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문답 3 – 스탠더드 곡을 알아봅시다.

지난 시간에 보컬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실제 몇 장의 앨범을 들어보셨나요? 한 장이라도 들어보셨어야 하는데….그냥 제 말만 듣고 지나가는 것은 의미가 없거든요. 제가 무슨 대단한 지식을 알려드리는 것도 아니고 또 지식의 차원에서 재즈를 받아들여서도 안되거든요. 직접 듣고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렇게 제가 여러분의 이런저런 질문에 답을 하는 것은 재즈에 대한 시시콜콜한 지식보다는 서로 공감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앨범을 들어보셨나요?

문: 지난 시간에 소개해주신 엘라 핏제랄드와 루이 암스트롱의 앨범 <Ella & Louis>를 들어봤습니다. 정말 좋던데요. 듣기에 어렵지도 않고. 달달한 맛이 느껴지는 것이 듣는 내내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Cheek To Cheek’은 마침 이번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토니 베넷과 레이디 가가가 듀엣으로 노래한 것이 화제길래 몇 가지 버전들을 찾아서 들어봤습니다. 그런데 모든 버전들이 엘라 핏제랄드와 루이 암스트롱의 노래처럼 밝고 낭만적이면서도 조금씩 맛이 다르던데요. 그저 보컬의 목소리 차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답: 대단한 발견인데요. 예. 재즈는 연주자나 보컬의 개성에 따라 같은 곡이라도 다른 모습, 다른 맛을 느끼게 해주죠. 경우에 따라서는 작곡자의 의도와는 다른 느낌을 줄 수도 있습니다.

문: 예를 들면요?

답: 예요. 이를테면 이런 거죠. 들어보신 ‘Cheek To Cheek’이 모두 낭만적이고 밝은 분위기였다고 하셨죠? 아마도 이 노래 가사가 볼과 볼을 맞대고 춤을 출 때의 짜릿한 흥분이나 행복감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되는데요.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어둡고 슬픈 ‘Cheek To Cheek’도 가능합니다. 주로 연주곡에서 많이 발생하죠. 아무래도 가사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우니까요. 그래도 저 또한 어둡고 슬픈 ‘Cheek To Cheek’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문: 그럼요. 작곡자의 의도와 다르게 연주하고 노래하는 것은 좀 잘못된 것 아닌가요? 좀 이상할 것 같은데요.

답: 이상하게 생각될 수는 있지만 그것을 잘못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재즈는 연주자와 보컬의 개성을 더 많이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연주자나 보컬의 모든 상상을 허용합니다. 다만 이에 대한 감상자의 호불호, 공감과 비공감은 또 다른 문제죠.

문: 그렇다면 말이죠. 자기 개성을 표현하려면 자기 스타일에 맞는 곡을 직접 만드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왜 연주자나 보컬들은 다른 사람의 곡을 연주하고 노래하는 거죠? 낯선 청춘씨가 선정한 재즈사의 명반들을 보면 겹치는 곡들이 많더라구요.

답” 예. 그래서 제가 한 곡이 마음에 들면 그 곡을 수록한 다른 앨범을 찾아서 들어보라고 말씀 드린 것입니다. 첫 시간에 제가 ‘Autumn Leaves’에 빠져서 한 때 이 곡이 담긴 앨범만 골라 들었다고 말씀 드렸던 것 기억하시죠? 자! 그러면 왜 재즈 연주자나 보컬들은 같은 곡을 가지고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려고 하느냐 이것이 문제인데요. 이를 위해서는 스탠더드(Standard) 곡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문: 스탠더드 곡이요?

답: 예. 말씀하신 ‘Cheek To Cheek’이나 ‘Autumn Leaves’같은 곡을 스탠더드 곡이라고 하는데요. 주로 1920년대 뮤지컬이나 영화 음악에서 가져온 곡들이 많죠.

문: 왜 뮤지컬과 영화 음악이 스탠더드 곡이 되었나요?

답: 스탠더드 곡이 꼭 뮤지컬이나 영화 음악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었습니다. 재즈 연주자가 작곡한 곡이 스탠더드 곡이 된 경우도 있습니다. 다만 그 시절에는 뮤지컬과 영화가 지금보다 더 미국의 대중 문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었고 그 가운데 음악은 특히나 대중 음악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레 이들 음악에 집중된 것이죠.

문: 그런데 왜 이들 음악을 스탠더드라 부르는 거죠?

답: 사실 스탠더드 재즈란 말은 1920, 30년대부터 사용된 개념은 아니었습니다. 말씀 드린 뮤지컬, 영화 음악이 재즈 연주자들과 보컬들의 의해 자주 그리고 끊임 없이 연주되고 노래되면서 스탠더드라는 말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재즈 연주자들이 좋아하는 곡이라 할까요? 물론 그것을 일반 대중들도 좋아했구요. 아무튼 재즈 연주자들과 보컬들이 자주 연주하고 노래하게 되면서 재즈 연주자나 재즈 보컬이라고 하면 스탠더드 곡을 연주하고 노래할 줄 알아야 하는, 일종의 기본 사항이 되었습니다. 실제 재즈 연주자들은 ‘Real Book’이라고 스탠더드 곡들의 악보를 모아놓은 책이 있는데요. 그 책의 수록곡들을 가지고 연습을 하곤 합니다. 재즈 클럽 같은 데를 가면 연주자들이 즉흥적으로 만나 그 자리에서 곡을 선택해 연주를 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데요. 이것이 가능한 것도 연주자들이 어떻게 연주할 지는 몰라도 최소한 무엇을 연주할 것인가는 서로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 스탠더드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네요. 말하자면 연주나 노래의 기준, 모범이 되는 곡이 스탠더드 곡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문: 예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왜 재즈 연주자들이 자신의 곡보다 다른 작곡가의 곡을 연주하게 되었는지는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왜 재즈 연주와 노래의 기준을 왜 대중 음악에서 찾았느냐 이 말입니다.

답: 그건 말이죠. 재즈도 대중 음악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많은 분들이 재즈를 아무나 듣기 곤란한 특정 애호가를 위한 예술 음악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재즈의 역사 속에서 많은 재즈의 거장들이 노력 끝에 얻은 성과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재즈는 예술적 깊이가 있으면서도 대중 음악으로서의 성격 또한 잃지 않고 있습니다. 아무튼 재즈가 탄생하고 장르 음악으로 자리를 잡을 무렵에는 대중 음악으로서의 성격이 무척 강했습니다. 지난 시간에 말했듯이 루이 암스트롱이 ‘팝스’라는 별명을 갖게 된 것도 당시에는 재즈가 곧 팝이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1920,30년대 그러니까뉴올리언즈 시대를 거쳐 스윙 시대에 이르기까지 재즈는 지금의 나이트 클럽에서 춤을 추기 위한 음악으로 사용되곤 했습니다. 말하자면 댄스 음악이었던 거죠. 그런데 나이트 클럽 같은데 가서 기분 좋게 춤을 추려고 하면 잘 알고 있는 익숙한 곡에서 더 흥겨움을 많이 느끼잖아요? 이처럼 재즈 연주자와 보컬 또한 편안하고 흥겨운 분위기 연출을 위해 잘 알려진 곡을 편곡해 연주하고 노래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일반 대중들이 재즈를 더 좋아하게 되었구요.

문: 그렇군요. 저도 재즈를 듣기 어려운 음악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재즈를 댄스 음악으로 생각해 본적이 없네요. 그런데요. 재즈 역사를 잘 모르지만 과거 언젠가엔 재즈가 지금처럼 예술 음악의 성격을 갖게 되었을 거잖아요? 그러면 그 때부터는 스탠더드 곡보다는 연주자나 보컬의 자작곡이 더 중요하게 여겨졌을 것 같은데 지금도 스탠더드 곡이 연주되고 노래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답: 예. 과거에 비해 요즈음은 자작곡의 비중이 많이 높아졌죠. 그래도 스탠더드 곡의 중요성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재즈가 예술 음악으로서 인식되게 된 데에는 스윙 시대 이후 비밥 재즈의 탄생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노골적으로 재즈를 댄스 음악으로 사용하는 것에 반기를 들었으니까요. 그래서 이 새로운 재즈를 위해 만들어진 곡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비밥 시대부터 스탠더드 곡의 위치가 더욱 견고해졌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문: 왜죠?

답: 비밥 재즈가 지닌 혁신적인 성격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자작곡보다는 스탠더드 곡을 연주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었으니까요. 감상자들에게 익숙한 곡들, 특히 스윙 시대에 많은 인기를 얻었던 곡들을 비밥 스타일로 연주하면 그 차이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겠어요? 그리고 연주자들 사이에서도 다른 연주자와의 차이, 나만의 개성을 부각시키고자 한다면 잘 알려진 곡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연주하면 그 차이가 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을까요?

문: 아하. 이제 좀 이해가 갑니다.

답: 이야기를 더 하자면 재즈를 특히 비밥 재즈를 들을 때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어려움은 즉흥 연주가 어디서 시작되어 끝나는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도 처음엔 그랬죠. 하지만 그 곡의 멜로디를 잘 알고 있으면 이해가 한결 쉬워집니다. 그리고 한 곡에 대한 여러 연주를 듣게 되면 연주자간의 차이를 발견하기도 쉽습니다. 그래서 감상자의 입장에서도 수 많은 연주자와 보컬에 의해 연주되고 노래된 스탠더드 곡은 재즈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는 좋은 기준점이 될 수 있습니다. 아까 ‘Cheek To Cheek’을 여러 버전으로 들어보셨다고 했죠? 그래서 각기 다른 맛을 느꼈다고 했잖아요? 그게 바로 스탠더드 곡이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문: 그런데요. 다양한 버전을 비교해 가면서 들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지금도 스탠더드 곡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요. 솔직히 저처럼 재즈를 잘 모르고 1920,30년대 대중 음악을 모르는 사람들은 대부분의 스탠더드 곡을 잘 모릅니다. 연주자의 자작곡과 다르지 않습니다. 잘 알고 있는 곡이 주는 효과를 얻기가 쉽지 않다는 거죠. 그렇다면 스탠더드 곡이 이제는 그 역할이 다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답: 예.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스탠더드 곡을 발굴하려는 노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인기 있는 팝이나 록 음악을 가지고 개성 어린 재즈를 연주하고 노래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브리트니 스피어스, 핑크 플로이드나 라디오 헤드, 스팅 등의 곡을 연주하는 것이죠. 또한 널리 잘 알려진 클래식의 테마를 재즈로 연주하는 것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여러 연주자나 보컬들에 의해 꾸준히 연주되고 노래되면 스탠더드 곡이 되겠죠? 적어도 현재 비틀즈의 몇몇 곡은 스탠더드 곡이 된 것 같습니다. 한편 기존 스탠더드 곡은 모두 빼어난 멜로디를 지녔습니다. 그래서 쉽게 새로운 감상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Cheek To Cheek’을 좋아하게 된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스탠더드 곡은 크게 볼 때 새로운 곡이 추가되어 그 리스트가 변할 수는 있지만 오래 되었다고 갑자기 스탠더드 곡에서 빠지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문: 스탠더드 곡을 가지고 연주자가 자신의 음악적 개성을 드러낸다고 했는데요. 아무리 좋은 스탠더드 곡이라고 해도 수 없이 연주되고 노래되면 더 이상 새롭게 바뀔 수 없는 순간이 생길 것도 같습니다. 아닌가요? 경우의 수에도 한계가 있잖아요.

답: 예. 그럴 수 있습니다. 요즈음 많은 연주자들이 작곡에도 많은 공을 들이는 것도 스탠더드 곡보다는 직접 곡을 쓰는 것이 이제는 자신을 드러내기 쉽고 효과적이라 생각하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키스 자렛은 1983년 트리오를 결성해 스탠더드 곡을 연주하게 된 이유로 많은 젊은 연주자들이 스탠더드 곡에서 새로운 것을 찾기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음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실제 트리오는 지금까지도 스탠더드 곡을 매번 신선하게 연주해오고 있습니다. 현존 최고의 피아노 트리오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말이죠. 저 또한 스탠더드 곡의 신선도는 그대로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다수의 연주자들이 스탠더드 곡을 과거와 비슷한 상상력으로 연주하는 것이 문제일 뿐이죠. 과거를 기준으로 삼았다고나 할까요?

문: 스탠더드 곡을 연주하되 과거를 스탠더드로 삼으면 안 된다는 말이군요.

답: 예. 그렇죠.(웃음)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요?

문: 감사합니다.

4 COMMENTS

  1. 시대가 지나도 노래는 영원히 남듯, 글 또한 마찬가지이군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The Eddie Higgins Trio 알아보다가 여기까지 왔네요. 고맙습니다

  2. 재즈를 들은지 20년이 넘었는데도, 스탠더드 곡의 정확한 어원을 이제서야 알았습니다.

    내용이 흥미로운데, 시리즈가 한 개밖에 안 남았네요. 아쉽아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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