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하고 정겨운 크리스마스를 위한 노래
크리스마스 하면 당신은 무엇이 떠 오르는가? 각자 순서의 차이는 있겠지만 흰 눈으로 덮인 세상, 알록달록 꾸며진 크리스마스 트리, 산타클로스의 선물, 연인 혹은 가족과 함께 하는 따스한 시간 등을 떠올릴 것이다. 아! 그리고 이 모든 풍경에는 크리스마스 캐롤이 흐르고 있어야 한다.
크리스마스 캐롤은 일종의 기능성 음악이다. 사람들이 집중해서 듣건 듣지 않건 배경에 흐르며 크리스마스의 정겨운 분위기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일까? 크리스마스 캐롤에도 전형이 있다. “White Christmas”, “Jingle Bell”등 정해진 레퍼토리가 있고 그 사운드는 성당의 종소리를 연상시키는 벨 소리가 어우러져야 한다. 그리고 한 없이 낭만적이고 달콤해야 한다. 기왕이면 재즈적인 맛이 가미된다면 더 좋다. 실제 상당 수의 인기 크리스마스 앨범들은 성분비율은 각기 다르지만 이 요소들을 적절히 반영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연주자나 보컬의 개성을 드러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잘 알려진 크리스마스 캐롤을 익숙한 분위기의 편곡에 맞추어 유명 보컬과 연주자가 노래하거나 연주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노르웨이 출신의 여성 보컬 실예 네가드의 캐롤은 다르다. 실예 네가드는 평소 재즈와 북유럽의 포크를 가로지르는 음악을 선보여왔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은밀한 시정(詩情)을 표현해 왔다. 그것은 나를 잃을 정도로 바쁜 현대인의 삶을 위로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이번 캐롤 앨범에서도 마찬가지다. 캐롤의 느낌을 잃지 않으면서도 다른 앨범들과는 다른 개인적이고 소박한 분위기의 크리스마스 풍경으로 감상자를 이끈다.
이것은 먼저 그녀가 노래한 곡들의 면모를 통해 알 수 있다. 앨범에서 그녀는 캐롤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곡들을 노래하지 않았다. “Christmas Time Is Here”, “Have Yourself Merry Little Christmas” 정도를 제외하고는 폴 매카트니가 작곡한 “Wonderful Christmas Time”, 피아노 연주자 빈스 과랄디가 챨리 브라운의 애니메이션을 위해 만들어 유명해진 “Christmas Time Is Here”, 조니 미첼의 “River”처럼 비교적 최근에 크리스마스 캐롤에 편입된 곡, 그리고 동료 마이크 맥구르크와 함께 만든 실예 네가드의 자작곡 3곡, 그리고“Det Var Ein Gong”등 노르웨이어 가사로 된 곡들로 앨범을 채웠다. 그렇기에 앨범은 캐롤을 식상해 하는 감상자들마저도 신선함을 느끼게 한다.
잘 알려진 곡들이 상대적으로 적기에 크리스마스의 느낌이 나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하는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막상 앨범을 들으면 전혀 그런 느낌은 받을 수 없다. 앨범의 시작을 알리는 타이틀 곡 “If I Could Wrap Up A Kiss”가 대표적이다. 이 곡은 실예 네가드가 작곡한 곡이다. 겨울 바람 같은 스트링 오케스트라와 담백한 리듬이 어우러진 사운드 그리고 실예 네가드와 독일 출신의 남성 보컬 로저 시세로-그의 아버지는 루마니아 출신으로 유명 클래식 곡들을 재즈의 자유로움을 넣어 연주해 인기를 얻었던 유진 시세로이다-가 함께 만든 사랑스러운 분위기는 마치 이 곡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은 착각을 갖게 한다.
마그누스 린드그렌의 색소폰 연주가 매력적인 “Is Christmas Only A Tree”도 마찬가지다. 이 곡은 남성 보컬 빙 크로스비의 캐롤 명반 <That Christmas Feeling>에서 노래된 적이 있지만 그리 유명하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실예 네가드는 그 낯섦과 상관 없이 이 곡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기분 좋은 크리스마스로 감상자를 이끈다. 그리고 이것은 록앤롤 리듬에 맞춰 노래한 “Wonderful Christmas Time”에서도 반복된다.
그런데 이 앨범의 매력은 정겨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에만 있지 않다. 이와 함께 실예 네가드는 크리스마스를 홀로 보내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었는지 쓸쓸한 분위기의 노래도 들려준다. 또 다른 실예 네가드의 자작곡인 “The Very First Christmas Without You”가 그렇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이 곡은 사랑하는 사랑과 함께 보내지 못하는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하고 있다. 이어지는 “River”도 그렇다. 이 곡은 특히 실예 네가드의 노래도 좋지만 공간을 부드럽게 스며드는 아르베 헨릭센의 건조한 트럼펫 연주가 매우 인상적이다. 우울을 위로하는 힘이 있다.
사랑하는 연인 혹은 가족과 따스한 시간을 보내면서도 외로운 이웃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실예 네가드의 노래는 나아가 소박하고 경건한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이어진다. 기타 솔로 반주로만 노래한 “Christmas Time Is Here”이 그렇다. 이 곡을 작곡한 빈스 과랄디도 차분하게 연주하긴 했지만 실예 네가드는 이를 더 살려 조용하고 소박한 크리스마스를 생각하게 한다. 재즈의 낭만적 성격을 살린 “Have Yourself A Merry Little Christmas”, 헬게 리엔의 피아노 솔로가 맛깔스럽게 등장하는 “A Christmas Wish”등도 낭만적이고 사랑스럽지만 요란하지 않은 크리스마스를 연출한다.
노르웨이의 싱어송라이터 시그바르 닥슬란과 듀오로 노래한“Det Var Ein Gong”을 비롯한,“Vintersang”, “Sonjas Sang Til Julestjernen”, “Det Hev Ei Rose Sprunge” 등 노르웨이어로 노래한 곡들은 그 소박함이 더하다. 노르웨이어로 된 만큼 그녀는 이들 곡들을 북유럽 포크의 질감을 살려 노래했는데 그래서 자연친화적인 느낌마저 든다. 동화 속 크리스마스를 연상시킨다고 할까?.
한편 이 앨범은 2010년에 발매되었다. 그래서 앨범 타이틀 곡을 비롯한 몇 곡은 인기를 얻기도 했다. 이렇게 5년이 지나 재발매가 되는 것도 그 인기가 한 몫 했다. 재발매 하면서 실예 네가드는 기존 12곡 외에 3곡을 추가했다. 앨범 후반부에 배치된 포크적인 소박함이 돋보이는 “En Liten Klem”, 외로운 사람을 어루만지고 위로하는 듯한 “The Secret Of Christmas”, 그리고 노르웨이는 물론 유럽의 재즈 보컬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노장 카린 크로그와 듀오로 노래한 경건한 분위기의 “Man, Woman and Child”가 그 곡들이다. 보통 앨범에 새로이 추가되는 곡들은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보너스 성격이 강하다. 그래서 때로는 앨범에 그래서 수록되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 정도로 기존 곡들과 다른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 앨범에 추가된 3곡은 그렇지 않다. 각각 사랑스럽고, 정겨운 크리스마스, 이웃을 살피는 경건하고 소박한 크리스마스라는 앨범 전체의 분위기를 잘 살린다. 특히 “Man, Woman and Child”은 왜 처음 발매할 때 이 곡이 빠졌을까 싶을 정도로 인상적이다.
이처럼 실예 네가드의 이번 캐롤 앨범은 발매연도와 상관 없이, 크리스마스의 따스하고 정겨운분위기 속에 기존 캐롤 앨범과는 다른 신선함을 느끼게 해준다. 또한 마냥 들뜬 크리스마스가 아닌 사랑을 나누는 소박한 크리스마스를 꿈꾸게 한다. 그래서 만약 당신이 연주자나 보컬에 상관 없이캐롤은 그저 그런 진부한 음악이라 생각했다면 이 앨범은 색다른 크리스마스의 느낌, 나아가 감상의 재미마저 줄 것이다.
Merry & Happy Christm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