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고적인 질감으로 만들어 낸 오늘을 위한 음악
대중 음악은 그 말대로 음악을 듣는 대중과 호흡하는 음악이다. 대중과 소통과 긴장을 오가며 새로운 음악,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 내곤 한다. 그 새로운 음악의 역사, 유행의 역사는 그 대로 대중 음악의 역사가 된다. 한편 음악은 취향의 영역에 속한다. 그리고 사람의 취향은 매우 다양하다. 나아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현재 대중 음악이 실로 다양한 갈래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이 갑자기 등장한 음악은 없다는 것이다. 지난 시대의 유산을 바탕으로 현재 취향과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은 만들어진다. 그 음악은 다시 다른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에 자양분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렇다고 새로운 음악의 등장과 함께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취향의 영역에 속한 만큼 음악은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나 영원히지속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빈티지 트러블의 음악도 그런 경우다. 리드 보컬 타이 테일러를 중심으로 낼리 콜트(기타), 릭 배리오 딜(베이스), 리차드 다니엘슨(드럼)으로 구성된 이 4인조 그룹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복고적인 취향의 음악을 추구하고 있다. 그 복고적인 취향이란 1950,60년대의 블루스, 록, 소울이다. 스테이플 싱어즈, 아이크 앤 티나 터너, 롤링 스톤즈, 척 베리, 제임스 브라운 등의 음악이 섞여 있다고 할까? 실제 음악 전문지 롤링 스톤에서는 제임스 브라운이 리드 보컬을 하는 레드 제플린으로 이 그룹의 음악을 설명하기도 했다. 나는 이 표현에 공감한다. 당신 또한 그룹의 이번 두 번째 앨범을 듣고 나면 공감하게 될 것이다.
그룹의 역사는 2010년에 LA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10년이상 친구로 지내던 타이 테일러와 낼리 콜트는 각각 활동을 하면서도 함께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기다렸다. 그 결과 한 차례 함께 했지만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래서 활동을 그만두었다가 심기일전하여 새로운 밴드를 결성하기로 했다. 그래서 서로 친구로 지내던 릭 배리오 딜과 리차드 다니엘슨을 불러 그룹을 결성했는데 그것이 바로 빈티지 트러블이었다. 그룹은 결성부터 위에서 언급했듯이 당대가 아니라 1950,60년대 음악에 바탕을 둔 음악을 추구했다. 여기에는 타이 테일러를 비롯한 멤버들이 이 시대의 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원초적인 음악을 하겠다는 열망 때문이기도 했다.
결성 후 그룹은 LA 근처 로렐 캐니언 지역의 클럽을 중심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소울, 블루스가 어우러진 12곡을 만들어 LP시대의 질감을 살려 녹음해 첫 앨범 <The Bomb Shelter Sessions>을 완성했다. 한편 그룹의 음악에 환호하던 관객 중에는 키스, 본 조비, 모틀리 크루, 건스 앤 로지스, 스키드 로우, 후티 앤더 블로우피시 등과 함께 했던 매니저 독 맥기가 있었다. 그룹의 음악에 매료된 그는 곧바로 그룹과 계약을 하고 성공의 길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그의 선택은 특이하게도 미국이 아니라 영국이었다. 2011년 영국으로 건너간 그룹은 TV 쇼 ‘Later With Jools Holland’에 출연해 단번에 주목을 받았다. 그 결과 첫 앨범은 아마존 영국의 앨범 차트 R&B 1위, 록 2위에 오르는 등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브라이언 메이(퀸), 본 조비 등의 투어에 오프닝 밴드로 서기도 했다.
이를 바탕으로 그룹은 2012년 미국으로 다시 들어왔다. 그리고 영국에서처럼 데이빗 레터맨, 제이 레노 등의 TV 쇼에 출연하면서 지명도를 높여갔다. 역시 이 또한 좋은 결과로 이어져 후, 롤링 스톤즈, 레니 크래비츠, 팔로마 페이스, 조스 스톤, 윌리 넬슨 등의 공연의 오프닝 공연을 담당하는 등 신인 밴드로서의 성공가도를 차근차근 밟아 나갔다. 그 결과 2013년 브루스 린드발에 이어 블루 노트 레이블의 새로운 수장으로 취임한 돈 워스의 눈에 띄어 레이블과 계약을 맺고 2014년 EP <The Swing House Acoustic Sessions>을 선보인 뒤 이번에 두 번째 앨범을 발표하게 되었다.
이처럼 빈티지 레이블이 모범적인 성공을 거두게 된 것은 과거의 음악에 애착을 보이면서도 그것에 머무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즉, 단지 지난 시대의 음악이 지닌 매력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음악이 지닌 장점을 자유로이 활용해 새로운 음악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감상자들은 이들의 음악에서 익숙함과 새로움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따라서 그룹의 이름을 구성하는 ‘빈티지’란 말은 단지 낡은 것을 의미한다기 보다 오래될수록 깊은 맛을 내는 것, 그래서 시간의 흐름을 벗어나 영원히 빛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또한 익숙함을 바탕으로 만들어 낸 새로운 음악이 기존의 선입견을 배반한다는 것도 성공 요인으로 볼 수 있다. 그룹에서 타이 테일러는 흑인이다. 그의 내 지르는 창법에서는 제임스 브라운의 환영이 보인다. 한편 밴드의 사운드는 블루스, 소울 등 흑인 취향의 음악을 추구하면서도 백인적인 질감을 보인다. 그래서 그룹의 음악은 흑인 음악에 대한 기대와 백인 음악에 대한 기대 모두를 배반한다. (사실은 이 또한 1950,60년대에 이미 일어났던 일이다.) 그러면서 오래된 것과 새 것, 흑과 백이 어우러진 빈티지 트러블표 음악이 나온 것이다.
이번 두 번째 앨범에서도 그룹의 매력적인 음악은 여전히 유효하다. 지난 시대의 음악 요소들이 향수를 자극하면서도 서로 어울려 현재의 일상에 편안하게 어울린다. 이것은 앨범의 타이틀 ‘One Hopeful Road’로 시작하는 앨범의 첫 곡‘Run Like The River’에서부터 감지된다. 리드 보컬 타이 테일러를 주인공으로 해 희망 가득한 자유로운 질주를 노래하는 이 곡은 마치 오토바이의 엔진을 연상시키는 강렬한 기타와 강렬한 타이 테일러의 보컬과 멤버 전원의 가스펠적인 코러스가 어울려 과거를 머금은 새로운 현재, 아니 미래를 연출한다. 이것은 역시 긍정적인 메시지로 가득한 ‘My Heart Won’t Fall Again’에서도 반복된다.
한편 ‘For My Arms’, ‘Another Man’s Words’, 그리고 ‘Doin’ What You Were Doin’’은 특별한 꾸밈 없는 간결한 구조에 호소력 짙은 보컬이 어우러진 부드러운 발라드 곡이다. 이들 곡에서도 그룹은 록과 소울을 잘 버무려 과거가 아닌 오늘에 어울리는 편안하고 세련된 질감의 사운드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한편 어쿠스틱 기타를 배경으로 타이 테일러의 보컬이 달콤한 분위기를 연출하는‘Soul Serenity’는 포크와 소울이 어우러진 색다른 질감의 발라드를 경험하게 해준다.
그룹의 고향인 LA를 주제로 한 ‘Angel City California’에서는 록앤롤의 직선적이고 담백한 구성이 돋보인다. 이것은 ‘ Another Baby’에서도 마찬가지다. 강렬한 기타 리프를 바탕으로 록앤롤 시대를 지나 80년대 메탈 시대에 대한 향수까지 자극하면서도 소울풀한 타이 테일러의 보컬이 신선함으로 이끈다.
서로 상반될 수 있는 지난 시대의 여러 음악을 자유로이 활용하는 빈티지 트러블이지만 그래도 그룹은 블루지한 곡에서 가장 매혹적인 것 같다. ‘Show What You Know’같은 곡이 대표적이다. 낼리 콜의 기타와 리듬 그리고 타이 테일러의 보컬 모두 블루스에 충실하면서도 과거가 아닌 현재에 어울리는 세련미를 드러내는 것이 매우 맛이 좋다. 블루스와 소울이 어우러져 실연의 아픔을 담아낸 ‘If You Loved Me’, 역시 사랑의 아픔을 주제로 했으면서도 경쾌하게 표현한 ‘Before The Rain Drops’도 그룹이 블루스를 연주하고 노래할 때 가장 매력적임을 생각하게 해준다.
끝으로 앨범의 중반부에 위치한‘Strike Your Light’를 언급해야겠다. 이 곡은 ‘Run Like The River’, ‘Doin’ What You Were Doin’’과 함께 앨범에서 빈티지 트러블의 각기 다른 매력을 대표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 곡은 수 많은 공연으로 차근차근 명성을 얻어온 그룹의 진면모를 담고 있다. 제임스 브라운을 연상시키는 샤우트 창법과 블루스, 소울을 비벼 만든 강렬한 연주, 그리고 소울 시대의 향수를 느끼게 하는 코러스가 어우러져 무대에서 관객을 단번에 열광하게 만든다는 그룹의 공연을 상상하게 해준다.
우리는 이들의 공연을 올 해 서울 재즈 페스티벌에서 볼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공연이 무산되었다. 이유는 AC/DC의 순회 공연의 오프닝을 맡게 되면서였다. 그룹으로서는 록의 전설과 같은 무대에서 공연하는 것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아마도 국내에서만큼은 그룹의 명성이 그리 높지 않은 만큼 서울 공연이 무산되었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이번 앨범을 듣게 된다면 좋은 기회를 놓쳤다는 것을 실감하고 안타까워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