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면 바로 어제 만났던 것처럼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만 만나기 전까지는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이 경우 나는 내 기억력의 문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만큼 그 사람이 인상적이지 못했다고 말하면 할 말이 없긴 하지만.
음악도 그렇다. 들을 땐 좋은데 듣고 나면 기억이 나지 않는 음악이 많다. 특이하게도 옛날, 그러니까 적어도 10년 전에 들었던 음악보다 그 이후에 들은 음악에서 더 많이 발생한다. 내가 듣는 음악의 양이 절대적으로 많아서 개별 음악에 상대적으로 덜 신경을 쓰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음악이 내 뇌의 해마조직까지 도달할 시간을 주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 두고 두고 들어야지 하지만 책상에 쌓이는 새 앨범 때문에 다시 들을 기회를 얻디 못하는 좋은 음악들이 많다. (물론 그만큼 인상적이지 않은 음악도 많다.)
이타마라 쿠락스가 기타 연주자 주아레즈 모레이라와 듀오로 녹음한 2009년도 앨범 <Bim Bom>도 그런 경우다. 조앙 질베르토를 주제로 한 앨범으로 차분한 기타 연주와 담백한 보컬의 어울림이 참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이내 나는 이 앨범을 잊었다. 다른 앨범들이 이 앨범의 기억을 지웠다. 그래서 그 무더운 여름 밤이나 지난 주에 갔던 남해의 바닷가에서 들으면 더욱 좋았을텐데 그럴 생각을 하지도 못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이타마라 쿠락스가 페이스북 메신저로 짧은 인사를 건냈다. 리뷰 고맙다고. <재즈 스페이스> 리뷰를 보았나보다. 사실 나는 사이트를 새로이 준비하면서 그녀의 앨범 리뷰는 다 버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몇 장 안되지만 들었던 앨범들이 아주 평이하거나 내게 만족을 주는 스타일의 음악을 담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아한 마음에 검색을 해보니 <Bim Bom>이 나왔다. 거의 기계적으로 리뷰를 옮기는 과정에서도 그녀의 다른 앨범과 달리 이 앨범에서 받았던 좋은 느낌이 앨범 리뷰를 버리지 않게 했던 모양이다.
아무튼 그 덕에 다시 이 앨범을 듣는다. “Hô-Bá-Lá-Lá”가 점심 후 나른해진 나를 감싼다. 절로 오-바-라-라~하고 마음으로 노래를 따라 해본다. 오후가 편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