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렉트로 재즈가 새로운 시대를 개척할 재즈로 등장한 지도 어느덧 15년이 지났다. 1990년대 말 처음 일렉트로 재즈가 등장햇을 때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재즈가 강박적인 리듬과 단순 동기의 반복으로 이루어진 테크노 음악과 만난다는 것이 가능할까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일군의 연주자, DJ 들은 이것이 가능함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생각만큼 일렉트로 재즈는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 다만 팝적인 면을 가미한 누 재즈의 인기에 영향을 주었을 뿐이다.
부게 베셀토프트는 일렉트로 재즈의 탄생에 큰 역할을 했다. 그의 1996년도 앨범 는 일렉트로 재즈의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기억된다. 이후 그는 Jazzland 레이블을 직접 운영하며 비슷한 성향의 앨범들을 제작했다. (물론 다른 성향의 앨범도 제작했다.) 이런 그가 이번에는 자신의 친한 동료들을 불러 새로운 앨범을 녹음했다. 그런데 토룬 에릭센, 비디 벨 등의 익숙한 이름과 함께 에릭 트뤼파즈가 함께 하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 이 트럼펫 연주자 또한 일렉트로 재즈의 탄생을 이끈 주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녹음된 앨범은 연주자들의 음악적 성향이 너무 잘 맞았는지 아주 새로운 무엇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익숙한 일렉트로 재즈의 그 모습을 다시 보여준다. 두툼한 질감으로 시종일관 사운드의 기저를 장악하는 강박적인 리듬 위로 에릭 트뤼파즈의 트럼펫과 일한 에르사힌의 색소폰 솔로가 흐른다. 그리고 토룬 에릭센과 비디 벨의 노래가 등장하기도 한다. 이 솔로의 등장에 따라 곡마다 분위기가 달라진다. 앨범 타이틀처럼 이런저런 친구들이 모인 앨범들은 사실 앨범을 관통하는 일관성이 부족한데 이 앨범도 그렇다.
그러나 ‘Play It’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일렉트로 재즈가 마일스 데이비스의 70년대 퓨전 재즈와 강한 연관성을 보여준다면 이 곡은 그 이전 모달 재즈 시절의 그림자를 엿보게 한다. 사실 강박적으로 반복되는 패턴 위에서 솔로를 펼치는 것은 모달 재즈와 큰 차이가 없다. 그것을 이 곡은 느끼게 해준다.
또한 앨범은 일렉트로 재즈가 누 재즈와는 다른 것임을 재인하게 한다. 음악적으로는 다루는 재료는 같다. 하지만 요리하는 방법론에 있어 일렉트로 재즈가 보다 재즈적인 면을 유지한다. 그것을 이 앨범에서 느낄 수 있다.
일렉트로 재즈는 강박적인 전자 리듬에 갖혀 더 이상의 발전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번 앨범도 그런 면이 있다. 조금은 더 새로운 일렉트로 재즈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