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내가 재즈 피아노 연주자였다면 아마드 자말, 오스카 피터슨, 버드 파웰, 피니어스 뉴본 주니어 등을 모범으로 삼았을 것 같다. 평소 나의 성향을 파악한 사람들은 이 말에 다소 의아한 반응을 보일 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아마도 빌 에반스 계열의 차분하고 서정적인 연주가 돋보였던 연주자를 모범으로 삼았으리라 생각할 것이다. 나 또한 이를 부정하지 않겠다. 실제 내 성향에는 빌 에반스가 더 어울린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감상자의 입장에서이고 연주자라면 내 안에 담긴 질주본능이 튀어나올 것 같다. 운전대만 잡으면 내 앞에 다른 차가 나타날 때까지, 그 미지의 차를 향해 무조건 질주하곤 하는 그 성향이 연주에 드러날 것 같다. 그래서 피아노 앞에 앉자마자 질주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것도 차선을 바꾸듯 스윙하면서.
느린 템포의 연주에서도 마찬가지다. 떠난 연인의 추억을 꼼꼼히 기억하고 묘사하는 연주보다는 사랑의 느낌만 남고 세세한 추억은 기억나지 않아 안타까운 마음을 술 한잔에 삭히고 허탈한 웃음을 짓는 취객처럼 뒤뚱거리는 연주를 선택할 것이다. 그래서 부단히 왼손을 움직일 지도 모른다.
언급한 인물들의 연주를 듣다가 들었던 생각이다.
피니어스 뉴본 주니어는 국내에서도 조금은 더 주목 받아도 될만한 연주자라고 생각한다. 버드 파웰, 오스카 피터슨 같은 연주자를 좋아한다면 피니어스 뉴본 주니어의 연주는 정말 매혹적일 것이다.
오늘 피아노 연주자가 1969년 레이 브라운, 엘빈 존스와 함께 한 앨범 <Harlem Blues>에 수록된 ‘Little Girl Blue’를 들었다. 안정적인 템포 속에서의 손가락 놀림이 그 자체로 시원한 곡이다. 이런 연주를 펼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 아닐까?
모순적으로 보이는 서로 다른 모습이 공존한다는 것은…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지요.^^
느낌만 남은 연주가 오히려 듣는 사람입장에서는..
섬세한 기억을 떠올리게 해주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