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에반스(Bill Evans 1929. 8.16 – 1980. 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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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피아노의 역사를 바꾸었던 내성적 연주자

 

피아노 연주자 빌 에반스 하면 나는 창백하고 여린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이런 인상은 음악 이전에 그의 외모 때문에 생겼다. 내가 빌 에반스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그의 1959년도 앨범 <Portrait In Jazz>를 통해서였다. 이 앨범은 정장을 차려 입고 머리에 기름을 발라 2대 8 가르마를 타고 안경을 낀 말끔한 빌 에반스의 정면 모습을 표지로 사용하고 있다. 앨범 타이틀이 말하는 ‘재즈의 초상’이 빌 에반스 자신이라는 듯 말이다. 어찌 보면 재즈 연주자 보다는 다소 차가운 이미지의 회계사나 증권 전문가에 더 가까운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나는 이 모습에서 조금만 건드리면 깨질듯한 민감하고 세심한-어쩌면 소심할 수도 있는-남자를 느꼈다. 게다가 입을 굳게 다문 그의 표정에서는 이런 유약함을 감추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막상 그가 제시한 재즈의 초상은 그렇지 않았다. 기대 이상의 힘, 열정이 연주를 이끌고 있었다. 그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 잘못된 셈이다. 하지만 다른 앨범들을 하나씩 듣게 되면서 나는 내 판단이 맞았음을 느끼게 되었다. 확실히 그는 내성적인 연주자였다. 물론 그 또한 빠른 템포 위를 활기차게 질주하는 연주를 하기도 했지만 그의 매력은 섬세하고 여린 연주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따라서 빌 에반스의 연주는 기교의 측면이 아닌 정서의 측면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에게 기교는 ‘연주자의 생각을 악기를 통한 소리로 전환시키는 능력’이자 ‘정서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건반 위로 옮겨주는 하나의 느낌’이었다.

나는 빌 에반스의 섬세한 내성적 연주자로서의 이미지는 연주 외에 피아노 톤이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피아노 톤은 아트 테이텀, 버드 파웰 등 빌 에반스 이전 많은 연주자들의 귀감이 되었던 인물들의 연주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질감을 지녔다. 투명하고 부서질듯한 질감이 재즈보다는 클래식 피아노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백인 연주자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클래식에 깊은 소양을 지녔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다른 연주자들이 블루스를 기반으로 재즈의 전통을 따르는 연주를 지향했던 것에서 나아가 자신만의 연주를 펼치고 싶어했다. 그래서 연주 곳곳에 클래식적인 면을 첨가하면서 보통 리듬 연주에 충실했던 피아노의 왼손 연주를 멜로디를 연주하는 오른손과 더 밀접하게 연결하면서 혁신적인 연주법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특히 코드의 연결을 통해 그 안에서 은밀한 선율적 느낌을 만들어 내는 왼손 연주는 지금까지도 재즈 피아노 연주의 전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연주자의 내면적 정서에 바탕을 둔 자유로운 연주를 추구했던 그의 연주법은 피아노 연주를 넘어 트리오 연주에 있어서도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그는 리듬에 갇혀 있던 왼손을 해방시켜 오른손과 거의 동등한 수준으로 해방시켰던 것처럼 트리오 연주에 있어서도 피아노와 베이스, 드럼의 관계도 새롭게 규정하고 싶어했다. 그것은 베이스와 드럼이 단순히 리듬을 연주하면서 피아노를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피아노와 동일한 수준에서 연주를 펼치는 것이었다. 그 결과 세 연주자가 동시에 즉흥 연주를 펼치며 긴밀한 대화를 나누는 트리오 연주가 만들어졌다. 지금으로서는 너무나 당연하게 보이는 이 트리오의 모습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것이었다.

이 파격적인 트리오는 베이스 연주자 스콧 라파로와 드럼 연주자 폴 모시앙이 있기에 가능했다. 특히 스콧 라파로의 베이스 연주는 빌 에반스의 피아노를 돋보이게 하는 한편 트리오 연주에 입체감을 부여하는 역할을 했다. 이것은 1961년 6월 뉴욕 빌리지 뱅가드 클럽에서의 공연을 담은 두 장의 앨범 <Waltz For Debby>와 <Sunday At The Village Vanguard>에 그대로 담겨 있다. 하지만 이 트리오의 빛 나는 활동은 빌리지 뱅가드 공연 10일 후 스콧 라파로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막을 내렸다.

많은 사람들은 스콧 라파로가 그리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빌 에반스 트리오가 더 많은 뛰어난 결과물을 만들어 내지 않았을까 생각하곤 한다. 나 또한 그런 사람 중의 하나지만 요즈음엔 어쨌건 빌 에반스의 빛나는 음악은 다른 방식으로라도 그대로 이어졌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실제 스콧 라파로의 사망 이후 빌 에반스는 한동안 연주를 멈추기도 했지만 이를 극복하고 보다 다양한 시도를 했다. 그 가운데 1963년에 녹음한 피아노 솔로 앨범 <Conversation With Myself>는 피아노 솔로 연주의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이 앨범에서 그는 피아노 솔로 연주를 펼치지만 오버 더빙을 통해 왼쪽, 오른쪽 그리고 중앙에서 세 대의 피아노가 동시에 연주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세 연주는 유기적인 대화를 나눈다. 말 그대로 빌 에반스 자신의 내면적 대화인 셈이다.

스콧 라파로의 사망 이후 빌 에반스는 여러 베이스 연주자와 트리오 활동을 했다. 그 가운데 에디 고메즈와 마크 존슨은 각각 빌 에반스의 중기와 후기 활동에 스콧 라파로 만큼의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나는 빌 에반스의 후기 트리오 연주가 스콧 라파로가 있었던 초기 트리오 연주 이상의 음악적 매력과 깊이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기에 마크 존슨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했다고 믿는다.

가끔 빌 에반스의 연주를 들으면서 나는 어떻게 그리 내성적인 연주자가 재즈 피아노의 역사를 바꿀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사실 빌 에반스가 처음부터 역사를 바꾸겠다는 거대한 꿈을 품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다만 그의 진정성이 시대의 요구와 잘 맞았기 때문이었으리라. 어쨌건 이 내성적인 연주자가 남긴 유산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크게 느껴진다. 그가 없었다면 현대 재즈 피아노의 모습은 완전히 다른 모습, 그것도 덜 세련된 모습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 정도다. 특히 빌 에반스-키스 자렛-브래드 멜다우로 이어지는 혁신과 서정이 어우러진 연주자의 흐름이 없었을 것이라 생각하면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대표 앨범 

Waltz For Debby (Riverside 1961)

빌 에반스 트리오의 미학이 가장 잘 드러난 앨범이다. 1961년 뉴욕 빌리지 뱅가드 클럽 공연을 담고 있는 이 앨범에서 빌 에반스는 개인적인 서정미와 함께 피아노-베이스-드럼이 보다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연주를 펼치는 새로운 트리오의 전형을 제시하는 연주를 펼쳤다. 그렇다고 그 연주가 현학적이거나 난해한 것도 아니었다. 아름다운 서정을 바탕으로 새로운 트리오의 미학을 제시했던 것이다. 특히 아장아장 걷는 그의 조카를 보며 만들었다는 타이틀 곡 ‘Waltz For Debby’는 그를 대표하는 곡으로 지금도 사랑 받고 있다. 이 앨범과 아울러 <Sunday at the Village Vanguard>도 듣길 바란다.

Conversations with Myself (Verve 1963)

스콧 라파로의 사망 이후 한동안 빌 에반스는 트리오 앨범을 녹음하지 않았다. 대신 피아노 솔로 앨범을 녹음했는데 이 또한 그의 트리오 연주만큼이나 평범하지 않았다. 그는 먼저 솔로 연주를 녹음하고 이를 들으며 또 다른 솔로 연주를 녹음한 뒤 다시 이를 들으며 세 번째 솔로 연주를 녹음하는 방식으로 앨범을 완성했다. 시간의 흐름 속에 한번에 표현할 수 없었던 자신의 내면을 이런 방식으로 표현한 셈이다. 이 앨범 또한 파격적인 방식으로 제작되었지만 빌 에반스 특유의 서정미로 대중적으로도 큰 사랑을 받았다. 그래서 이후 <Further Conversations with Myself>(1967) <New Conversations>(1978) 등의 유사한 앨범을 녹음하기도 했다.

beThe Paris Concert: Edition One (Elektra 1980)

빌 에반스에 대한 신화나 전설은 주로 초기에 집중되어 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그의 후기 연주는 덜 조명을 받고 있다. 후기에 그의 인기에 힘입어 그가 원하지 않은 만족스럽지 못한 앨범들이 대거 발매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1979년 11월 파리에서 가진 공연을 담고 있는 이 앨범만큼은 꼭 지나치지 말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앨범에서 빌 에반스는 갈수록 투명해지고 서정적인 자신의 연주를 유감 없이 들려준다. 왜 그를 재즈 피아노의 시인이라 부르는지 단번에 이해하게 하는 연주다. 또한 마크 존슨, 조 라바르베라와의 트리오 연주도 상당히 아름답다. 함께 발매된 < The Paris Concert: Edition Two>도 들어보기 바란다.

4 COMMENTS

  1. 제목에 빌 에반스 약력이 잘못되었습니다. 제가 알기론 빌에반스는 29년도 출생에 1980년도에 죽었는데요.

    • 핫 그렇네요.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글을 쓰기 전에 색소폰 연주자 벤 웹스터 글을 썼었는데 양식을 가져오면서 생년월일을 벤 웹스터의 것으로 그대로 두었네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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