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50,60년대 하드 밥 사운드에 머물러 있는 앨범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진부해서이다. 당시에 비밥이나 하드 밥은 첨단의 생동감 있는 언어였다. 하지만 이제 그 언어는 프리 재즈, 퓨전 재즈, 포스트 밥 등이 나오면서 다소 화려한 추억이 되어버렸다. 1950,60년대를 향한 연주자들 대부분도 지난 시절에 대한 애착을 바탕으로 그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는 수준의 연주를 주로 펼치는 것 같다. 그렇다 보니 익숙함만 있을 뿐 꼭 그 연주와 앨범을 들어야 하는 새로움은 별로 없다. 그래서 그럴 바엔 차라리 그 시대에 녹음된 명인들의 앨범을 듣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곤 한다.
하지만 가끔은 이러한 진부함을 탈피한, 익숙한 새로움을 담은 앨범이 찾아올 때가 있다. 진 김으로 활동하고 있는 트럼펫 연주자 김진영이 이끄는 재즈 유닛의 이번 앨범이 그렇다. 이 앨범은 제로백이 2, 3초 밖에 되지 않는 스포츠카처럼 질주하는 첫 곡에서부터 감상자를 치열했던 하드 밥 시대로 이끈다. 이어지는 질주감 강한 ‘Chickqueen Mad’도 작곡에서부터 상당히 복고적인 울림을 준다. 이것은 전통적인 블루스 형식을 가져 온 마지막 곡 ‘Yes’까지 이어진다.
그런데 이 복고적인 느낌은 지난 시대에 대한 향수로 그치지 않는다. 1950, 60년대에 발매되었다고 해도 평범한 관심이 아니라 색다른 관심을 받았을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다. 하드 밥의 전형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그 안에 퀸텟의 개성을 드러낸다. 이것은 트럼펫 연주자를 중심으로 한 연주자들이 하드 밥을 좋아하고 즐기는 수준을 넘어 열심히 파고 또 판 결과이다. 그래서 내가 하드 밥 시대에 살았다면 리 모건보다 먼저 ‘The Sidewinder’를 연주하거나 소니 클락보다 먼저 ‘Cool Struttin’’’을 연주했을 텐데 같은 부질없는 소망이 아니라 그 시대에 내가 살았다면 나는 주어진 재료로 이런 곡을 쓰고 이렇게 연주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가득한 음악을 만들 수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러한 자세를 지니기는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자신의 연주에 대한 확신은 물론 함께 하는 연주자들 간의 신뢰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First One’에서 앞만 보고 질주할 때나 ‘Back’n’Home’에서처럼 느긋하게 나아갈 때 그리고 ‘Feminine’에서처럼 은근히 멋을 부릴 때에도 다섯 연주자들은 각자 필요한 공간을 점유하는 한편 동료 연주자들과도 긴밀한 호흡을 이루며 견고한 사운드를 만들어 낸다. 그것이 이 퀸텟이 익숙하면서도 신선한 질감을 만들어 내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는 김진영과 네 연주자들이 단지 하드 밥 시대로 시간여행을 하려고만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성 보컬 ‘EZ’의 허밍이 가세해 보다 현대적인 느낌을 주는 ‘Rain Walk’이 있듯이 이들은 2015년 현재를 잊지 않았다. 그래서 이 앨범 이후 펼쳐질 김진영과 재즈 유닛의 음악에 대한 새로운 기대를 갖게 한다. 그리고 나아가 보다 현대적일 수도 있는 다섯 연주자가 과거에 시선을 둔 연주를 하게 된 이유는 하드 밥이라는 오래된 언어로도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음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늘 새로운 음악을 찾아 앞으로 전진하던 키스 자렛이 1983년 결성한 스탠더드 트리오를 통해 전통적인 어법으로도 무수히 새로운 연주를 할 수 있음을 입증한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