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윈터 & 윈터의 앨범들은 자켓 때문에 구입의 욕구를 느끼게 되곤 한다. 특히 나처럼 예쁜 것을 무지 좋아하는 속물에게는 음악만큼이나 이 라벨의 자켓은 구입 욕구를 충동한다. 이번 앨범에는 콘트라 베이스, 첼로, 비올라로 이루어진 이 트리오의 음악에 제리 제니욱(Jerry Zeniuk)이라는 화가의 수채 물감의 화려한 색들이 흐드러지게 드러나는 음악에 대한 그림이 아무런 설명없이 여러 장이 들어있었다. 자켓 그림처럼 연필선을 그대로 드러내는 사각의 틀 안에 아무런 형상을 대신하지 않는 색의 덩어리가 음악의 추상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 트리오의 첼로 연주자 에른스트 라이지거의 윈터 & 윈터 앨범 <Colla Parte>에서는 일러스트 그림이 돋보였었던 기억이 난다.
그냥 이 앨범에서 첼로를 연주하는 에른스트 라이지거의 이름이 낯익어 듣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그래도 여러 장의 앨범을 제작한 고정적인 트리오였다. 나는 에른스트 라이지거가 리더일 것으로 생각했으나 그것도 아닌 것같다. 음악은 뭐랄까? 클래식과 즉흥 음악의 중간에서 그 틈을 파고들려고 한다는 느낌이다. 일전에 샘 리버스가 토니 하이마스와 함께 파리에서 매년 겨울에 열리는 음악 축제 Son d’Hiver(겨울의 소리)에서 직접 현악과 함께 들려주었던 <Eight Day Journal>(NATO,1998)의 눅눅한 분위기나 배리 가이가 들려주었던 고전과 현대가 교차하는 현악을 떠올리게 한다. 음악적 이미지로는 미국 화가 호퍼의 그림처럼 긴장은 있으면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오후나 앨범 제목처럼 겨울날 오후의 흐림을 그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앨범 전체는 세 번의 1분도 채 안되는 ‘Winter Theme’과 8분 가량의 ‘Winter’가 전체 분위기를 지배하는데 그리 난해하지 않은 1900년대 초 중반의 클래식 스타일을 반영하면서 동시에 즉흥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들을 수 있다. 즉, 최소한 하나의 악기는 곡의 흐름을 따라서 즉흥 연주를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앨범의 후반부가 마음에 드는데 첼로와 베이스의 피치카토가 비올라를 배경으로 스윙하는 ‘Blauwe Sliert’같은 곡이 재미있게 펼쳐진다. 그리고 바로 앞에 배치된 ‘Wedding Music’과 ‘En Deuil(초상 중)’의 대비도 인상적이다.
소리는 이 앨범이 녹음된 빌라 메디치 굴리니가 어떤 공간인지는 모르지만 클래식적인 느낌으로 녹음되었다. 기존의 어쿠스틱을 고려하고 믹싱에서 최소한의 손질을 하는 방식으로 녹음되었다고 유추된다. 하지만 이 라벨이 늘 자랑하는 96kHz, 24bit 녹음과 마스터링이 주는 차이는 그리 많이 드러나지 않는다. 아직 우리는 44.1kHz, 16bit로 음악을 듣는 경우가 일반 적이지만 녹음과 마스터링에서 96kHz, 24bit을 사용하면 소리가 훨씬 콤팩트한 느낌이 드는데 이 앨범은 믹싱 잘 한 44.1kHz, 16bit정도의 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비교를 위해서 이 달에 함께 소개하는 파올로 프레주의 <Melos>앨범과 비교해서 들어보았는데 공간적으로는 이 앨범이 여유로운 느낌을 주고 있지만 다이나믹한 면은 <Melos>가 훨씬 더 좋게 들렸다. 한편 세 악기의 교묘한 위치 배정-가운데를 중심으로 약 15도 간격으로 세 악기를 배치하기-은 대부분 성공적이었으나 각 악기들이 고음이나 저음에서 다른 악기의 음역과 겹칠 때는 좀 부드럽지 못한 분위기를 만들어내었다. 간혹 이를 해소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악기의 배치를 믹싱 과정에서 조정하지 않았나 하는 의혹이 드는 부분도 있다.
이 앨범을 들으면서 아마 재즈냐?라고 묻는다면 좀 대답이 어려울 수 있겠다. 즉흥이 가미된 현대음악이라는 표현이 이 음악에 더 어울린다고 본다. 그래도 클래식이 아니라 재즈로 정의되는 것을 보면 재즈는 정지된 것이 아니라 늘 새로운 방향을 향해서 움직인다는 것을 증명하는 음악으로 생각할 수 있다. 재즈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있다면 그 질문 자체를 무화시킬 수 있는 음악이랄까? 심한 오버인가?
이 첼리스트에게 매력을 느껴- 저역시 마찬가지로 조금은 윈터&윈터 패키지에 홀려서ㅋ- 여러 음반을 모았습니다만 이 연주자의 발음을 어떻게 해야할지 곤란했었는데 라이지거 였군요. 감사합니다.
이 음반은 저에게 유머를 곁들인 고독하고 쓸쓸한 농담처럼 들렸습니다. 이 연주자와 루이 스클라비의 듀엣음반이 있는데 매우 좋아합니다. 그래서 루이 스클라비의 음반도 구해보려 했으나..아직 순서가 아닌지 아직 그의 리더음반이 없네요.
사실 유튜브같은 매체로 음악 트랙은 확인할 수 있지만 웬지 음반을 구해서 큰 볼륨으로 나만의 공간을 채워야 속이 풀리는 고지식한 팬이라..ㅎ 낯선청춘님의 블로그는 너무 방대한 아티스트들이 넘쳐흘러 저에게는 기쁨과 동시에 고난이기도 합니다. 언제 저 음악들을 맞이 할 날이 올까.하는..ㅎ 그래서 인터넷으로 트랙을 들어 본 후 최대한 엄선하여 음반을 구하고는 합니다. 이베이에서 씨가 마른 음반들은 그래서 더 애타게 기다리기도 하고요. 저같은 소규모 애호가^^;들의 낙이자 숙명같아요. 변변치않은 수입을 쪼개서 또다시 음반을 구하려 헤매이는 이런 행위을 반복하는 것 말이죠..
반가운 음반을 마주치고 이런저런 수다를 또 늘어 놓았네요^^;;; 이런 이야기를 끄적일 수 있는 공간을 허락하신 것에 늘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루이 스클라비는 올 해 몇장의 앨범을 발매했습니다. 그 가운데 여러 연극, 다큐 등을 위해 썼던 음악을 모아 놓은 “Frontieres”앨범을 추천합니다.
새로운 앨범, 새로운 연주자를 만나는 것은 늘 기쁨과 고통을 수반하죠. ㅎ
그래도 기쁨에 더 방점을 두려고 합니다.
한편 새것에 빠지다보면 방향성을 잃고 헤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땐 다시 오래된 재즈로…ㅎ
고맙습니다.
말씀하신 음반은 국내에 수입이 안 된것 같습니다.ㅠ 유튜브로 들어보니 제가 알던 이미지랑은 다르게 굉장히 다채로운 음악을 구사하시네요. ㅎ 저는 뭔가 의표를 찌르고 번득이는 프레이징이란 이미지가 있었는데 이 뿐만 아니라 양식적인 스펙트럼이 넓은 이국적이고 편안한? 곡들도 다양하게 펼쳐지네요. 언젠가 구할 수 있는 기회가 닿기를 바라며.. 감사합니다~^^
아 루이 스클라비는 참 다양한 색을 지닌 연주자입니다.
그래도 기본은 자유 즉흥 연주쪽 연주자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앨범마다 다양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