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들으며 상상하기를 나는 좋아한다. 그렇다고 상상을 위해 음악을 듣는 것은 아니다. 음악이 이끄는 다른 시공간 속으로 떠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 같다.
영화를 찍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음악을 만날 때가 있다. 그 음악은 하나의 서사를 생각하는 것을 넘어 그 안의 장면 하나하나를 보게 만든다. 음악 안에서 어떤 상(像)들이 이어지는데 그것을 포착하고 싶게 한다. 영화를 찍고 싶다고 했지만 어쩌면 음악에서 발현된 시공간을 직접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다른 어느 때보다 강해진다는 것이 더 우선인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안되니 직접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것으로 이어진 것은 아닐지.
눈이 내리는 날 듣게 된 노르웨이의 여성 색소폰 연주자 메트 헨리에트의 이번 ECM에서의 첫 앨범이 그랬다. 색소폰-피아노-첼로로 구성된 트리오 연주를 담은 CD, 시카다 스트링 쿼텟의 모든 멤버가 가세한 클래시컬한 편성의 빅밴드 연주를 담은 CD 이렇게 두 장으로 이루어진 앨범인데 듣는 내내 나는 이 앨범이 배경에 흐르는 영화를 생각했다. 저절로…
그렇다고 구체적인 이야기가 떠올랐던 것은 아니다. 그리 큰 변화를 보이지 않는 유럽의 겨울, 밤은 제거된 낮 장면만 등장하는, 그래서 오전 10시부터 4시 무렵 사이에서만 이야기가 진행되어 크게는 다소 지루해 보일 수 있지만 하루 단위로는 매우 빨리 진행되는 듯한 느낌의 영화였다. 또한 서울의 한 구(區) 정도되는 크기의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등장 인물들의 동선 또한 매우 한정되어 있어 관객에게 다소 답답함을 줄 수 있는 영화이기도 했다.
이런 이야기를 생각하게 된 것은 아무래도 앨범에 담긴 곡들이 대부분 짧은 길이로 이루어졌고 그것이 다음 곡과 자연스레 어울리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게다가 “.OOO.””?”,”I” 등 문장의 한 조각 같은 제목의 곡들이 많은 것도 영향을 주었던 것 같다.
아무튼 되도 않는 상상일 수도 있다. 막상 내게 재능이 있어 영화를 만든다면 아무 것도 아닌, 괜한 여백만 부각된 영화, 아니 장면의 묶음일 수도 있다. 이런 생각이 들자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그때 나는 이런 상상의 가장 근본적인 동인은 다름 아닌 내 일상이었음을 깨달았다. 집과 사무실, 약간의 거래 업체를 오가는 내 하루의 길이야 말로 작은 도시의 일상과 다를 바가 없지 않던가? 단조로운 만큼 그리 큰 기쁨도 없다. 하루를 근근이 버티고 집에 와서 안도의 한 숨을 내 쉴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위안일 뿐이다.
그렇다면 메트 헨리에트의 이 추상적인 음악은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떠나게 만드는 것이 아닌 지극히 현실적인 것이 된다. 현실적이어서 아름다운 음악이 된다.
발매되지 얼마 되지 않아 유튜브에 음악이 올려져 있지 않다. 소개 영상이 있을 뿐이다. 다행히 그녀의 홈페이지에 한 곡이 올려져 있었다 제목은 “Passé”! “지나간” 혹은 “과거”라는 뜻이다. 나는 트리오 연주가 좋은데 이 곡은 클래시컬 빅밴드 연주다.
한 서린..민요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저만의 느낌…이겠지요?^^;
Wavenir와 Yuri Honing에 이어 계속 리플레이해서 들을 것 같습니다.
북유럽의 정서가 안에 담겨 있으니 그렇겠지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