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오후 집에서 반바지만 입고 어느덧 차가워진 바닥에 누워 TV를 보았다. 시청 프로그램은 ‘복면가왕’. 프로야구 중계를 보다가 내가 응원하는 팀이 역전하기 어려울 정도로 지고 있기에 재핑을 하다가 보게 되었다.
가면을 쓰고 노래한 가수가 누구인지 맞추려는 패널들과 함께 나 또한 누굴까 하며 시청했다. 그런 중 가수 둘이 듀엣으로 김현철이 차은주와 함께 노래한 “그대니까요”를 노래했다. 그 노래를 듣는 순간 갑자기 가슴이 뭉클했다.
나는 김현철의 곡들을 좋아한다. 표절과 관련한 이런저런 일들을 알고 있고 그 부분 모두에 공감하면서도 그의 곡들을 거부할 수 없다. 그것은 내 인생의 여름의 일부분을 그의 노래, 그의 음악이 장식했기 때문이다. 지금 고급 식당에서 미디엄으로 잘 구운 스테이크를 먹으면서도 어린 시절 카페테리아-일반명사가 아니라 ‘맥도날드’나 ‘롯데리아’처럼 패스트푸드 브랜드였던 것으로 기억된다-라는 곳에서 먹었던 함박스테이크를 그리워하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김현철의 음악은 내 청춘에 있어 첫경험 같은 부분이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여름만큼 뜨겁지 못했던 내 어떤 연애와 관련되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노래는 우리 헤어지지 말자고 하지만 나는 헤어지지 말자고 서로 다짐하는 단계까지 이르지 못했다. 그래서 늘 목이 말랐다.
한편 내가 원곡이 아니라 지금의 남녀가수가 복면을 쓰고 노래한 “그대니까요”에 반응한 것은 그 곡에 대한 좋은 느낌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사운드가 큰 몫을 했다. 도입부의 건반 사운드를 듣는 순간 평온한 가슴이 흔들렸으니 말이다. 유리같이 투명하면서 위태로운 음색의 건반소리는 분명 2015년이 아닌 1990년대-정확하게는 2000년-의 정서를 담고 있다. 그 시대에 유행했던 디스코 바지, 소매가 불룩한 셔츠처럼 말이다.
나는 내가 청춘 시절에 좋아했던 곡들이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도 통할 줄 알았다. 그런 곡들도 물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더라. 노래에 대한 선호를 떠나 사운드 자체에서 이질감을 느끼더라. 그래서 나는 저절로 지난 시대의 사람이 되더라. 이렇게 지금을 열심히 잘 살고 있는데 말이다. 아직도 어제 밤의 이야기처럼 생생한데 모두 지난 여름의 일이라고 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