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문답1 – 꼭 명반을 들어야 하나요?

안녕하세요. 앞으로 여러분과 함께 재즈에 관한 여러 궁금증을 살펴볼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 그러면 어떤 궁금증부터 살펴볼까요?

문: 이 코너를 진행하는 낯선 청춘씨는 물론 재즈 관련 글을 쓰는 많은 분들이 재즈 명반 50선, 100선 뭐 이런 식으로 꼭 들어봐야 할 재즈 명반들을 소개하곤 합니다. 이런 글들을 읽을 때마다 과연 저 앨범들을 다 들어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곤 합니다. 정말 그 앨범들을 다 들어야 재즈를 좀 들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인가요?

답: 예. 재즈를 좀 들어볼까 하는 분들이 제일 먼저 만나는 어려움이 흔히 말하는 명반들이죠. 무슨 필수 교과목처럼 말하는데 그 수는 왜 그리도 많은지, 추천된 앨범들을 다 듣자니 경제적 어려움은 물론 시간도 많이 필요해서 감상을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또 듣다 보면 왜 명반으로 불리는지 딱히 이해가 되지 않는 앨범들도 만나게 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명반이라고 해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명반들을 무조건적으로 따라 듣다가 재즈에 대한 흥미를 잃곤 하죠. 아! 재즈는 정말 어려운 것이구나, 나는 재즈를 들을 수 없겠다, 재즈랑 나는 맞지 않는 것 같아 하는 아쉬움 속에서 말이죠. 그래서 결론부터 말씀 드리면 저는 꼭 명반이라 불리는 앨범들을 공부하듯이 일부러 찾아 들을 필요는 없다고 하고 싶습니다.

문: 명반부터 들을 필요가 없다면 그런 글을 왜 쓰신 겁니까? 필요 없는 것이라면서요.

답: 그렇게 되나요? 모순 같지만 그렇다고 명반 리스트가 필요 없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앨범들 전부를 다 들으려 할 필요가 없다는 거죠. 하나씩 듣다가 어느덧 추천 리스트 100장을 다 듣게 된다면 모르겠지만 여러 권으로 이루어진 무슨 대하 소설 읽듯이 하루에 한 장씩 100일동안 들을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분명 그리 하시는 분들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단기! 속성! 하는 식으로 한 공부는 금방 기억에서 사라지잖아요? 그것처럼 매일 한 장씩 100일간 100장의 앨범을 듣는다면 무엇을 들었는지 잘 모르겠다는 어지러움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저도 명반은 아니고 거의 매일 새로 발매된 앨범들을 듣고 있는데요. 나름 재즈에 익숙한 사람임에도 들었다는 사실 외에 음악이 기억에 남지 못하는 상황에 종종 빠지곤 합니다. 그래서 저는 마음에 드는 한두 장의 앨범을 여러 번, 많이 듣는 것을 더 권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수록 곡의 멜로디 연주는 물론 곡들의 순서, 연주자들, 앨범 표지, 라이너 노트, 녹음 일시, 장소 등이 다 기억에 남을 정도가 되면 그와 유사한 앨범을 찾아 들어보는 식의 감상을 추천합니다.

문: 그렇다면 어떤 앨범으로 재즈 감상을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요?

답: 물론 자기 마음에 드는 앨범부터 듣는 것이 좋겠죠? 나한테 맞는 앨범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구요? 사실 여러분 스스로가 자기 취향을 모른다면 저도 어떤 앨범을 들어라 추천하기 곤란합니다. 여러분의 취향이 다양한 것처럼 재즈 또한 다양한 모습과 개성을 지니고 있거든요. 제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여러분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반대도 가능합니다. 여러분이 친한 친구의 소개팅을 주선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어떤 사람을 소개시켜줄까 라고 물었는데 친구가 그냥 느낌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면 너무 막막하지 않던가요? 자신의 느낌은 자신만 아는 거잖아요? 그냥 몸매가 좋은 사람, 얼굴이 예쁜 사람을 소개시켜 달라고 하면 오히려 나름 그에 걸맞은 사람을 소개시켜 줄 수 있을 겁니다.

문: 예 그렇죠. 하지만 재즈의 세계에 이제 들어가려는 사람에게 자기 느낌에 맞는 앨범을 스스로 찾으라는 말은 느낌 좋은 사람만큼이나 막연합니다.

답: 그래도 시간을 투자하면 찾을 수 있습니다. 한 장씩 차근차근 들어보는 거죠. 사실 여기서 재즈 감상의 어려움이 시작됩니다. 다른 장르의 음악은 내가 원하기도 전에 자연스레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많은데 재즈는 그렇지 않거든요. 그래서 직접 돈을 들여 들어봐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돈을 들여서 듣더라도 그 음악이 마음에 들면 괜찮은데 그렇지 않으면 바로 관심이 사라지죠. 하지만 어쩌겠어요. 그게 한국에서 재즈가 처한 현실인걸요.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재즈를 고급스러운 음악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음악을 들어봐서가 아니라 경제력이 요구되기 때문일 겁니다.

문: 그렇다면 저처럼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못한 사람은 그냥 일찌감치 감상을 포기해야겠는데요? 돈 때문에 재즈를 들을 수 없다니 안타깝네요.

답: 그렇다고 너무 그리 성급하게 판단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언급한 재즈 명반 리스트가 있잖아요? 너무나 많은 재즈 앨범들 가운데서 나를 위한 앨범을 찾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죠. 하지만 100장 아니 50장의 앨범에서 나를 위한 앨범을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겠죠? 그리고 무엇에 관심을 갖고 열정적으로 빠져보기 위해서는 적어도 50장의 앨범을 듣는 정도의 노력은 필요하잖아요? 그럼에도 조금 더 일찍 내게 맞는 재즈를 찾기 위한 팁을 말씀 드리면 지금 내가 재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살펴보기를 바랍니다. 왜 나는 재즈에 관심을 갖고 있는가? 재즈에 대해 나는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는가를 먼저 생각하고 여러 추천 글들을 보고 앨범을 선택하시면 조금이나마 빨리 재즈 속으로 들어가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혹시 마음에 들지 않는 앨범을 연달아 만나게 되더라도 실망하고 ‘재즈는 역시 나랑 맞지 않나 봐’하면서 감상을 포기하지 마세요. 그것은 단지 수많은 재즈의 모습 가운데 하필이면 나랑 맞지 않은 부분을 먼저 만나게 된 것일 뿐이니까요? 그 앨범이 나와 맞지 않는 것이지 재즈가 나와 맞지 않는 것은 아니란 말입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맞지 않다고 생각한 앨범까지 좋아하게 될 겁니다.

문: 결국 내 취향을 정확히 판단하고 그에 맞는 재즈 앨범을 만나는 것이 중요한 것이군요.

답: 그렇죠. 아까 저한테 리스트에 올라 있는 수 많은 명반을 다 들어야 하냐고 물으셨죠? 그 질문을 뒤집어 보면 여러분이 무의식적으로 명반이라니까 꼭 그 앨범들을 다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치 수험생이 필수 과목을 공부하는 듯한 부담감을 느꼈기에 저한테 그런 질문을 했다는 거죠. 실제 재즈를 처음 들으려 하시는 분들이 그런 생각으로 재즈를 듣기 시작했다가 바로 포기하곤 하죠.

하지만 재즈는 실로 다양한 스타일이 공존합니다. 뉴 올리언즈 재즈, 비밥과 하드 밥, 쿨 재즈, 프리 재즈, 아방가르드 재즈, 퓨전 재즈, 스무드 재즈, 일렉트로 재즈, 누 재즈 등 어떻게 그리 세세하게 분류하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너무나도 많은 재즈가 있습니다. 게다가 경우에 따라서는 같은 재즈라 하지만 서로 상반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팝 성향의 스무드 재즈와 하드 밥 스타일의 재즈는 서로 어울리기가 어렵습니다. 스무드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이 하드 밥 재즈로 자연스럽게 넘어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죠.

따라서 중요한 것은 나에게 맞는 앨범을 찾고 나아가 내가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는 재즈를 찾는 것입니다. 모든 명반을 들으려 하기 전에 한 두 장의 앨범을 집중적으로 듣는 것이 더 좋다고 말씀 드렸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문: 그렇다면 모든 재즈를 다 들을 필요가 없다는 것인가요? 만약 하나의 스타일만 들으면 재즈를 제대로 듣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요? 감상자가 아무리 그 스타일을 좋아하고 편안하게 생각한다고 해도 마음 한 쪽에는 무엇인가 미진한 느낌이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재즈를 다 알지 못한다는 아쉬움 말입니다.

답: 흠. 먼저 모든 재즈를 다 들어야 하냐는 질문에는 일단은 그렇다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머무르라고 말씀 드리고 싶지도 않습니다. 어차피 하나의 스타일에 머무르다 보면 다른 스타일에 관심을 갖게 되는 시기가 옵니다. 취향은 변하니까요. 그 취향의 변화에 따라 내게 어울리는 재즈도 변하게 됩니다. 제가 한 스타일의 재즈를 들으라고 했던 것은 재즈를 잘 몰랐던 분들이 일단 재즈에 익숙해지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해서 한 말이었어요.

제가 그랬습니다. 지금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듣고 좋아하고 싫어하고 그러지만 처음에는 하나의 스타일만 고집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색소폰과 ‘Autumn Leaves’였던 것 같네요. 색소폰 음색에 매료되어 색소폰 연주자들을 하나 하나 찾아 들었고 또 당시 제가 좋아했던 ‘Autumn Leaves’를 기준으로 삼아서 이 곡을 연주한 연주자를 우선적으로 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색소폰 연주자간의 차이, 재즈의 다양한 스타일의 차이를 알 수 있었고 그러면서 재즈를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두 번째 질문인 하나의 스타일만 들으면 어딘가 미진한 느낌이 들지 않을까에 대해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지만 결국 자연스레 재즈의 모든 것을 듣게 되는 시기가 찾아오니 성급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문: 예. 재즈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금은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씀이군요. 이렇게 비교적 긴 시간을 요구하기에 재즈가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되네요. 그런데 천천히 시간을 두고 재즈를 듣는다고 할 때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나 감상의 목표 같은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재즈를 감상할 때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 있을까요? 물론 나 자신의 취향을 파악하고 그에 어울리는 재즈를 듣는 것이 우선이라 하지만 말이죠.

답: 아까 제가 재즈는 실로 다양한 모습을 지녔다고 말씀 드렸듯이 하나의 측면에서 재즈를 감상하기보다는 보다 복합적으로 감상을 해야 할 것 같네요. 이를 위해서는 하나의 곡을 여러 번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서 하나씩 곡에 담긴 재즈의 모습을 알아가는 거죠. 일단 처음에는 곡에 대한 전체적인 나의 느낌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 보세요. 왜 나는 이 곡이 마음에 드는가? 아니면 반대로 왜 나는 이 곡에서 아무런 느낌을 받지 못할까? 를 생각해 보는 거죠. 이렇게 전체적인 느낌을 생각했다면 그 다음에는 멜로디와 리듬을 나누어서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어디까지가 테마고 그 테마를 어떻게 변형해 솔로로 발전시키는지를 살펴보고 그 흐름이 어떤 이야기로 내게 다가오는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리듬 섹션에 집중해 베이스와 드럼의 반복적인 움직임을 살피고 그것이 멜로디나 솔로 연주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살피는 거죠. 그렇게 전체부터 부분으로 나누어 몇 차례 듣다 보면 저절로 곡의 구조가 귀에 들어옵니다. 비록 음악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어도 인트로가 어디까지며 테마가 제시 된 후 연주자들의 솔로가 이어져 다시 테마로 돌아오는 그 과정이 어떠한지 알 수 있게 됩니다. 그 때 같은 곡의 다른 버전을 찾아 들어보면 더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림 감상을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처음에 그림을 보면 전체적인 느낌이 오잖아요? 그 뒤 어떻게 그렸다 조금 더 그림에 가까지 가서 천이나 물감의 성질, 색감 등을 하나씩 살피잖아요? 재즈 감상도 그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 그렇군요. 그런데 말은 쉽지만 막상 하려 하면 어려움을 느낄 것 같습니다.

답: 맞습니다. 실제 감상에서는 생각과 달리 멜로디가 잘 들리지 않으며 리듬 또한 너무 복잡해 그 패턴을 파악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곡이 조금이라도 마음에 든다면 몇 차례 더 들으면 파악이 될 것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곡을 들으면 그만이겠죠?

문: 싫으면 다른 곡을 들어라. 다시 시간의 문제로 돌아오네요.

답: 그렇게 되나요? 아무튼 오늘은 여기까지 이야기를 나누죠. 감사합니다.

5 COMMENTS

  1. 재즈를 한 15년 이상 들어왔던 지금은 자주 못듣게 되는 사람인데
    명반을 사실은 들을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비슷한 예시를 들자면

    핸드폰을 사용하실때 설명서를 정독하시는분 그냥 대충보시는분 생각날때마다 찾아보시는분이 있습니다.
    재즈도 역시 정독하시는분들이라면 명반들을 추전하고 대충보시는분들은 아주대중적이고 쉬운 음악부터
    하시고 생각날때마다 찾아보시는분들은 제가 생각하시로는 장르를 하나 선택해서 차근히 들어보세요

    모든 경험과 이미지는 처음 접하는 것에 따라 좌지우지 되는경우가 많다고 봅니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젖어들어가는게 가장 좋을듯 싶네요

    • 네. 저도 그런 차원에서 말씀을 드린 것이었네요. ㅎ 또한 대중성을 찾기 전에 자신의 취향을 먼저 생각하는 것도 필요하구요. ㅎ 말씀 고맙습니다.

  2. “지금 내가 재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살펴보기를 바랍니다”란 말이 정말 와닿습니다.
    재즈가 특정 소수적 문화와 연결되기때문에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현실을 꼬집은 것 같아, 은근 후련함도 느끼게 됩니다.
    재즈도 음악이죠. 전 팻 메스니 음악듣고 한순간 매료되었지만, 그게 재즈인줄 몰랐었습니다.
    나중에서야..아…재즈의 장르도 이렇게 다양하구나…알게 되었거든요.

    이 글은 재즈를 처음 듣는 모든 분들이 읽었으면 좋겠네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