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종종 빌리 할리데이, 사라 본, 엘라 핏제랄드로 이루어진 3대 디바 가운데 누가 가장 뛰어났을까 하는 소모적 논쟁을 벌이곤 한다. 사실 이 세 명의 여인들은 워낙 개성이 강해 같은 층위에서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하지만 대중적인 인기, 후대에 대한 영향력을 기준으로 한다면 단연 엘라 핏제랄드를 최고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사실 빌리 할리데이나 사라 본은 범접하기 어려운 톤의 목소리와 정서로 그 자체의 음악을 완성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엘라 핏제랄드는 좀 다르다. 그녀의 뛰어난 스캣, 어떤 곡이건 그녀만의 흥겹고 낙관적인 정서로 바꿀 수 있는 폭넓은 소화력은 그 자체로 특별한 것이기도 하지만 감상자로 하여금 모방하고픈 욕구를 불러 일으키곤 한다. 말하자면 재즈 보컬의 전형을 제시했다고나 할까?
이런 엘라 핏제랄드는 1917년 4월에 태어나 1996년 6월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니까 지난 해는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 10주기가 되는 해였고 올 해는 태어난 지 90주년이 되는 해가 된다. 통상 음악계에서는 상업적인 이유 때문이라도 이런 해를 기념하곤 한다. 그렇다면 엘라 핏제랄드의 경우는 무엇을 기념해야 할까? 한국적 정서로는 사망주기를 기념하며 애도의 뜻을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리라. 하지만 제작자 필 래이몬은 그녀의 90번째 생일을 기념하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엘라 핏제랄드의 음악은 언제나 슬픔보다 기쁨에 가깝지 않았던가? 그녀의 밝고 경쾌한 스캣을 들으며 사람들은 삶의 행복, 미래에 대한 낙관을 생각하곤 했다. 따라서 필 래이몬이 엘라 핏제랄드의 90번째 생일을 축하하기로 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 고인의 생일 잔치를 위해 그는 많은 보컬을 불렀다. 나탈리 콜, 다이아나 크롤, 디디 브리지워터, 다이안 리브스 같은 재즈 보컬부터 에타 제임스, 글래디스 나잇, 샤카 칸, 레디시, 퀸 라티파 같은 R&B, 소울 성향의 보컬, 그리고 린다 론스타트, K.D 랭 같은 팝 쪽의 보컬까지 노래 잘한다고 소문난 여성 보컬들은 모두 모였다. 아! 남성 보컬은 마이클 부블레만이 초청되었고 스티비 원더가 엘라 핏제랄드와 함께 했던 1977년 뉴올리언즈 재즈 페스티벌 실황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런 쟁쟁한 보컬들이 들려주는 노래들은 일면 엘라 핏제랄드를 생각하게 하기도 하고 또 그녀의 희미한 흔적을 배경으로 이룩한 후배 가수들의 현재를 확인하게 한다. 모두 엘라 핏제랄드의 애창곡들을 멋지게 해석했다. 특히 몇 몇의 느린 곡을 제외하고 모두 엘라 핏제랄드 특유의 명랑하고 유쾌한 정서를 표현하고 있어서 정말 “축하”라는 앨범의 의미가 제대로 드러난다. 그렇기에 다양함 속에서 앨범은 하나의 일관된 흐름을 보여 여타 모음집과는 다른 완결미를 느끼게 해준다.
사실 앨범에 수록된 여러 가수들의 곡을 일일이 소개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명의 보컬은 꼭 집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는데 그것은 앨범의 마지막 곡-사실 히든 트랙이 하나 더 있다-으로 수록된 “Airmail Special”을 노래한 니키 야노프스키다. 이번 앨범으로 처음 만나는 그녀(라는 표현이 어울릴까?)의 노래는 상당히 완성된 모습으로 다가오는데 정작 그녀는 이제 13세밖에 되지 않았다 한다. 아마 엘라 핏제랄드가 10대 시절부터 노래를 불렀음을 상기시키려는 필 래이몬의 의도였을까? 새삼 엘라 핏제랄드의 흔적이 새로운 세대로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생각하게 해준다.