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문답 2 – 보컬 앨범으로 감상을 시작할까요?

문: 지난 시간에 낯선 청춘 씨는 시간을 두고 여러 앨범을 차근차근 듣다가 자신에게 맞는 앨범을 만나게 되면 그 앨범을 중심으로 유사한 앨범으로 감상을 이어가면 재즈의 중심에 들어간다고 말했습니다. 맞죠?

답: 예. 잘 이해하셨네요.

문: 그런데 이해는 가면서도 여전히 막막한 느낌은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개인마다 다른 취향을 지녔고 그에 따라 마음에 드는 앨범이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보편적으로 재즈 감상의 출발점이 될 수 있는 앨범이 있을까요? 낯선 청춘 씨는 그래도 재즈에 관한 전문가인데 한 장만이라도 추천해 주시죠.

답: 여전히 재즈 감상에 왕도(王道)가 있다는 환상을 버리지 못하셨군요. (웃음) 다시 말씀 드리지만 재즈 감상의 출발점이 되는 단 한 장의 앨범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앨범이 감상의 출발점이 될 수 있고 종착점이 될 수 있으니까요. 그래도 특정 앨범을 추천하는 대신 스타일 하나는 추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보컬 앨범을 먼저 듣는 것이 좋다. 이렇게 말이죠.

문: 아 그렇군요.

 답: 예. 사실 재즈 보컬은 재즈 스타일의 하나가 아닙니다. 다양한 스타일의 보컬이 있으니 말이죠. 예를 들면 뉴 올리언즈 재즈부터 스윙 시대를 풍미했던 루이 암스트롱 같은 보컬이 있는가 하면 쓰디쓴 노래에서 매력을 발산했던 빌리 할리데이 같은 보컬, 아스트러드 질베르토처럼 라틴 스타일의 노래에 능했던 보컬, 우리의 나윤선씨처럼 시적인 분위기로 노래하는 보컬, 니나 사이먼처럼 소울적인 요소가 강한 보컬, 프랑크 시나트라처럼 중후함을 무기로 팝과 재즈를 오갔던 보컬, 쟌 리 같은 아방가르드한 색채가 강했던 보컬 등 재즈사의 다양한 스타일마다 이를 대표하는 보컬이 있습니다.

문: 그렇다면 재즈 보컬 앨범을 선택하는 데에도 역시 어려움이 많겠는데요. 그럼에도 재즈 보컬 앨범으로 감상을 시작하고 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답: 예. 간단히 말씀 드리면 재즈 보컬 앨범이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재즈의 세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분들은 클래식 애호가라면 조금은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렇지 않다면 대부분은 스타일을 떠나 연주 음악에 그리 친숙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감상자들은 멜로디를 중심에 두고 감상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재즈 연주 곡들, 특히 비밥 시대의 연주곡들은 멜로디를 이리저리 비트는 것을 너머 아예 리듬이나 화성 뒤로 감추곤 했습니다. 이로 인해 멜로디를 찾기가 어렵죠. 그래서 한 곡을 들으면 어디에 중심을 두어야 할지 몰라 헤매다가 감상을 포기하곤 합니다.

문: 예. 맞습니다. 저도 그랬어요!

답: 그런데 보컬의 경우는 좀 다릅니다. 아무리 멜로디를 비튼다고 해도 멜로디를 감추지는 않죠. 게다가 우리 가요만 듣던 분이건, R&B를 듣던 분이건, 롹을 듣던 분이건 대부분은 보컬곡을 중심으로 감상을 해왔을 겁니다. 그래서 나에게 맞건 그렇지 않건 간에 보컬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덜합니다. 사람의 목소리가 중심이니까요. 아무래도 트럼펫, 색소폰 소리에 낯선 분들이 많지 않나요? 그래서 재즈 보컬 앨범으로 감상을 시작하라고 한 것입니다. 여기에 나의 취향에 맞는 보컬 앨범이면 더욱 더 좋겠죠?

문: 무슨 말씀인지 알 것 같습니다. 그러면 앞서 말씀하신 보컬들의 앨범을 하나씩 들으면 재즈의 대력적인 스타일은 다 맛볼 수 있겠네요.

답: 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문: 그 가운데서도 먼저 들어야 할 보컬 앨범이 있다면? (웃음)

답: 참 끈질기시군요, 좋습니다. 어차피 언젠가는 듣게 되실 테니까 앨범을 추천하기에는 어렵지만 한번은 들어야 할 재즈 보컬을 말씀 드리죠. 먼저 루이 암스트롱을 추천합니다. 원래 루이 암스트롱은 트럼펫 연주자로 나중에 함께 이야기하게 될 텐데, 즉흥 연주의 중요성을 일 깨우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1926년 자신의 밴드 핫 파이브를 이끌고 ‘Heebie Jeebies’라는 곡을 녹음하던 중 스캣이라고 특별한 가사 없이 ‘두루루~ 두비두비 두밥!’처럼 의미 없는 입소리로 흥얼거리는 노래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루이 암스트롱 이전에도 스캣으로 노래한 경우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이 트럼펫 연주자의 스캣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이전의 스캣이 가사 없이 멜로디를 흥얼거리는 것이었다면 루이 암스트롱의 경우는 트럼펫 솔로 연주처럼 즉흥적인 면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목소리를 악기처럼 사용했다는 것이죠. 보컬이전에 연주자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문: 목소리를 악기처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한가요?

답: 목소리를 악기처럼 사용한다는 것이 악기 소리를 흉내 내어 노래하는 것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스캣을 통해 재즈 보컬도 솔로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무래도 가사는 원곡의 멜로디에 강력하게 밀착되어있잖아요? 그런데 스캣은 즉흥적으로 원곡의 멜로디를 확장해 새로운 멜로디를 만들거나 다른 솔로 악기와 대화를 나누는 것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악기들이 테마를 연주하고 솔로를 펼친 뒤 다시 테마를 반복하여 곡 하나를 완성하듯 보컬도 그런 식으로 혼자 곡 전체를 책임질 수 있게 된 것이죠.

 문: 그렇다면 재즈 보컬은 스캣을 꼭 해야 하나요? 스캣을 해야 재즈 보컬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요?

답: 적어도 퓨전 재즈 시대 이전까지는 스캣이 재즈 보컬에게는 중요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보컬이 노래할 때마다 무조건 스캣을 사용하지는 않았습니다. 자유로이 선택을 했죠. 스캣 외에 재즈 보컬이 자신의 역량을 드러내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으니 말이죠. 정서적 표현력, 리듬을 타는 능력, 명확한 발음, 강약의 조절, 무대 매너 등 많습니다.

문: 예 그렇군요. 그럼 먼저 루이 암스트롱의 앨범 하나를 들어봐야겠네요.

답: 그것이 여러분 각자의 취향에 맞는 선택일 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재즈를 싫어하게 만드는 선택은 아닐 것입니다. 사실 제가 루이 암스트롱의 노래를 먼저 추천하는 것은 단순히 그가 재즈 보컬의 전형을 제시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무척이나 대중적인 성향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보통은 그를 두터운 입술 때문에 붙여진 사치모(Satchmo)라는 별명으로 기억하곤 하는데요. 이 별명 외에 그는 팝스라는 별명을 갖고 있습니다. 그만큼 그의 노래와 연주가 그 자체로 팝이라 할 정도로 대중적이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마도 재즈와 상관 없이 그의 노래 하나 정도는 들어본 분들이 많을 걸요?

문: 흠. 그 뭐더라? ‘What A Wonderful World’였나요?

답: 예. 맞습니다. 국내에서는 제일 유명한 곡이 아닐까 싶네요. 이 곡 외에 ‘Hello Dolly’나 ‘When The Saint Go Marching In’같은 곡도 유명합니다. 앨범도 비교적 국내에서 쉽게 구할 수 있으니 한번 들어보세요. 재즈 이전에 올드 팝처럼 친숙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문: 루이 암스트롱을 말씀하셨는데 그럼 여성 보컬은 추천해주실 수 없나요?

답: 여성 보컬이라……많죠. 너무 많아서 누구를 말씀 드려야 할지 모를 정도입니다. 특히 재즈 보컬을 이야기하면 미술의 빛의 3원색, 수능에서의 영어, 수학, 국어를 이야기하듯 기본처럼 여겨지는 세 명의 여성 보컬이 있습니다. 3대 디바(Diva)라고들 하는데요. 엘라 핏제랄드, 빌리 할리데이, 사라 본이 그들입니다.

문: 롹에서 말하는 3대 기타 연주자 뭐 그런 것이네요?

답: 예. 왜 꼭 세 명씩 꼽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그렇습니다. 그래서 일단 이 세 여성보컬의 노래를 들어보시기를 권합니다. 혹시 이 중에서도 누구부터 들어야 하는지 궁금하신가요? 우리 교육의 폐해인지 밥 먹는 법보다 아예 밥을 떠 먹여주기를 바라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웃음)

여러분의 답을 기다리기 전에 제가 먼저 말씀 드리죠. 누구부터 들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루이 암스트롱을 들으셨다면 이어서 엘라 핏제랄드를 한번 들어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엘라 핏제랄드는 다른 누구보다 루이 암스트롱이 개척한 스캣 창법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매우 훌륭히 사용했습니다. 게다가 루이 암스트롱과 <Ella & Louis>(Verve 1956), <Ella & Louis Again>(Verve 1957), <Porgy & Bess>(Verve 1957) 등의 앨범을 녹음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이 앨범들을 듣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스캣 이전에 워낙 사랑스럽고 낭만적인 분위기로 노래했기 때문에 듣고 나면 세상을 무척이나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될 겁니다.

문: 예. 꼭 들어볼게요. 지금 루이 암스트롱과 엘라 핏제랄드를 검색해보니 무척이나 마음씨 좋은 아저씨 아줌마처럼 보이는데요? 특히 <Ella & Louis>앨범 표지 사진이 무척 편하게 보입니다.

답: 그러면 그 앨범부터 들어보세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앨범 하나만 듣고 감상을 멈추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강조했던 것처럼 하나의 앨범, 그러니까 엘라 핏제랄드와 루이 암스트롱의 <Ella & Louis> 앨범이 마음에 들었다면 여기서 다음에 들어볼 앨범을 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여기엔 답은 없어요. 엘라 핏제랄드와 루이 암스트롱을 주제로 한다면 아까 말했던 다른 두 장의 앨범을 들어보면 됩니다. 그리고 루이 암스트롱이나 엘라 핏제랄드의 다른 앨범을 계속 들어보는 거죠. 최소한 사람에 익숙해졌으니 다른 앨범에도 어렵지 않게 익숙해질 것입니다. 이것이 계속 이어지면 아마 나는 엘라 핏제랄드의 팬이야. 나는 루이 암스트롱의 팬이야 라고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요즈음 유행하는 아이돌 그룹의 팬들처럼 주변에 루이 암스트롱이나 엘라 핏제랄드를 막 추천하구 말이죠. (웃음)

문: 방에 포스터도 붙이고 앨범도 같은 것을 여러 장 구입해서 주변에 막 선물하구요? (웃음)

답: 그러면 참 재미있겠네요. 하지만 그 정도까지 바라지는 않고요. 어느 카페에 가서 좋아하는 곡을 신청할 정도만 되어도 좋지 않을까 싶네요. 그런데 사실 재즈를 처음 듣는 분이 한 연주자나 보컬에 빠져 그 앨범을 쭉 듣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무리 좋아도 좀 질릴 수가 있죠. 예를 들어 엘라 핏제랄드의 경우 그녀가 남긴 앨범이 최소 70장은 되거든요. 그것을 다 듣기에는 부담이 있죠.

그럴 때는 그녀의 노래 가운데 마음에 드는 곡 하나를 잡아서 다른 보컬이나 연주자의 곡을 들어보면 됩니다. 예를 들어 <Ella & Louis> 앨범에 수록된 ‘Cheek To Cheek’같은 곡이 좋다면 이 곡이 담긴 다른 앨범을 찾아보는 것이죠. 한번 구글에 ‘Cheek To Cheek’을 입력해 보세요. 아마 엘라 핏제랄드와 루이 암스트롱 말고 다른 보컬이나 연주자들의 버전이 검색될 것입니다. 그 곡들을 하나씩 들어보세요. 그러면 같은 멜로디라도 보컬이나 연주자에 따라 무척 다양한 분위기, 색채를 띨 수 있음을 알게 되실 겁니다.

문: 예. 한번 해보겠습니다.

답: 예. 편하게 한번 들어보시고 다음 시간에 그 느낌을 말해주세요.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3 COMMENTS

  1. “재즈 감상의 출발점이 되는 단 한 장의 앨범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앨범이 감상의 출발점이 될 수 있고 종착점이 될 수 있으니까요.” 제일 와닿는 말입니다.

    제가 재즈 처음 접할 때 생각나게 하기도 하고, 내용도 흥미롭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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