 하루키와 그의 음악 취향을 주제로 네 명의 작가, 평론가들이 자유로이 쓴 글을 담고 있다. 그 가운데 백영옥은 하루키의 소설을 바탕으로 그녀의 삶과 글쓰기를 추억한다. 하루키가 한 개인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가를 보여준다. 황덕호는 하루키의 재즈 에세이를 바탕으로 그 글에 대한 느낌 그리고 답변의 의미로서 자신의 추천 앨범들을 소개한다. 한편 정일서는 하루키의 소설에 나타난 팝 음악을 세세히 정리하고 그 안에서 하루키의 팝적인 취향을 조망한다. 끝으로 류태형은 작품마다 등장하는 클래식 음악을 정리하고 자기 식대로 그 곡들에 대한 설명을 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하루키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하루키를 잘 아는 사람들을 위한 것에 가깝다. 네 명의 작가는 각각 하루키에 대한 자신의 시선을 드러내고 그에 대한 공감을 (하루키를 잘 알고 있을) 독자에게 묻는다. 또한 재즈, 팝, 클래식 모두 혹은 그 가운데 하나라도 잘 아는 사람들에게 하루키의 작품들이 음악으로 인해 매력적임을 확인하게 한다. 그러므로 하루키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 많은 음악의 나열이, 하루키에 대한 감상문 성격의 글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의아해 할 지도 모른다. 특히 팝과 클래식을 주제로 한 글들은 작품에 언급된 해당 장르 음악을 확인하는 정도 이상의 무엇을 주지는 못했다. 하루키의 취향을 알 수는 있었지만 그것이 작품에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조금은 더 자세히 소개해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네 작가의 글 가운데 나는 황덕호의 글이 좋았다. 개인적으로 선배 혹은 형 하면서 따르는 인물이기 때문은 아니다. 하루키에서 출발해 보다 깊은 음악 감상의 방향 제시를 담고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나는 아직 멀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루키가 음악을 듣는 방식을 따르면서도 그의 취향이 아닌 결국엔 황덕호의 취향을 드러내는 글쓰기! 그냥 “하루키에게 추천하는 앨범”이라는 제목으로 단행본을 내도 좋았을 것 같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