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dow Steps – Pierre Favre (ECM 1996)

pf음악을 단순하게 말한다면 시간을 분할하는 다양한 단위의 음들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양한 악기들에 의해 표현된다. 그러나 타악기는 그 자체로서는 시간의 분할을 표현할 수 있지만 음의 높낮이를 표현하지 못한다. 게다가 각 분할된 시간의 길이도 표현하지 못한다. 타악기 연주 악보가 음표로 표현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실례일 것이다. 그러므로 타악기가 시간의 분할을 표현한다기보다는 시간이 분절되는 한 순간을 표현한다는 것이 올바를 것이다. 그래서 전체 음악에서 타악기는 박자의 지표로서의 역할이 무엇보다 우선적이었다.

이처럼 멜로디를 표현할 수 없다는 한계가 타악기 연주자들에게는 일종의 콤플렉스로 작용했을지 모른다. 그래서 인지 의외로 타악기 연주자들이 만든 곡을 들어보면 다른 연주자들의 곡보다 멜로딕하고 리리컬한 면이 강조되었음을 발견하게 되곤 한다. 타악기 연주자 피에르 파브르의 이 앨범 역시 무엇보다 서정성이 더 많이 드러난다. 그렇다고 착 달라붙는 멜로디가 앨범을 채우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피에르 파브르가 연주하는 타악기는 단속적인 소리들을 들려주지 않는다. 면을 파고드는 공간적인 소리들을 들려준다. 그리고 그 공간적인 소리들은 섬세하고 다양한 뉘앙스와 색으로 음악에 입체감을 불어 넣는다. 앨범에 그려진 세밀한 선들의 조합처럼 순간의 울림이 끊임없이 파장을 형성함으로서 하나의 면을 형성해 가는 그런 방식으로 피에르 파브르는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러기에 시간적 분할을 나타내는 요인들은 뒤로 물러선다. 피에르 파브르가 만들어 내는 시간의 분할은 어느 순간의 점이 아니라 유동적인 흐름의 연속이다. 이런 분위기는 무엇보다 첫 곡 ‘Snow’에서 가장 잘 느껴진다.

이런 선보다 면적인 분위기가 지배하는 것은 단지 파브르의 타악기에 의해서만은 아니다. 여기에 데이빗 달링의 첼로가 선적인 면이 강한 악기임에도 동시에 공간을 창출해 내며 피에르 파브르의 타악기와 섞인다. 사실 개인적으로 데이빗 달링을 현재 재즈 연주자들 중에 공간에 대한 이해가 가장 뛰어난 사람으로 평가하고 있는데 이 앨범에서도 그런 면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그의 솔로는 분명 공간을 가르는 선임에도 동시에 사방으로 확산되는 소리를 들려준다.

사실 타악기나 첼로에 의해 형성되는 공간적인 부분은 단순히 연주적인 측면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ECM을 특징지우고 있는 잔향의 사용에 의해서 가능해 진 것이다. 그렇다고 이 앨범을 녹음한 얀 에릭 콩쇼그나 제작자 맨프레드 아이허에 의해서 음악이 새롭게 바뀌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두 연주자가 이미 악기 이상의 사고를 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연주자 스스로가 음향적 효과를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연주에 반영함으로서 타악기와 첼로의 표현 능력을 확장시키고 있다.

시간적인 면은 일반 기타의 음색을 들려주는 스티브 스왈로우의 베이스 기타에서 더 잘 드러난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 강조되고 있지는 않다. 스티브 스왈로우의 베이스는 각 곡의 한 가운데서 규칙성을 부여하며 동시에 긴장과 이완을 번갈아 형성한다. 여기에 잔잔한 물처럼 케니 휠러의 트럼펫과 로베르토 오타비아노의 색소폰이 공간에 물감이 번지듯이 흐른다. 이 두 사람은 서로 대화를 하면서-간혹 데이빗 달링의 첼로가 가세할 때도 있다.- 자신의 솔로를 진행시키는데 결코 피에르 파브르가 만들어 내는 공간을 벗어나지 않는다. 심지어 이들도 믹싱 당시 자신들의 악기의 소리에 어택을 줄이는 작업을 하지 않았을까 의심을 할 정도로 피에르 파브르의 공간에 안주한다. 특히 첫 곡’ Snow’에서 펼쳐지는 이들의 연주에서 이런 점을 강하게 느낄 수 있다.

끝으로 마지막 곡 ‘Passage’를 특별히 언급한다. 로베르토 오타비아노가 빠지고 그 자리를 스티브 스왈로우의 베이스 기타가 대신해 케니 휠러와 대화를 해 나가는데 무척이나 처연하게 다가온다. 코끝이 시큼해지는 연주다.

정말 이 앨범이 타악기 연주자가 리드하는 앨범이 맞는 것일까?

6 COMMENTS

  1. 듣다가…소름이… ‘아…’하는 감탄이 절로 납니다.

    ecm 음반을 듣다보면…여기만큼 ‘현대성’을 잘 표현해내는 곳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할때가 있습니다. 그것도 레이블전체가 집단적으로요.

    여운이 오래가네요..

    감상하는데, 눈이 내리네요^^

    • 핫 사시는 곳이 어디신데 눈이 내리나요? ECM 레이블의 C가 Contemporary의 약자인 만큼 현대성은 빼놓을 수 없죠. 다만 놀라운 것은 그 현대성이 지속된다는 것 어찌보면 그냥 탕시간적인 성격마저 지닌다는 것이죠. ㅎ 피에르 파브르의 이 앨범 참 좋습니다. ㅎ

    • 아하! C에 그런 의미가 담겨있을 줄이야…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간을 초월함에도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건 대단한 것 같아요. ECM에 대한 논문을 써도 될듯..ㅋㅋ

      눈은… 여기 재즈 스페이스에 내리는 눈을 말하는 거였어요^^ 작은 눈송이들이 자분자분 흩날리는게 좋으네요..

    • Edition Of Contemporary Music이 ECM의 뜻입니다. 사이트에 제가 이에 관해 쓴 글이 있으니 한번 읽어보세요. ㅎ 재즈 스페이스의 이번 버전을 생각할 때 그냥 ECM 앨범들을 1번부터 쭉 리뷰하는 사이트로 갈까 고민도 했었습니다.ㅎ

    • 오~~~ 저 같은 사람들한테는 ㅋ 완전 베리 굿 아이디어였…네요. 헤헤~

      하지만, 지금 구성도 좋은 것 같아요. 카테고리가 많은 것 처럼 보일수 있지만, 각 포스트의 글을 읽으면 뭔가 특유의 낯선청춘님만 생각이 묻어나서 더 좋습니다.

      참…1번부터 리뷰하는 건, 여기가 아니더라도 꼭 해보셨음 좋겠습니다. 제가 음악쪽은 문외한이지만.. 느낌에 매우 의미있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 ECM 관련해서는 한번 정리하는 작업을 해보려구요. 사실 쓰고픈 글이 너무 많아요…재즈 영화 관련 글도 조금 더 많이 쓰고 싶고 매일 매일의 앨범 리뷰도 그렇고…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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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단순하게 말한다면 시간을 분할하는 다양한 단위의 음들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양한 악기들에 의해 표현된다. 그러나 타악기는 그 자체로서는 시간의 분할을 표현할 수 있지만 음의 높낮이를 표현하지 못한다. 게다가 각 분할된 시간의 길이도 표현하지 못한다. 타악기 연주 악보가 음표로 표현되지...Window Steps - Pierre Favre (ECM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