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외부 미팅을 마치고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는 길에 지하철 환승통로에서 문구를 싸게 파는 가게를 만났다. 호기심에 가게에 들어가 문건들을 보았다. 필통, 카드 지갑, 셀카봉, 간단한 아이들 장난감, 필기구 등 이것저것을 평균 1000원에 팔고 있었다.
물건들을 이리저리 구경하다가 공책들에 눈이 갔다. 예쁜 표지에 정갈하게 선이 그어진 노트들. 사람들이 많이 구입하지 않으니 이리 염가로 판매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때 나는 공책에 관심이 많았다. 공책 종이의 질감에 따라 악필의 글씨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공책에 따라 영감의 정도가 달랐다. 다 거기서 거기 같은 디자인의 공책들이었지만 기이하게도 느낌이 오는 공책이 있었다. 그 공책의 빈 페이지를 보면 저절로 글쓰기 욕구가 생겼다. 그래서 괜히 이것 저것을 끄적이곤 했다. 나아가 글이 쓰고 싶어 소설, 영화, 음악을 읽고 보고 듣기도 했다.
군대에서는 작은 군인 수첩에 깨알같이 글을 쓰기도 했다. 그 때는 공책 하나만 있었으면 원이 없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숨길 수 있는 공책!)
하지만 어느덧 나는 공책에 글을 쓰지 않는다. 언제 마지막으로 글을 썼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다. 그와 함께 내 글씨 또한 악필을 넘어 외계의 문자처럼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향수에 젖어 공책을 사지는 않았다. 이미 나는 공책에 글을 쓰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몇 페이지 쓸 수는 있으나 끝까지 쓰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이미 나는 과거보다 더 멋진 공책 몇 권을 이미 갖고 있다. 말 그대로 공책(空冊)으로 남아 있는.
가게를 나오는 순간 프랑스 출신의 색소폰 연주자 바니 윌랑의 “I Will Say Goodbye”가 생각났다. 며칠 전 오랜 만에 이 곡이 담긴 앨범 <New York Romance>를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모든 추억을 지워버릴 듯한 안개 같은 색소폰 음색과 우수 어린 멜로디가 잠시나마 공책들을 보며 떠올린 내 지난 날들과 어울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오~~ 완전 좋죠!!
그렇다면 말을 바꿔서 ㅋㅋ..
‘그냥 음악에 담긴 제 기억’… 이란 코너를 만들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대상에 대해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이런 걸 좋아하다보니,
주절주절한것 같네요.
결론은… 이런 형식의 글이 좋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에세이랍시고 쓰는 글들이 주로 그렇죠…그렇게 추억하고 그렇게 기록하고..ㅎ
그렇게 이해하고, 그렇게 감동받고.. ^^
특정 음악이 더 의미있게 다가오는 이유는 슬프건 기쁜건 내 삶의 추억과 서로 맞닿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재즈는 아니지만, 신해철이 죽고 난 후 스스로도 놀랄정도로 깊은 슬픔에 빠졌었거든요. 제 첫사랑을 통해 신해철을 알게 되었고, 20대 대부분을 함께 보낸 터여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의 죽음으로 마치 그 시절 내 추억을 몽땅 잃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게 슬프게 목놓아..^^;; 울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은 남아 있죠.
이번 글 참 좋으네요..
감사합니다. 음악에 내 과거가 담기기도 하죠. 저 또한 신해철의 황망한 사망에 잠시 충격을 받았더랬습니다. 살아 있을 땐 그냥 그런가보다 했는데 세상을 떠나니 음악이 들리더군요.
개인적으로 넥스트보다, crom으로 활동했을때…아마 영국에서 정말 힘들게 녹음작업했던(본인이 그렇게 얘기한..하지만 그 사실을 한참 후에 알게 된..) 그 앨범듣고서야, 전 ‘이 사람은 보통 뮤지션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음 반이기도 하고요.
‘낯선 청춘’이라는 이 단어 자체가 저를 포함한 많은 분들에게 삶에서 의미있는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합니다. 한번씩 이미 ‘낯선 청춘’이라는 용어 자체가 문화가 된 듯한 느낌이 들때가 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정말 오랫동안 존재했으면 하는 마음이 많이 들지요.
크롬픠 앨범을 저는 파리 시절에 접했네요. 서울 왔다가 파리서 집생각 나면 들을게 뭐 있나 싶어서 이 앨범을 가져갔었습니다. ㅎ 아마 이 기억이 제게 그를 가까이 느끼게 했나봐요. 이전에도 물론 그의 음악을 들었지만..ㅎ
그 당시에는 의식하지 못하지만…돌이켜 보면 ‘그 음악’과 ‘그 기억’ 사이 필연적 관계가 있는 것만 같다는..ㅋ 그런 생각이 들때가 있습니다. 사실 그 관계는 ‘내 삶의 맥락’에 따라 우연적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데 말이죠.
음악과 기억…이라는 제목으로 에세이를 한번 써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음악과 기억이라…물질과 기억보다 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냥 음악에 담긴 제 기억이라면 몰라도…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