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벤 브래들리는 뉴질랜드 웰링턴 출신의 드럼 연주자이다. 뉴질랜드와 호주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기에 국내에는 아직 생소한 연주자이기도 하다. 이 앨범 또한 뉴질랜드 레이블 래틀 재즈에서 발매되었다. 글쎄. 생소하기에 신선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 앨범은 이 드럼 연주자가 뉴질랜드/호주를 중심으로만 활동하기에는 그 음악적 역량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아니 그 전에 확실한 주제와 그에 걸맞은 작곡 그리고 그 작곡에 걸맞은 연주로 이루어진 앨범은 연주자의 지명도에 상관 없이 그 자체로 우수하며 감상의 감동 또한 대단함을 확인하게 해준다.
드럼 연주자가 이 앨범에서 주제로 삼고 있는 것은 작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이다. 러브크래프트는 공포 소설의 역사를 장식한 인물이다. 국내에도 번역되어 소개기도 한 그의 소설들은 문학적인 측면보다는 그 상상력에 더 높은 평가를 줄 수 있다. 특히 1928년 “크툴루의 부름”을 시작으로 만들어낸 크툴루 세계관은 그의 상상력의 절정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크툴루는 인간도 포유류도 없던 과거 지구를 지배하며 살던 고대신의 하나인데 그것이 현대에 다시 깨어나 인간들에게 공포를 선사한다는 내용이 그의 소설의 주를 이룬다. 이러한 그의 작품들은 스티븐 킹, 딘 쿤츠 같은 공포 소설가들의 영향을 주었으며 아예 그의 작품을 가져온 <좀비오>같은 영화가 만들어지는가 하면 메탈리카 같은 헤비 메탈 그룹의 음악적 영감이 되기도 했다. 이 외에도 게임에도 차용되기도 했다.
루벤 브래들리도 피아노 연주자 테일러 에익스티, 베이스 연주자 맷 펜멘과 함께 트리오로 녹음한 이번 앨범에서 그 타이틀이 말하듯 이 러브크래프트의 소설 가운데 크툴루 신화를 주제로 한 음악을 들려준다. 공포 소설이 주제이기 때문인지 트리오의 연주는 록에 버금가는 강력하고 단단한 사운드로 이루어졌다. 특히 “In His House At R’lyeh”, “Cthulhu Fhtagn”같은 곡은 고틱 록의 트리오 버전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강력하다. (앨범에서 유일하게 그가 아닌 존 그리브스가 작곡한) “The Price We Pay”같은 발라드 성향의 곡도 있지만 음산한 분위기는 그대로 지속된다. 그래서 절로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에 대한 관심을 자극한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은 그 음산한 분위기가 트리오의 막강한 호흡과 역동적 연주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배드 플러스가 초기에 넘치는 에너지를 바탕으로 한 질주감 강한 연주로 쾌감을 주었던 것처럼 이 트리오도 꼭 크툴루 신화를 알지 못하더라도 숨을 쉴 틈을 주지 않는 긴밀한 이어짐만으로도 강렬한 인상을 준다.
록적인 강렬함이 앨범 내내 이어지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트리오가 (어쿠스틱) 록을 지향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앞서 언급한 탄탄한 호흡은 재즈에 대한 공유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테일러 에익스티의 피아노 연주는 그의 리더 앨범에서보다 더 발군의 기량을 드러낸다. 맷 펜맨의 베이스 연주 또한 확실한 선으로 곡마다 부여된 서사적 진행을 이끈다.
강렬한 연주이기에 감상자 또한 고온의 한증막에서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을 정도의 체력을 비축한 상태에서 감상을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한 번 듣고 나면 곧바로 다시 듣기에는 버거울 수 있다. 하지만 그 한 번의 감상이 주는 여운과 무게감은 매우 길고 크다. 한번의 감상으로도 영화나 소설 몇 편을 보고 읽은 듯한 느낌을 준다. 이것은 근래 발매된 어떤 트리오 앨범도 이를 따라잡기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