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했다. 이사 후 아직은 낯선 공간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물건을 정리하고 전 주인이 살았던 흔적을 하나 둘 지웠다. 이 공간은 이제 우리 가족 것임을 확인하려는 듯 곳곳을 닦으며 손길을 주었다. 매우 피곤한 일이었다. 생각해보면 이사 짐을 정리하는 육체적인 움직임보다 아직 내 편의에 맞게 물건들이 정리되지 못한 상태라는 것, 그 무질서 속에서 며칠을 견뎌야 한다는 것이 더 힘든 일인 것 같다. 물론 요즈음은 포장 이사가 다 해결해 준다고 하지만 다른 구조의 집으로 이사할 때는 무용지물이다. 새로운 주인조차 물건의 위치, 질서를 제대로 정하지 못했는데 그 어느 누가 깔끔하게 이사를 완료할 수 있을까?
어려운 상황이긴 했지만 그래도 음악은 들었다. 종일 앞으로 발매될 보컬 이현정의 두 번째 앨범 <We’re Still In Love>를 들었다. 성악을 먼저 공부하고 재즈로 전향한 청아한 목소리가 색다른 매력을 느끼게 하는 앨범이었다.
그리고 저녁 잠시 운전을 하다가 로드 맥퀸의 “And To Each Season”을 들었다. 실로 오랜만에 듣는 노래였다. 그런데 몸이 피곤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하루 종일 이현정의 맑은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일까? 빛이 바랜 흑백 사진 같은 로드 맥퀸의 목소리가 매우 편하게 들렸다. 눅눅한 피곤을 스폰지로 흡수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사실 평소 나는 로드 맥퀸의 노래에 아주 큰 감흥을 받지 못했었다. 그냥 허스키한 목소리의 보컬 이상 아무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어제 저녁은 아니었다. 막 시작된 밤 거리를 10여분간 운전을 하며 나는 그의 노래가 나를 위한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모든 것이 정리되는 듯한 편안함을 느꼈다. 모든 음악이 언제 어디서 듣느냐에 따라 그 느낌이 달라질 수 있다면 “And Each To Season”은 10월 25일 저녁을 위한 것이었다.
ps: 이 곡은 로드 맥퀸의 1972년도 앨범 <Odyssey>에 수록되어 있다. 같은 해 그는 이 곡을 제목으로 한 시집을 내기도 했다. 이 곡의 특징은 파헬벨의 캐논에 새로운 멜로디를 입혔다는 것이다. 캐논을 새로이 편곡했다기 보다 샘플링하듯 일부분을 사용했다. 한편 사 계절 모두를 담고 있음에도 이 곡은 로드 맥퀸의 캐롤 앨범에 실리기도 했다. 뭐 분위기상 그리 나쁘지는 않지만 그래도 겨울에만 한정을 짓는 것은 아니었단 생각이다. 로드 맥퀸의 목소리가 회상의 분위기가 강하긴 하지만 그래도 그 안에 뜨거운 여름, 나른한 봄의 기운이 없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