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정서의 쿨 재즈를 들려주었던 색소폰 연주자
드럼과 피아노가 4분의 5박자 리듬을 연주한다. 익숙하지 않은 4분의 5박자 리듬이 경쾌함만큼 긴장을 발산한다. 그 긴장을 부드럽게 중화시키며 색소폰이 테마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힘을 빼고 나비처럼 사뿐사뿐 연주하는 듯한 맑고 깨끗한 음색이 정신을 맑게 한다. 1959년에 녹음된 것임에도 해상도가 너무나도 투명하다. 그렇다. 나는 지금 데이브 브루벡 쿼텟의 ‘Take Five’를 말하고 있다. 이 곡은 국내에도 여러 유명 광고에 사용되었을 정도로 재즈를 벗어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제목은 몰라도 이 곡을 들어본 사람은 많을 것이다. 바로 이 곡에서 색소폰을 연주한 사람이 바로 폴 데스몬드이다.
‘Take Five’와 이 곡이 담긴 앨범 <Time Out>(Columbia 1959)로 데이브 브루벡은 세계 순회공연을 펼치는 인기 그룹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런데 데이브 브루벡 쿼텟의 연주로 소개되곤 하기 때문인지 정작 폴 데스몬드가 Take Five의 작곡자이자 색소폰 연주자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여기에는 폴 데스몬드의 책임도 어느 정도 있다. 지금까지 데이브 브루벡이 Take Five를 공연마다 연주를 하고 있는 반면 폴 데스몬드는 생전에 솔로로 활동하면서 이 곡을 즐겨 연주하지 않았다. 대신 솔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Take Ten’이라는 새로운 곡을 작곡했다.‘Take Five’가 4분의 5박자였다면 이 곡은 8분의 10박자를 기본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결국 보기에 따라서는 4분의 5박자로 볼 수도 있는, 따라서 ‘Take Five’와 유사한 곡이었다. 이 곡을 작곡하면서 폴 데스몬드는 ‘Take Five’에 버금가는 인기를 얻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의도한 만큼의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1924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폴 데스몬드는 웨스트 코스트/쿨 재즈 색소폰을 이야기할 때 스탄 겟츠와 함께 꼭 언급되어야 하는 인물이다. 어떠한 순간에도 절대 흥분하지 않고 여유롭게 멜로디를 이어나가는 그의 알토 색소폰 연주는 언급했다시피 곱고 부드러운 음색이 특징이었다. 짙은 안개를 헤치고 나를 향해 다가오는 연인의 모습 같은 사운드라고 할까? 왁자지껄한 군중들 가운데 또렷이 들리는 연인의 목소리 같다고도 할 수 있겠다. 이런 그의 부드러운 음색은 클라리넷을 먼저 연주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사실 클라리넷으로 관악기 악습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기에 그의 경우를 특별하다 볼 수는 없지만 다른 연주자와 다르게 그는 클라리넷의 톤 컬러, 음색을 대학에서 처음 잡게 된 알토 색소폰으로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던 듯하다. 그의 색소폰은 레스터 영의 부드러운 연주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진다.
폴 데스몬드가 본격적으로 전문 연주자로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이웃이었던 데이브 브루벡과 함께 활동하면서부터였다. 그는 1951년부터 1967년까지 지속된 데이브 브루벡 쿼텟에서의 활동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특히 대학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아 특별히 대학 순회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그런데 데이브 브루벡 쿼텟의 활동을 계속하면서 그는 어느 순간 자신이 독립적이지 못하고 데이브 브루벡이 연주하는 피아노에 너무 의존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다른 멤버들에 비해 연주를 하며 웃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데이브 브루벡 쿼텟 활동을 유지하면서 자신의 솔로 활동에 시간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폴 데스몬드의 음악 인생을 살펴보면 완전히 혼자서 활동한 적이 드물다는 것이 흥미롭다. 기타 연주자 짐 홀, 바리톤 색소폰 연주자 제리 멀리건, 트럼펫 연주자 쳇 베이커를 비롯한 유명 연주자들이 언제나 그의 곁에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들과의 관계는 데이브 브루벡 쿼텟 시절과는 자못 달랐다. 의지가 아닌 대화 상대로서 동등한 위치에서 자신의 능력을 적절히 드러내는 관계를 유지했다. 그 가운데 기타 연주자 짐 홀과 이루었던 호흡은 그의 솔로 생활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이룬다. 짐 홀과 그는 1961년부터 1965년까지 함께 했는데 그 사이에 발표한 앨범들 모두는 폴 데스몬드의 색소폰이 얼마나 포근하고 나른한지 확인하게 해주는 수작(秀作)들이다. 한편 제리 멀리건과 함께 했을 때는 제리 멀리건이 연주하는 묵직한 저음의 바리톤 색소폰과 고역대 중심으로 연주하는 그의 알토 색소폰이 조화만큼이나 대비효과를 만들어 내며 색다른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트럼펫 연주자 쳇 베이커 벤드에서 연주할 때나 1971년 크리스마스에 모던 재즈 쿼텟과 특별한 만남을 가졌을 때에도 상대 연주자의 매력과 조화를 이루는 연주를 들려주었다.
이렇게 다른 연주자를 파트너로 두었던 앨범과 달리 자신과 어울리는 파트너 없이 혼자서 사운드를 이끈 앨범들은 기대만큼의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한다. 실 예로 사이먼 & 가펀클의 곡들을 연주했던 <Bridge Over Troubled Water>(1969)같은 앨범은 폴 데스몬드의 매력을 소비한 스무드 재즈 앨범 이상의 느낌을 주지 않았으며 그 외의 앨범들도 그리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폴 데스몬드는 데이브 브루벡과 동네 이웃으로 함께 살며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그러나 이 외에 다른 연주자나 이웃과 사교적으로 잘 보냈는지는 모르겠다. 늘 여유를 잃지 않는 연주 스타일답게 그는 성격이 온순한 성격을 지녔지만 한편으로는 내성적인 면이 강했던 것 같다. 그래서 동시대 작가의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마약에는 약간 손을 대보기는 했으나 그리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반면 듀어(Dewar) 스카치 위스키와 폴 몰(Pall Mall)담배를 즐겼다. 그리고 비타민 등 건강보조 약품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런 사실들을 보면 그는 확실히 혼자서 자신만의 세계를 유지하며 사색하거나 침묵하는 것을 즐겼던 것 같다. 그래서 연주에 조급함이 없고 부유(浮遊)하는 듯한 연주를 펼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1977년 5월 30일 그는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폐암. 색소폰 연주자로서는 아주 치명적이라 할 수 있는 병이라 하겠는데 이 병에도 불구하고 그의 색소폰 음색은 결코 거칠어지지 않았다. 또한 자신의 병에 대해 비관하지 않았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폐암을 확인한 후 간암에 걸리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농담을 했다고 한다. 그 정도로 그는 자신의 음악만큼이나 삶을 긍정하고 즐길 줄 아는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음악은 지금까지도 낙관과 긍정의 삶을 위한 배경음악으로 다가온다.
대표 앨범
Easy Living (RCA 1965)
폴 데스몬드와 기타 연주자 짐 홀은 알터 에고에 가까운 호흡을 보이며 여러 장의 앨범을 함께 했다. 그리고 이 때가 폴 데스몬드의 솔로 활동 가운데 가장 빛나는 때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 가운데 두 연주자가 마지막으로 함께 한 이 앨범이야 말로 두 연주자의 호흡이 가장 돋보이는 앨범이다. 해질 무렵의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짐 홀의 기타를 배경으로 폴 데스몬드의 색소폰이 나른한 멜로디를 이어나가는 식으로 연주가 진행되는데 이것은 쿨 재즈의 포근함, 여유를 가장 이상적으로 반영한 것이었다.
Two Of A Mind (RCA 1962)
바리톤 색소폰 연주자 제리 멀리건과 함께 한 앨범. 매끄럽게 부유하는 폴 데스몬드의 알토 색소폰과 건조하고 무거운 제리 멀리건의 바리톤 색소폰의 대비가 강조된 연주를 담고 있다. 게다가 쿨 재즈를 대표하는 두 연주자는 이러한 대비효과를 명확하게 하려는 듯 대위적인 연주를 펼친다. 그리고 두 색소폰의 질감 차이만큼 공간적 여백과 여유의 정서가 매력으로 드러난다. 말 그대로 쿨한 사운드를 들려준 것이다. 그래서 제리 멀리건이 트럼펫 연주자 쳇 베이커와 함께 했던 연주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Paul Desmond & Modern Jazz Quartet (Columbia 2007)
많은 사람들은 폴 데스몬드와 모던 재즈 쿼텟(MJQ)이 만나 함께 연주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것은 쉽사리 이루어지지 않다가 1971년 크리스마스 콘서트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이들은 크리스마스 콘서트라고는 하지만 캐롤을 뻔하게 연주하는 것을 피했다. 그럼에도 차가운 겨울을 따듯하게 만드는 사운드를 만들어 냈다. 이국적 여름을 상상하게 하는 ‘La Paloma’는 그 가운데 백미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산뜻하고 청량한 사운드를 들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