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 내가 좋아하고 나를 좋아해 주시는 삶과 일상의 선배 두 분과 술을 마셨다. 그런 중 선배 한 분이 회사에서 일했던 사람이 성인용품 매장을 열었다며 격려차 함께 방문하자고 했다. 성인용품 매장 이름은 “플레져 랩” 우리 말로 하면 쾌감 연구소 정도? 합정역 근처에 위치한 이 매장은 음침, 음습한 공간에서 남성 중심의 성인용품을 판매하는 곳과는 달리 밝고, 건강한 느낌으로 여성 중심의 성인 용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은은한 조명 아래 예쁘게 진열되어 있는 파스텔톤의 다양한 바이브레이터를 보면 그냥 팬시용품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른 차원의 쾌감, 위안을 담고 있는 듯한 디자인 때문에 구매하는 사람들이 많겠다 싶었다.
처음 가보는 공간, 처음 접하는 물건들이었지만 공간이 주는 부드러운 분위기 때문인지 계면쩍은 느낌은 들지 않았다. 친절하게 용품을 설명해 주는 젊은 여사장님과의 대화도 어색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는 재즈 애호가로 나와도 스쳐 지나간 정도의 인연이 있었다. (세상 참 좁다. 착하게 살자!)
머무르는 동안 쳇 배이커의 노래를 들었다. 여자보다 마약을 좋아했던, 여러 여자들에게 위안보다는 아픔을 주었던 사람의 노래가 여성적인 공간에 흐른다는 것이 조금은 이질적이었지만 그럼에도 그의 순진한 듯한 보컬이 주는 매력은 부인할 수 없었다. 여성이 감싸주고 싶고 챙겨주고 싶은 목소리. 어쩌면 그의 삶과 상관 없이 음악만큼은 여성적 공간에 더 잘 어울리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다른 차원에서의 에로틱한 음악이었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한편 그의 노래가 은은한 조명 아래서 들으면 더욱 돋보임을 새삼 깨달았다. 베이지색 계열의 불빛이 오래된 녹음이 주는 바랜 느낌을 지우고 현재적인 느낌을 주었다. 스피커에 따라 음악의 질감이 변하듯 조명도 영향을 준다.
남성용 용품도 몇 가지 구비되어 있었고 그 또한 예뻤지만 나를 자극하는 것은 없었다. 나와는 다른 세계의 물건들이었다. 그냥 신기했을 뿐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용품들을 멀뚱히 구경할 때 쳇 베이커가 “But Not For Me”를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랬다. 나를 위한 공간은 아니었다.
혹 관심 있는 분들은 한번 방문해 보시기 바란다. 선글라스를 끼지 않아도 괜찮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