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우리는 삶을 새로이 시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현재의 모든 것을 다 멈추고 지금과는 다른, 아니면 조금 더 정돈되고 안정적인 삶을 누리고 싶어한다. 하지만 현재와 단절하고 새로운 미래를 만드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비가역적인 시간의 흐름을 누가 멈출 수 있으랴?
하지만 기타 연주자 팻 마티노는 재즈 인생에서만큼은 현재 두 번째 삶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느 순간 과거와 단절되어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는 말이다. 오히려 그는 첫 번째 삶을 새로운 삶에 연결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야 했다. 그러니까 그는 한창 활동을 하던 1976년 시작된 뇌동정맥 기형(AVM)을 치료하기 위해 1980년에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이 수술은 그에게 대부분의 기억을 앗아가 버렸다. 심지어 기타를 연주하는 법까지 모두 잊었다. 따라서 음악 활동은 남의 일처럼 되어버렸다. 하지만 자신이 재즈 기타 연주자였다는 사실은 기억했던 듯 그는 처음부터 기타 연주를 다시 습득해 나갔다. 이를 위해 그가 사용한 방법은 과거 자신이 연주했던 앨범을 듣고 따라 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되기 위해 자신을 참조하는 이 기이한 방법은 결국 성공을 거두어 활동을 멈춘 뒤 10년이 지난 1987년 그는 <The Return>이란 앨범으로 다시 재즈계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이후에는 알려졌다시피 수술 전을 능가하는 뛰어난 연주를 펼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삶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그가 자신의 앨범들 가운데 1970년대 뮤즈 레이블에서 녹음한 앨범들을 가장 많이 듣지 않았나 생각하곤 한다. 그 가운데 다시 생각을 좁히자면 뇌동정맥 기형으로 활동을 멈추기 직전인 1976년도 녹음을 많이 들었으리라 생각한다. 1976년도 녹음에 1987년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마음으로 복귀 후 이어진 그의 음악의 전조라 할 수 있는 것들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또한 1970년대 뮤즈 레이블 시절의 연주는 1960년대 프레스티지 레이블 시대의 연주에 비해 한층 더 깊어지고 내면화된 모습을 보인다. 웨스 몽고메리의 영향을 서서히 떨치고 팻 마티노만의 사운드를 만들어 냈다고 할까? 그러므로 1976년은 지속적으로 발전을 하던 중이었던 그의 음악과 연주가 절정에 올랐던-결과론적으로- 때였다고 할 수 있겠다.
1976년에 녹음된 넉 장의 앨범 중 하나인 <We’ll Be Together Again>은 길 골드스타인의 (일렉트릭) 피아노와 듀오로 녹음되었다. 길 골드스타인의 연주가 팻 마티노를 감싸고 조력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졌기에 다른 어느 앨범보다 이 앨범은 팻 마티노의 사색적이고 개인적인 색채가 강하다. 이것은 ‘Olee-Variations And Song-Open Road’의 3부작으로 이루어진 ‘Open Road’부터 시작된다. 건반이 뒤에 있음에도 솔로에 가까운 이 세 연주 곡에서 그는 차분하게 음과 코드를 이어 고즈넉한 공간을 만들어 내면서도 과감하다 싶은 창의적 연주를 펼친다. 특히 3부작의 타이틀 곡인 ‘Open Road’에서 건반과 호흡하며 조용히 상승하는 연주는 짜릿한 흥분과 이지적 서늘함을 동시에 느끼게 해준다. 이것은 1987년 이후의 연주에서 더욱 더 적극적으로 드러날 부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앨범의 매력은 이어지는 스탠더드 곡들의 연주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Lament’부터 ‘We’ll Be Together Again’, ‘Dreamsville’, ‘Willow Weep For Me’등의 곡들을 연주하고 있는데 모두 느리디 느린 템포의 발라드 형식으로 연주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너무나도 아름답고 매혹적이다. 그래서 나는 이 앨범을 70년대 최고의 발라드 앨범의 하나로 추천하고자 한다.
발라드라고 해서 멜랑콜리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기타는 고즈넉한 상황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즐긴다 싶을 정도로 달콤하다. 차분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그 내면의 소리를 몇 개의 음으로 표현한다고 할까?
연주가 고독한 독백으로 여겨지지 않는 것은 길 골드스타인의 힘이 크다. 이 건반 연주자는 공간적인 톤으로 전면에서 뒤로 살짝 물러나 기타를 감싸는데 주력하면서도 분위기가 너무 무겁다 싶으면 몽환적 울림으로 현(絃) 사이의 여백을 흐르며 사운드를 가볍게 부유하게 한다. ‘Lament’나 ‘You Don’t Know What Love Is’가 대표적이다.
한편 느린 사색적 분위기라 해서 팻 마티노의 연주가 마냥 달콤한 것에만 집착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의 자작곡 ‘Open Road’에서 보여준 창의성 솔로는 이 스탠더드 곡들의 연주에서도 지속된다. ‘Willow Weep For Me’나 ‘Dreamsville’같은 곡에서의 솔로는 분명 달콤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순간의 직관이 주는 선선함을 느끼게 해준다.
이 앨범은 처음에 뮤즈 레이블에서 LP로 발매되었다. 하지만 레이블이 사라진 이후 20년 이상 구하기 어려운 희귀 음반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다가 뮤즈 레이블의 카탈로그를 32 재즈 레이블이 인수하면서 1998년 CD로 재발매 될 수 있었다. 따라서 CD로 앨범을 듣게 된 감상자들은 저절로 1998년 당시의 팻 마티노의 연주와 비교할 수 밖에 없었을 터. 하지만 20여 년의 시간차에도 불구하고 앨범은 과거가 아닌 현재의 연주로 다가온다. 그만큼 이 앨범에 담긴 연주가 개인적이고 개성적인 동시에 시간을 벗어날 정도의 완성적이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